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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E Oct 22. 2018

나를 넘어서는 시간

다르덴 형제: 내일을 위한 시간(Deux jours, une nuit)

내일을 위한 시간(Deux jours, une nuit, Two Days, One Night), 장 피에르 & 뤽 다르덴 감독, 마리옹 꼬띠아르, 파브리지오 롱기온 주연, 2014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취향에 따라서는 상당히 지루할 수 있는 영화지만 참 독특한 영화다. 물론 독특하다는 것은 다르덴 형제(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가 만든 영화들의 전형을 그대로 따르는 독특함이다. 핸드 헬드 카메라, 어떠한 의도나 해석도 거부하는 듯 철저하게 무심하고 투박한 영상, 클로즈업된 주인공의 얼굴로 이어지는 화면, 그리고 음악에 대한 완전한 배제!  2010년 이창동 감독이 만든 <시, 윤정희 주연>는 음악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영화였다. <시> 제작 과정에서 음악 감독은 별도로 있었고 실제로 적지 않은 음악을 만들어 영화의 배경으로 삽입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많은 고민 끝에 최종 편집에서 음악을 완전히 제거하기로 결정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의 웅얼거림, 곤충이나 바람이 만들어내는 소리, 거리의 소음  등, 소위 백색 잡음에 해당하는 자연적인 소리로써 음악을 대체하게 된다. 이렇게 음악이 없는 영화라면 기존 영화들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진데 사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원래 음악이 없기로 유명하다. 1996년 제작된 <약속>부터 최근(2016) 작인 <언노운 걸>까지 발표된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모두 봤지만 2011년의 <자전거 탄 소년>을 제외하고는 영화에 음악을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자전거 탄 소년>에서도 러닝 타임 시에 두 번, 그리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한 번, 이렇게 딱 세 번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의 2악장이 짧게 흐를 뿐이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영화 음악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핸드 헬드 촬영 기법으로 집요하게 주인공을 따라가면서 해석의 여지를 없애버리고 거칠고 날 것의 화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와 맞물려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의 경우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을 "주인공 밀착 시점" 영화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이 형제가 원래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출신이었다는 것과 그것도 적지 않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뤽 다르덴, 장 피에르 다르덴 형제


   다른 유수 영화제들은 차치하고서라도 깐느 영화제에서 대상 격인 황금종려상만 두 번(1999년 로제타, 2005년 더 차일드) 수상했고 남우 주연상(2002년 아들), 여우 주연상(로제타), 각본상(2008년 로나의 침묵), 심사위원 대상(2011년 자전거 탄 소년)으로 깐느 영화제 5개 부문 6회 수상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남길 정도로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형제지만 영화 자체는, 깐느에서 수상한 영화들이 보통 그렇듯이 재미라는 측면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예술 영화" 장르에 속할 영화이고 또한 이 형제들의 영화 대부분이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가 무심히 전개되다 그것이 마무리되지 않고 중간에 끊겨버리는, 그래서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의 전개가 펼쳐질 것을 기대하는 시점에서 갑자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그런 식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관객 입장에서는 매우 불친절하고 그렇기에 재미적 요소는 기대하지 않고 봐야 하는 영화들이다. 그래도 오늘 소개할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그나마 그 끝이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다르덴 형제의 몇 안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내용은 매우 간단하다. 병으로 휴직했던 한 여성의 복직을 위한 1박 2일간의 투쟁기를 영화는 그리고 있다. 영화의 원래 제목이 "Deux jours, une nuit", 영어로는 "Two Days, One Night"인데 이는 바로 "1박 2일"을 의미하며 그 2일도 하필 주말 휴일의 이틀에 해당한다. 영화를 본다면 아마도 "1박 2일"이라는 제목이 더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겠기에 왜 영화 제목을 굳이 "내일을 위한 시간"으로 번역했는지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물론 1박 2일간의 "투쟁기"라고 하지만 거창한 투쟁이 아니라 복직을 위한 지루한 설득의 과정만이 이어진다. 그렇기에 2014년에 제작된 부지영 감독의 영화 <카트>와 여러모로 대비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두 영화 모두 "복직"이라는 주제를 공유하면서도 서로 전혀 다른 상황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해직이라는 사태에 대하여, 또한 그렇기에 복직이라는 목적에 다가가는 과정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하고 있다. 하나는 뜨겁고 눈물겨운 사투의 과정이지만 다른 하나는 건조하고 지난한 설득의 과정이기에 각각의 개성을 지닌 이 두 영화를 서로 비교하면서 봐도 좋을 듯하다. 



   남편(파브리지오 롱기온 분)과 두 아이를 두고 파리에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 분)는 우울증 치료를 위해 병가를 냈고, 치료 후 다시 회사에 복직하려 하지만 복직이 거부된다. 회사 사장이 병력을 문제 삼았고 합법적 절차라는 명분을 마련하기 위해 16명의 직원들에게 그녀의 복직 아니면 천 유로의 보너스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도록 투표를 실시했고 그 결과는 너무나 뻔했다. 두 명을 뺀 나머지는 모두 보너스를 택했다. 그녀의 편에 섰던 유이한 동료 중 한 명인 줄리엣(카트린 살레 분)은 투표 직전에 회사 임원인 반장이 그녀가 복직된다면 대신 다른 사람이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는 협박성의 전화를 직원들에게 돌린 사실을 알게 되고 재투표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문제는 정작 투표의 당사자인 산드라의 의지가 상당히 꺾인 상태라는 점이다. 평소에 눈물도 많고 소심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싫어하는 산드라는 우울증을 겪은 후엔 눈물도 더 많아졌고 자존감은 바닥에 떨어진 상태다. 이 와중에 치러진 투표 결과는 산드라를 자포자기 상태로 몰아넣었기에 그녀의 눈엔 항상 눈물이 그렁했고 신경 안정제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된다. 하지만 줄리엣의 끈질긴 설득과 남편의 부탁으로 금요일 오후에 줄리엣과 함께 사장을 직접 만나서 재투표를 요구했다. 줄리엣의 강력한 주장으로 다음 주 월요일 출근과 동시에 재투표가 결정되었고 투표 결과는 동률도 안되고 무조건 과반을 넘겨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줄리엣이 사장을 설득하는 동안 당사자인 산드라는 한 마디도 못하고 그냥 뒤에 서 있기만 했다. 줄리엣은 주말 동안 직원들의 집을 찾아가서 그들을 하나하나 만나 자기편에 설 것을 부탁하라고 이미 반은 자포자기 상태인 산드라를 설득시켰다. 그리고 영화는 산드라가 그렇게 주말 1박 2일 동안 직장 동료들의 집을 발품 팔아 찾아다니며 설득하는 과정을 매우 건조하고 담담하게 전개한다. 



   영화는 토, 일 양일간에 걸쳐 계속 사람을 찾아다니고 기뻐하고 절망하는 산드라의 모습을 반복한다. 이런 반복을 무미건조하게 그리고 있기에 관객들은 처음엔 지루해 할 수밖에 없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마음속으로 산드라를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부지불식간에 발견하게 될 것이다. 줄리엣과 남편의 설득으로 마지못해 주말 동안 설득 작업을 하겠다고 약속했던 산드라지만 이미 반 이상은 포기 상태에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천 유로라는 적지 않은 보너스를 포기하고 그녀의 복직을 받아들이겠는가? 비록 산드라가 직장 생활에서 평판이 좋았음에도 말이다. 또한 그녀 스스로도 너무 구차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고 거기에다 우울증을 앓은 터라 그녀는 더 쉽게 절망적인 상황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다정한 격려와 끊질긴 설득으로  직원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줄리엣과 함께 유이하게 산드라 편에 섰던 로베르가 마침 전화를 걸어와서 동료 카데르를 설득했다면서 직접 통화를 해 보라고 했다. 산드라는 전화를 했고 구걸하는 듯 스스로 초라해지는 자신과 싸우며 쏟아지는 눈물을 억지로 참아내며 투표 포기도 의미 없고 강요는 않겠지만 천 유로를 포기하고 자신에게 표를 줄 것을 떨리는 목소리로, 하지만 또박또박 전했다. 카데르는 그렇게 하겠다고 승낙을 했고 비로소 산드라는 한 줄기 희망을 보았고 다음 날부터 전개될 토, 일 양일 간의 긴 발품팔이에 대한 전의를 다지게 된다. 줄리엣, 로베르와 오늘 승낙을 받아낸 카데르를 제외하고 이제 13명이 남았다. 내일부터 이틀 간의 승부다.



   이제 날은 밝아 운명의 토요일이 되었다. 본격적인 발품팔이의 시작이다. 남편은 토요일 오전에는 식당에서 일을 해야 했기에 그녀 혼자서 버스를 타고, 하지만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엔 남편과 함께 차로 만날 수 있는 모든 직원들의 집을 직접 찾아 파리 전 지역을 헤매기 시작했다. 어렵게 만난 직원들을 설득하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의 현실적인 상황들을 목도할 수 있다. 그녀 대신 보너스를 택했던 자신을 눈물로 뉘우치며 재투표에선 그녀를 지지하겠다는 직원도, 설득 작업 끝에 마지못해 그녀 편에 서겠다는 직원도, 좀 더 고민해야 한다며 결정을 유보하는 직원도, 이런저런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산드라라는 사람은 좋아하지만 보너스를 포기할 수 없다는 직원도, 집에 뻔히 있으면서도 일부러 문을 열어주지 않는 직원도, 이런 식으로 선택의 압박을 주지 말라며 반대 의사를 노골적으로, 강력하게 표현하는 직원도 있었다. 심지어는 두 직원이 찬성과 반대를 두고 주먹다짐까지 벌이는 상황도 발생하게 된다. 모두 다 공감하고 이해 가능한 상황들일 것이다. 천 유로라는 보너스가, 한국돈으로 치자면 대략 130만 원 정도 되는데 이 돈이 아주 큰 돈은 아닐 지라도 일상생활에서의 구체적이고 소소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니라는 것은 평범하고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도 그 선택에 대하여 비난할 수 없는, 아니 어쩌면 비난의 대상 자체가 될 수도 없는 선택일 것이다. 직원들의 이런 다양한 결정에 따라서 우울증을 막 극복한 산드라의 조울(躁鬱)은 더 심해지고 약에 더욱더 의존하게 된다. 자신을 지지하는 직원을 만나고 돌아올 때면 희망에 부풀어 그 이상으로 기뻐하고 지지를 거부한 경우에는 완전히 풀어 죽어 울면서 자포자기해 버린다. 그럴 때마다 산드라는 노골적으로 포기를 선언했고 남편은 지극 정성으로 그녀를 달래서 겨우 겨우 방문을 이어가고 있었다. 



   일요일 오전, 찾아갔던 두 직원의 주먹다짐으로 인해 실망하고 집으로 와선 완전히 침대에 드러누워버린 산드라. 역시 남편이 달래고 달래어 막무가내인 아내를 다시 방문길에 나서도록 했다. 남편도 알았을 것이다. 그 직장을 포기한다고 당장 큰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내의 월급이 끊기는 것이 문제가 되겠지만 다른 직장을 알아볼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어떻게든 삶은 이어진다는 사실을 남편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복직 투쟁은 그런 생활 상의 문제 이전에 산드라 자신과의 싸움이고 그녀 스스로 자신을 극복해야만 하는 싸움이라는 것을 남편은 알았을 것이리라. 이제 극적인 순간이 다가온다. 산드라는 이번에는 안느(크리스텔 코닐 분)의 집을 찾았다. 안느는 집을 새로 수리 중이기에 보너스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해한다며 돌아서 나오는 산드라를 중간에 불러 세운 안느는 남편과 상의 후 최종 결정을 주겠다고 했다. 안느의 유보된 결정에 그나마 희망을 품고 다음 상대인 줄리앙을 찾았을 때 그는 매정하게 거부의사를 밝혔고 산드라는 다시 절망에 빠진다. 남편은 억지로 차를 몰아 다시 안느 집으로 왔고 안느에게 최종 결정을 물어보라고 산드라의 등을 떠밀었다. 다시 안느를 찾았을 때 그녀는 집수리 비용 지불 연기를 위해 남편을 설득 중이라 했다. 이때 남편이 밖으로 나왔고 산드라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안느는 남편을 억지로 집안으로 끌고 들어갔고 두 사람이 대판 싸우는 소리가 산드라의 귀를 어지럽게 때리기 시작했다. 자신 때문에 부부싸움까지 가게 된 상황에다 반장 측의 반격도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남편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산드라는 눈물을 뿌리며 막무가내로 집으로 와서 침대에 누웠다. 그러다 일어나선 뜬금없이 아이들 침대를 정리하고 아이들을 위한 빵도 사 왔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서는 상자 속에 든 신경 안정제를 모두 뜯기 시작했다. 손에 한 가득 담긴 하얀 알약들... 그 모두를 입에 꾸역꾸역 털어 넣었고 침대로 가서 방문을 잠그고 누웠다. 하지만 남편이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밑으로 내려갔다. 현관에는 안느가 서 있었다. 그녀는 월요일에 산드라에게 투표하겠다고 말했다. 말없이 안느에게 다가가서 그녀를 껴안아 감사의 표시를 하고는 남편을 보고 말했다, "방금 안정제 한 통을 다 먹었어." 남편은 안느에게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외치며 산드라를 끌고 싱크대로 가서 그녀의 입에 손가락을 구겨 넣었다. 



   다행히 산드라는 무사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안느의 결정에 힘을 얻은 산드라는 저녁에라도 남은 셋을 찾아가겠다고 결심했다. 병원을 나섰을 때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제안에 안느는 산드라와 동행하겠다고 했다. 남편과 헤어지기로 했고 산드라를 지지하기로 한 그 결정은 자신의 남편과 살면서 처음으로 자기 스스로 했던 결정이라고 했다. 그렇게 안느 역시 산드라를 지지하면서 이전까지의 자신을 극복했을 것이다. 산드라와 남편, 그리고 안느는 함께 나머지 직원들의 집으로 향했다. 세 명이 탄 차의 카 오디오에서는 록 음악이 신명나게 울려 퍼졌고 음악에 맞춰 몸을 둠칫거리는 산드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저녁 늦은 시간, 한 명은 만날 수가 없었고 다른 한 명은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제 나머지 한 명, 알퐁스만이 남았다. 알퐁스는 앞선 투표에서 산드라에게 투표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그가 산드라에게 투표하지 않은 것은 보너스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자신은 일 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보너스가 150유로만 나온단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계약직이라는 불리한 위치였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는 평가가 좋아야 하고 그래서 사람들의 중론을 따라야 하며 특히 반장의 눈에 들어야 한단다. 월요일 재투표에서 그녀에게 투표한 사실을 반장이 안다면 자신의 입지는 상당히 불리할 것이라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산드라에게 투표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알퐁스의 지지까지 합쳐서 총 8명의 지지를 모았다. 주말에 만나지 못한 한 명에 따라 복직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산드라는 담담히 다음 날을 기다렸고 이제 운명의 월요일이 되었다. 안느와 함께 사무실로 출근했을 때 직원들 사이에서는 긴장이 흘렀다. 투표가 실시될 사무실에서는 찬반 지지자들 사이에서 서로 날 선 말들과 심지어 몸싸움까지 오갔다. 반장의 투표 참관 여부가 문제가 되었고 결국 반장과 산드라에게는 투표 참관을 허용하지 않기로 합의가 되었다. 산드라는 다른 방에서 투표 결과를 초초하게, 하지만 담담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줄리엣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와서는 투표 결과를 말해주고는 산드라를 껴안았다.



   영화의 결말은 너무나도 깔끔하다. 1박 2일에 걸친 눈물 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투표 결과는 8대 8로서 과반을 넘지 못했다. 산드라는 하지만, 이번에는 절망하지도, 울지도 않았다. 담담하게 그 결과를 받아들였다. 한국적 신파에 익숙하다면 이렇게 반이나 자기편으로 돌린 주인공의 노력을 가상히 여긴 사장이 직원들 보너스도 챙겨주면서 산드라의 복직도 허용하는 감동적인 결말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영화는 그런 신파적 예감을 비켜가지 않는다. 담담하게 투표 결과를 받아들인 산드라가 자신의 락커에서 짐을 챙기고 있을 때 사장이 그녀를 호출한다. 자~ 이제부터 영화를 어떻게 마무리할까 상당히 흥미진진해진다. 사장실로 간 산드라, 신파 그대로 사장은 보너스와 복직을 동시에 받아들인다, 이런... 하지만 조건을 달았다. 그녀의 병가 기간 동안 16명으로도 충분히 회사가 잘 돌아가기에 더 이상의 직원은 필요 없다고 했다. 그렇기에 당장은 그녀의 복직은 안되고 두 달 뒤면 계약직의 계약이 만료되기 때문에 그때 자연스럽게 복직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계약직이 아니라, 그녀가 원래 정규직이었기에 당연히 정규직으로 말이다. 하지만 계약직 직원은 그녀를 지지했던 알퐁스가 유일했고 그녀의 복직은 곧 그의 해직을 의미한다. 이 점을 산드라가 반문했을 때 사장은 해고가 아니라 계약 만료임을, 따라서 단지 재계약을 하지 않는 것일 뿐인,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산드라는 더 이상 주저함도 고민도 없었다. 곧바로 안녕히 계세요~라는 작별 인사를 남긴 채 어안이 벙벙해진 사장을 뒤로하고 짐을 챙겨 회사를 나온다. 집으로 가기 위해 주차된 차로 걸어가던 길에 남편에게 전화를 건 산드라,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우리 잘 싸웠지?"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나, 행복해..." 이 말을 끝으로 차를 향해 당차게 걸어가는 산드라의 뒷모습이 멀어지면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물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에도 음악은 흐르지 않고 걸어가는 산드라의 길 주변의 소음들이 음악을 대신한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은 어찌 보면 코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와 비슷한 측면들이 있다. 양측 감독들 모두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감춰진 어두운 측면들을 끄집어내서 그것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드러내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히로카즈의 경우 느리면서도 매우 세밀하게 화면을 노출시켜 화면으로 하여금 대사를 대신하도록 한다. 반면에 다르덴 형제는 무미건조하고 거칠게 화면을 노출시키면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결국 양 쪽의 감독 모두 공통적으로 화면을 통해 이야기를 개진하는데 이는 이 감독들이 모두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이라는 공통점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엔 이런 다큐멘터리 방식이 그대로 통용되어 적용되고 있다. 물론 <내일을 위한 시간> 역시 카메라는 다른 어떤 가공 없이 주인공 산드라를 밀착해서 꾸준히 따라가면서 있는 그대로의 산드라와 그 주변 상황들을 전달하고 있다. 전달되는 그것은 바로 1박 2일간의 지난하고도 반복되는 만남을 통한 어떤 극복의 순간이다. 영화는 한 개인의 복직 과정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과정은 바로 자신에 대한 극복의 과정이다. 눈물 많고 자존감이 바닥에 다다른 주인공 산드라는 1박 2일이라는 지난한 발품팔이를 통해서 스스로 자신을 극복하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서 지난주 금요일의 산드라와 이번 주 월요일의 산드라는 전혀 다른 산드라가 되어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남편을 포함하여 그녀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그녀의 자기 극복 과정에 함께 동참했고 그렇게 그녀에게 힘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비록 그녀는 복직에는 실패했지만 그녀에게 남은 것은 함께 했던 사람들과 새롭게 태어난 자신이다. 이제 차를 향해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산드라는 더 이상 전날까지의 소심하고 지질했던 산드라가 아니라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당당한 산드라다. 반면에 그 과정에 동참했던 사람들, 즉 그녀의 방문을 받은 사람들도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순간을 맞이했을 것이고 그런 성찰의 과정은 그들 역시 자신을 극복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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