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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E Nov 07. 2018

시간의 파괴마저 거부하는 이 사랑은

황규덕: 별빛 속으로(For Eternal Hearts)

별빛 속으로(For Eternal Hearts), 황규덕 감독, 정경호, 김민선, 차수연 주연, 2007




   1976년 10월 14일 저녁 6시경, UFO로 추정되는 일련의 은반 불빛체가 청와대 상공에 나타나서 군이 비상체제로 돌입한 사건이 서울에서 발생했다. 이 사건은 당일 라디오 방송 중이었던 DJ 이수만에 의해 속보로 보도되기도 했었다. 당시 검증 기술이나 정보력 등이 그리 발달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문제의 불빛들에 대한 정확한 실체 확인도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군 당국은 청와대 상공의 불빛을 향해 무작정 대공 사격을 가했지만 의미 없는 행위가 되었고 오히려 그 유탄이 민간 지역에 떨어져 여고생 1명이 숨지고 32명의 시민들이 부상당하는 안타까운 사고로 이어졌을 뿐이었다. 문제의 그 불빛체들의 정체는 아직까지도 오리무중인 상태라고 한다. 오늘 소개할 영화 <별빛 속으로>는 이 사건을 모티프로 해서 2006년의 현재로 이어지는 이야기로 구성된 판타지다. 이 영화는 나름의 반전이 있으며 이 글에는 스포가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밝혀 둔다.


청와대 상공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미확인 비행체 편대 실제 영상.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불빛들은 군대에서 발사한 대공포 사격 상황이다.




   영화는 어두운 , 불 켜진 한옥 저택에서 파란 나비 두 마리가 파닥거리는 힘찬 날갯짓으로 갈지자를 그리며 스크린향해 돌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장면은 바뀌어 독문과 교수인 주인공 현수영(중년의 수영 장진영 분, 대학생 수영 정경호 분)이 잠에서 깨어난다. 자신의 교수 연구실 의자에서 잠깐 졸았던 것 같다. 그것은 꿈이었음을 알 수 있지만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형광빛의 선명한 파란색을 띠는 나비의 꿈은 몽환적 이미지를 던짐과 동시에 이 영화가 판타지라는 사실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일요일 오후였다. 그날 저녁에는 자신의 첫 시집 출간회가 있었고 출판 업무로 바쁜 와이프와 저녁에 학교에서 만나 함께 가기로 했기에 일요일임에도 학교에 출근해서 시간을 죽이고 있던 터였다. 정신을 차렸을 때 노트북의 포털 메인 뉴스에서는 강원도 산악도로의 터널이 매몰되어 대학생들이 갇힌 채 일주일이 지났다는 기사가 큼지막하게 떠 있다. 하지만 꿈이 현실로 이어지는 것일까? 창가로 다가갔을 때 꿈속에서 보았던 파란 나비 두 마리가 창 밖에서 계속 팔랑이고 있다. 창문을 열어주자 두 마리의 파란 나비는 연구실로 날아 들어와서는 입구 쪽에서 마치 문을 열어달라는 듯 연신 날갯짓을 하고 있다. 문을 열어주자 두 마리는 수영에게 따라오라고 시그널을 보내듯 천천히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비를 따라갔을 때 두 마리의 나비는 한 강의실 앞에서 멈춰 선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예닐곱의 학생들이 조용히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제야 자신들의 임무를 마쳤다는 듯 나비는 밖으로 사라졌고 가만히 그것을 지켜보던 수영은 뭔가 알겠다는 듯 강의실 문을 조용히 닫는다.



   한적한 일요일 오후, 사람 하나 찾아보기 힘든 나른하고 고즈넉한 캠퍼스를 느릿느릿 비추면서 영화의 타이틀이 나타난 후 화면은 다시 강의실로 바뀌어 열심히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수영의 모습을 보여 준다. 수업이 마무리될 즈음 풋풋한 학생들은 수영과 그의 아내와의 첫 만남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라댄다. 학생들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수영은 담배를 하나 물고는 한 마디를 던진다, "사랑은 그렇게 찾아오는 거야, 귀신에 홀리듯..." 그러고는 곧바로 릴케의 "파괴하는 시간이 정말 있을까"라는 시구절을 읊조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제 영화는 2006년 현재에서 1979년 6월로, 27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79년 6월, 독문과 수업 시간, 교수는 릴케의 시 "파괴하는 시간이 정말 있을까"를 독일어와 번역된 우리말로 번갈아 강독하고 있었고 독문과 2학년인 수영은 열심히 필기 중이다. 책상에서는 다소 개구져 보이는 여학생이 조용히 경청하고 있다. 교수가 이어서 독일어로 낭독을 요청했을 학생들 모두는 고개를 숙였지만 그녀만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다. 교수의 지목으로 시를 낭독하는 여학생, 독일어가 너무 유창하다. 하지만 다소 과장된 감정으로 시를 읊조리던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엎드려 울음을 터뜨렸고 가방을 챙겨 유유히 강의실을 나가 버린다.



   수업이 끝나고 혼자 벤치에 앉아 책을 보던 수영 뒤로 여학생이 다가와선 "이봐요, 총각, 꽃밭이나 기웃거리며 향기 맡다가 낭패 볼 거야, 갈 길이 구만리거든요~"라며 수수께끼 같은 말을 건넨다. 그리고 이내 수영을 어린아이 보듯 반말로 장난을 건다. 하지만 그녀는 수영의 이름도 알고 있었고 그가 78학번이란 것도, 시골에서 올라온 시골쥐란 사실도 알고 있다. 자신을 76학번 서울쥐라고 소개한 그녀였지만 끝끝내 자신의 이름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곤 갑자기 도와달라며 수영을 끌고 학생회관 어딘가의 어두운 골방으로 데리고 가는데... 그곳은 소위 말하는 운동권 학생들이 몰래 유인물을 찍어내는 곳이었다. 70년대 말이라면 대자보는 매직으로 직접 썼으며 유인물은 롤러에 먹물을 묻혀 손으로 밀어서 찍어내던 시대다. 천진난만하고 쾌활한 그녀의 모습에 호감을 느낀 수영은 "말괄량이 삐삐"와 닮았다면서 "삐삐"라는 별명을 그녀에게 지어준다. 수수께끼 같은 신비로 무장한 그녀는 그렇게 불쑥 수영에게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는데 수영이 영수(영어와 수학) 과외 아르바이트 신청 명단에 이름을 올릴 때도 갑자기 나타났다. 자신의 남자 친구도 고등학교 때 자신의 영수 과외 선생이었다면서 누군지도 어디에 있는지도 의문으로 남겨둔 채 그녀는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만약에 말이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죽음까지 따라가야겠지?" 당황스러워하는 수영에게 질문에 대한 긍정의 답을 기어이 받아낸 그녀는 자신을 이해해준 사람은 수영밖에 없다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학생들이 수군거리며 요란하게 밖으로 몰려 나가는 통에 얼떨결에 따라 나간 수영은 확성기를 들고 가방을 멘 채로 학생회관 제일 위층 창틀 난간에 위태롭게 서 있는 그녀, 삐삐소녀(김민선 분, 후에 김규리로 개명)를 발견하게 된다. 한 손으로 천천히 확성기를 입으로 가져간 삐삐소녀는 나머지 팔을, 주먹을 굳게 쥐고 하늘로 절도 있게 접었다 뻗으면서 운동권 가요 "흔들리지 않게"를 선창했다.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물가 심어진 나무 같이, 흔들리지 않게..."

삐삐소녀의 선창에 학생들이 하나, 둘 학생회관 앞으로 모여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사복 경찰들은 그렇게 모여드는 학생들을 기를 쓰고 잡아들였다. 이제 그녀는 가방을 열어 유인물을 뿌리더니 얼떨결에 사복 경찰에게 잡혀 학생회관 앞에 무릎이 꿇린 채로 올려다보는 수영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러고는 양 팔을 날개처럼 활짝 펼치더니 땅을 향해 가볍게 날아올랐다. 군중들의 비명 소리와 동시에 하얀 최루탄 가루가 놀라 어쩔 줄을 몰라하는 수영의 얼굴을 수놓는다.


   필자의 경우도 군사정권 말기에 대학 시절을 보냈기에 어느 정도 공감은 갔지만 70년대 말 대학 캠퍼스의 모습은 영화에 나온 대로, 필자가 감히 입에 올린 공감이란 표현이 죄스러울 정도로 훨씬 더 참혹했다. 당시는 사복 경찰들이 캠퍼스 내에 상주하면서 학생들이 서, 너 명만 모여도 덮쳐서 연행해 가던 시기였다. 모여 구호를 외치는 것 자체를 아예 원천 봉쇄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중앙 도서관이나 학생회관 옥상에서 몸에 밧줄을 감아 매달린 채로 아래로 내려오면서 구호를 외치거나 이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옥상에서 구호를 외치며 유인물을 뿌린 후 투신하거나 심지어 분신까지 감행했었다. 당시는 오후 다섯 시가 되면 국기 하강식이 거행되면서 전국 거리 곳곳에 애국가와 "국기에 대한 맹세"가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내려가는 태극기를 향해 가슴에 손을 올리고 있어야만 했었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연행되던 암울한 시기였고 영화는 그런 상황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트라우마로 각인될 만한 그런 충격을 그에게 고스란히 선사하고 수수께끼만 남긴 채 가버린 삐삐소녀... 자취방에 돌아온 수영은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함께 찍어 냈던 유인물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채 깡소주 몇 병을 병나발 채로 들이키다 기어이 쓰러지고 만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마법 같은 일이 수영에게 벌어진다. 삐삐소녀가 다시 그에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뜬금없이 나타난 그녀는 손가락으로 벽 한쪽을 가리켰고 그곳에는 다른 사람들이 쉬이 발견하지 못하도록 붙여둔, 과외선생을 구한다는 메모가 있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공중전화로 과욋자리가 난 집에 전화를 거는 시점에 애국가가 울렸고 모두 부동자세로 있는 동안 충성의 다짐을 무시하고 캠퍼스를 거닐던 한 학생은 곧바로 사복에게 체포되었지만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으며 수영을 빤히 바라보는 삐삐소녀를 사복들은 보지 못하는 듯하다. 그렇다, 당연히 그녀는 귀신이다, 그저 어리둥절해하는 수영을 바라보며 그녀는 미소만 지을 뿐이다. 귀가해서는 다시 집 앞 구멍가게 공중전화로 과욋집에 전화를 걸었을 때 한 남자가 전화를 받는다. 다음날 밤 10시에 학교 테니스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노란를 입은 사람을 찾으라 했고 이후로 특별 출연하는 이 남자는 노란(김C 분)로 통칭된다. 그렇게 만난 노란쓰는 집은 삼청동에 있고 과외를 받을 학생은 고 2짜리 자신의 여동생이며 이름은 "수지"라고 했다. 당장 다음 날부터 시작하라고 일방적으로 통고했지만 자신의 이야기는 여동생에게 하지 말라면서 그 역시 수수께끼처럼 그렇게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노란샤쓰를 만난 그 날, 이미 수영은 삼청동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 있었다. 해탈해 버린 듯 웅얼거리는 나른한 불교 방송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버스 안에서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꿈벅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힘들게 자리를 잡은 수영의 귀로 불꽃놀이를 하는지 폭죽 터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온다. 바깥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서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는 움찔거리며 수군대고 있다. 그 사이에서 차력사 한 명이 불쇼를 보여주며 버스 창문을 사이에 두고 보고 있는 수영을 향해 불꽃을 확 내뿜었고 화면 전체가 순간 주황색의 화염으로 덮였다 곧바로 암전되어 버린다.



   이 모든 상황이 마법처럼, 몽환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의 연속이다. 이제는 수영도 꿈 길을 헤매듯 삼청동의 골목골목을 더듬거리고 있다. 여전히 골목의 사람들은 하늘을 보고 있고 서치라이트 불빛 기둥 두어 개가 광선검처럼 밤하늘을 서로 교차하고 있다. 그런 몽환은 힘겹게 찾아낸 과욋집으로 가서도 마찬가지다. 과욋집은 삼청동에 위치한, 내부에 당구대까지 갖춘 상당히 큰 저택이었다. 그 큰 집에 수지(차수연 분) 혼자 그를 맞이한다. 집 역시 마법의 성처럼 어둑어둑한 가운데 신비한 기운이 맴돈다. 아니 차라리 기괴하고 을씨년스럽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그렇게 첫 수업을 마치고 집을 나설 때 엄마로 보이는 중년의 여자가 아무 말도 없이 과외비가 든 봉투를 불쑥 건네고는 조용히 사라진다. 과외비 선불을 받아 든 수영은 기분이 상기되어 집으로 오는 길에 장미 몇 송이를 샀다. 귀갓길의 어두운 하늘에는 여전히 두어 줄기의 서치라이트가 계속 교차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온 수영은 고조된 기분에, 마침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 "그리워라(현경과 영애, 1974년 발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고 재빨리 녹음 버튼을 누른 후 혼자 춤을 추었다. 노래가 끝나고 나오는 DJ의 목소리, 오늘 밤 서울 상공을 수놓았던 불꽃놀이... 갑자기 정전이 되어 DJ의 목소리도 끊기던 그 순간 수영에게 시(詩)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급하게 촛불을 켜고 주체하지 못하는 시흥을 두서없이 책상 위에 남기는 동안 병에 꽃아 둔 붉은 장미 꽃잎들이 하나, 둘씩 떠 오르기 시작하더니 그 꽃잎들은 물결을 이루어 삼청동의 수지네 집으로 흘러 들어간다.



   수지 역시 노란쓰나 삐삐소녀 못지않게 수수께끼 투성이에다 독특한 감성을 지닌 아이다. 하기야, 그 집 자체가 수수께끼 투성이었다. 수영은 제대로 수업을 이어가려 하지만 수지의 돌출적인 행동은 그를 적잖게 당황케 했고 수영 스스로 수지를 주체하지 못할 상황이 된다. 급기야 수영은 테니스장으로 가서 노란샤쓰를 무작정 기다렸다. 어떤 인연인지는 몰라도 노란샤쓰는 삐삐소녀와 함께 나타났다. 그만두겠다는 수영의 말에 노란샤쓰와 삐삐소녀는 수영이 여자를 다룰 줄 모른다는 둥, 그 시기가 여자애한테는 제일 민감한 시기라는 둥 하면서 수영이 과외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영이 계속 그만두겠다고 고집했을 때 삐삐소녀는 짜증까지 내면서 시간도 얼마 없다는 아리송한 말을 혼자 중얼거린다. 수영의 고집을 무시한 채 그렇게 그들은 떠나가 버렸고 홀로 남은 수영은 삐삐소녀가 노란쓰를 "수영이 형"이라 불렀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그리고 수영은 그녀가 말한, 먼저 가 버린 남자 친구가 바로 노란쓰일 거라 짐작하게 된다. 동시에 삐삐소녀가 처음에 그에게 관심을 가졌던 이유가 자신의 이름이 노란샤쓰와 동명이었기 때문일 거라는 짐작도 함께 떠올렸다.



   과외를 그만두겠다고 말하기 위해 다시 삼청동으로 온 수영. 집에서는 예나 말 없는 그 아줌마가 역시 한마디 말도 없이 과외비가 담긴 봉투를 내민다. 화장실을 찾아 헤매던 수영은 또다시 이상한 현상을 목격한다. 화장실 천장이 폭격을 받은 듯 다 허물어져 있었고 그 위로 몇 줄기의 서치라이트 불빛들이 환하게 교차하고 있다. 멍한 채로 그 광경을 올려다보던 수영이 다시 고개를 떨궜을 때 욕조 속에는 피범벅이 된 수지가 누워 죽어 있었다. 놀라서 화장실 밖으로 뛰쳐나왔을 때 화장실 밖에 멀쩡히 서서 화들짝 놀라는 수지를 발견했다. 또한 화장실의 천장도 멀쩡했고 욕조 속의 수지도 없었다. 수지에게 더 이상 과외를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집을 나왔을 때 집 위에선 수지가 원망 가득한 표정으로 수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날 학교 수업 시간, 여전히 릴케의 시 "파괴하는 시간이 정말 있을까"로 수업은 진행되었고 수업이 끝나고 교수가 출석을 불렀다. 하지만 수영의 이름은 끝까지 불리지 않았다. 수영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고 교수에게 이야기하며 다가갔지만 교수는 그가 다가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하다. 문득 출석부를 봤을 때 출석부의 수영의 이름엔 빨간 줄이 쳐져 있었고 교수는 마치 그가 없는 것처럼 무심하게 책과 출석부를 챙겨서 나가 버렸다. 캠퍼스에서는 애국가가 울려 퍼졌고 모든 사람들이 부동자세로 서 있는 동안 수영은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지나갔지만 사복이 달려오지도 않았고 사람들도 그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수영은 깨달아야 했다. 삐삐소녀처럼 자신도 다른 사람들 눈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고 기어이 삐삐소녀가 그 사실을 깨우쳐 준다. 교내 식당에서 이전처럼 그렇게 불쑥 다시 나타난 삐삐소녀, 그녀를 피해 식판을 들고 밖으로 나왔지만 그녀도 따라 나왔다. 수영이 자신은 지금 죽은 귀신이랑 함께 있다고 짜증을 냈을 때 삐삐소녀는 야릇한 미소를 머금은 채 한 마디 던진다. 너도 죽었어, 여태 몰라? 웃기지 말라며 콧방귀를 뀌는 수영을 향해 삐삐소녀는 정색을 하며 첫 만남에서 그에게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이봐요, 총각, 꽃밭이나 기웃거리며 향기 맡다간 낭패 볼 거야, 갈 길이 구만리거든!" 49재(四十九齋)의 의미를 놀리듯 상기시키며 49일이 되는 날 너도 떠나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삐삐소녀는 이전처럼 그렇게 나풀거리듯 가 버린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수영은 급히 집으로 달려와 과외를 마친 첫날밤, 흥에 겨워 "그리워라"를 녹음했던 테이프를 틀었다. 하지만 DJ의 불꽃놀이 멘트 뒷부분은 정전으로 인해 끊겨 있었고 수영은 구멍가게 공중전화로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다. 당일 담당 DJ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신문도 안보냐고 핀잔을 준 후 그날 그것은 불꽃놀이가 아니라 대공 사격이었다고 했다. 야심한 도서관, 이미 폐관 시간이 지나 불도 다 꺼져버린 어두운 신문 열람실에서 수영은 성냥불에 의지해서 당일 신문을 펼쳐보았다. 정체불명의 전투기 한 대가 서울 상공에 나타나서 군 당국이 비상체제에 돌입했고 대공포 사격을 했지만 격추시키지도 못한 채 그 유탄이 서울 시내의 한 버스 위로 떨어져 대학생 한 명이 절명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버스, 폭죽 소리, 차력사가 뿜었던 순간 화면 전체를 뒤덮었던 주황색 불꽃... 그제야 수영은 깨달았다, 신문 기사에 난 그 대학생이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을... 자신은 이미 죽었다, 하지만 수지는 그를 본다, 그렇다면 수지는? 다시 기사는 계속 이어진다, 삼청동에서는 가정집 지붕을 뚫고 들어온 유탄으로 여고생 한 명이 절명했다고... 구멍이 숭숭 뚫린 채 부서져 있던 화장실 천장, 그 아래 욕조에서 피범벅이 된 채 죽어 있었던 수지의 환영... 날짜를 따져보니 그들이 그렇게 절명한 지 48일이 지났고 다음 날이 49일째 마지막 날이었다. 삐삐소녀의 그 수수께끼 같은 말을 그제야 이해할 것 같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수영은 담담하게 이 사실을 받아들였고 마지막 하루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고자 했다. 물론, 그 마무리에는 수지도 함께 해야 할 것이다.


   삼청동의 저택으로 간 수영, 그 날은 과외가 있는 날도 아니었다. 그날따라 수지도 이상하다. 예쁜 옷을 차려입고 와인이 담긴 잔을 들고 들어온다. 수지에게 정말 마지막이라고 했지만 수지는 더 이상 과외를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맘을 몰라 준다는 듯 화를 내며 와인을 들이켰다. 오늘 모든 게 끝나는 밤인가 보죠? 수지도 체념한 듯 둘은 포웅을 했고 함께 피아노도 치고 당구도 치고 촛불을 뒤에 두고 와인잔을 부딪히며 함께 와인을 마셨다. 한참을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때 바깥에선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앞마당으로 나왔을 때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밤하늘엔 불꽃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명확했다. 불꽃 소리가 아니라 다다다 거리는 대공 사격 소리라는 것을... 대공용 총알들이 불꽃이 되어 빠른 속도로 그렇게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이제 그 총알들은 둘이 서 있는 앞마당에 떨어지기 시작했고 불똥과 파편들이 여기저기 날뛰었다. 수지는 놀라 넘어졌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수영이 그 위로 엎어졌다. 총알들이 유성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수지야, 우리 마지막 소원을 빌자. 왜요? 어차피 한 번은 죽는 거야, 지금 소원을 빌면 다음 세상에 꼭 이루어질 거야... 왜 죽어야 해요? 너와 나는 이미 죽었어... 쏟아지는 총탄 속에서 거짓말하지 말라고 그 사실을 거부하는 수지를 달랬다. 체념한 듯 수지는 함께 소원을 빌자고 했다. 수지의 마지막 소원은 수영이었다, 선생님, 사랑해요... 수지는 힘겹게 몸을 들어 수영의 입에 키스를 했다. 하지만 이내 수지의 입술은 그의 입술에서 떨어졌고 수지는 몸을 가누지 못한다. 수지의 옆구리를 잡고 있던 수영의 손에 뜨거운 무엇이 느껴졌고 그것이 수지의 피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수지는 이미 눈을 감은 뒤였다. 곧바로 극심한 통증이 그를 관통했다. 다시 자신의 손을 펼쳤을 때 수영은 이번엔 자신의 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수영의 머리가 천천히 수지 위로 떨어진다. 자신이 또다시 죽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수영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삐삐소녀가 위로하듯 그를 안아주었고 옆에 노란샤쓰도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눈을 떴다, 자신의 자취방이었다. 주변에는 갈기갈기 찢긴 유인물 조각이 널브러져 있었고 경월이라는 한자가 박힌 빈 소주병 세 개가 나뒹굴고 있었다. 그렇다! 관객 입장에서는 허무하게도, 하지만 수영에게는 다행히도 꿈이었다. 그 모든 판타지가 꿈에 지나지 않았다. 그 꿈은 삐삐소녀가 투신한 날 괴로움에 혼자 깡소주를 들이키다 잠이 든 수영을 장악했고 다음 날 아침 무사히 수영을 다시 현실 세계로 되돌려 놓았다. 삐삐소녀가 죽던 날, 그렇게 그는 삐삐소녀의 마법여행에 초대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수영은 알고 있었다. 그 꿈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는 것을, 삐삐소녀와 노란샤쓰가 시작한 판타지를 이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을... 수영은 삼청동의 그 집을 찾았다. 꿈에서 나온 그대로였지만 결코 을씨년스러운 집은 아니었다. 하지만 초인종을 눌렀을 때 말이 없었던 그 아줌마가 그를 맞아 주었다. 과묵했던 그 아줌마는 현실에서는 말이 많은 수지의 엄마였다. 조심스레 수지 이야기를 꺼냈을 때 오빠 기일이라서 지금 오고 있는 중이란다. 수지의 오빠, 노란샤쓰 수영은 3년 전 오늘, UFO 출몰로 소란을 떨었을 때 대공 사격의 유탄이 지붕을 뚫고 들어오는 바람에 죽었다고 했다. 집에는 수지와 노란샤쓰가, 그리고 노란샤쓰와 삐삐소녀가 함께 찍은 사진이 진열되어 있었다. 커피를 내어 오겠다며 엄마가 자리를 비운 사이 수지가 들어왔다. "누구...세요?" 수영이 대답했다, "말로 하면... 얘기가 좀 긴데... 우리, 앉아서 이야기 좀 했으면 해요..."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아내 수지의 전화였다. 곧 학교에 도착할 거란다, 그래서... 이제 가봐야 할 시간이다. 학생들은 이야기의 마무리를 지어달라며 계속 징징거린다. 수영은 웃으며 이야기는 여기까지!라고 못을 박았지만 학생들은 못내 아쉬워하며 삐삐소녀를 그 후에도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본 적은 없지만 가끔 느낄 때도 있어... 오늘도 그랬어. 학생들 사이에선 소름 끼친다는 소리가 오고 갔다. 이에 수영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판타지의 마무리 시점이 된 것이다, 판타지의 백미, 반전으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수영은 진지하게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다. 너희들 알아? 너흰 지금 일요일인데 여기 와있는 거야, 다들 함께 어딘가에 갔을 거야, 어디지? 지금 어디 있는 거지? 학생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실내 콩쿠르에서 상을 받았어, 우수상이었는데, 그랑프리에서 한표 차이로 밀렸다고 울었잖아... 이제 화면은 어두워지고 두 마리 파란 나비의 팔랑거림만 보일 뿐이다. 그리고 수영의 목소리가 들린다, "꽃밭이나 배회하다가 향기 맡으며 기웃거리다 큰 낭패 볼 거야... 이제 시간이 된 거 같아, 다들 정신 차려, 간절히 염원해야 해! 시간을 깨고 돌아와야 해! 알겠지?" 이내 학생들은 마법처럼 하나, 둘 씩 사라져 갔다.


   수지를 만나러 나가는 길에 라디오에서 뉴스 속보가 흘러나왔다. 붕괴된 터널 속에 7일째 매몰되어 있던 대학생들이 극적으로 구조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시집 출간회를 마치고 함께 차를 타고 귀가하는 동안에도 도심의 대형 스크린에서는 구조되는 대학생들 소식이 계속 보도되고 있었다. 수영은 운전대를 잡고 있는 수지에게 말한다, 가끔은 우리 둘만 있는 게 아닌 것 같아... 수지는 무섭다고 했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삼청동 자택으로 돌아와서 주차를 위해 차를 잠깐 세운 사이, 뒷좌석에서는 삐삐소녀와 노란샤쓰가 차 문도 열지 않은 채 내려서는 손을 잡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날은 노란샤쓰의 기일이었고 수영은 제사상 위에 자신의 첫 시집 "별빛 속으로"를 정성스레 올린다. 제사상 위에는 삐삐소녀와 노란샤쓰가 함께 찍은 사진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 장면은 다시 영화의 시작처럼 불빛이 비치는 삼청동 한옥 저택을 보여 준다. 그 집에서 파란 나비 두 마리가 팔랑이며 나와서 집 마당을 훠이 돌아보곤 저 멀리 서울 하늘 위로 천천히 날아오른다.




   영화 <별빛 속으로>는 2007년 부천 국제 영화제 판타지 부분 개막작으로 상영된 영화다. 판타지를 내세우면서도 현실과의 경계를 잘 넘나드는, 언제나 현실과 동행하는 판타지를 그리고 있다. 꽤나 잘 만든 수작임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이기도 하다. 물론 이 영화에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파란 나비나 떠다니는 붉은 장미꽃들을 위한 그래픽 처리의 조잡함은 논외로 하자.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임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용인해 줄 만한 요소다. 이 영화는 197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지만 그 70년대는 암울했던 시절의 정서다. 그 정서를, 시대의 모순을 알리기 위한 극단적 수단이었던 투신이라는 70년대의 아픔을 시간을 넘어서는 사랑의 완성을 그리기 위해 단순히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불편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힘은 처음부터 끝까지 현실과 동행하는 판타지라는 데 있고 따라서 그런 극단적 선택마저도 판타지의 요소로 채용했기에 이 역시 눈감아줄 만하다. 또 하나, 판타지임에도 사실 서울 상공에 대공포 총알이 날아다니고 그 유탄이 버스에, 집에 떨어져서 사람이 죽는다는 설정 자체가 너무 뜬금없게 느껴졌다. 다시 말해, 이런 설정은 이 영화가 현실과 동행하는 판타지라는 점에서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나 나올 이야기마냥 너무나 비현실적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난 후, 1976년 10월 14일의 그 UFO 출몰과 대공 사격 사건을 우연히 듣게 되었고 검색해본 결과 그것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이 영화였다. 그런 비현실적 설정은 바로 현실을 모티프로 했다는 사실에 영화적 상상력을 앞서가는 현실을 다시 실감할 수 있었고 <별빛 속으로>의 그 설정에 대한 오해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하나 더, 시간마저 부정하는 운명적 사랑을 이 영화는 그리고 있지만, 그래서 삐삐소녀와 노란샤쓰의 운명적 연결은 공감가지만 수지와 수영의 연결은 다소 억지스러운 측면이 없지 않다. 수지와 수영의 연결의 개연성은 다소 떨어지기에 그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는 삐삐소녀와 노란샤쓰의 노력이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주인공인 수영과 수지를 중심으로 내러티브가 이어지지만 사실 삐삐소녀와 노란샤쓰의 시간과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이 핵심이기에 수지와 수영의 연결에 대한 개연성을 굳이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고 어찌 보면 부차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판타지를 공개적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그 판타지는 이중의 액자 구조를 갖고 있다. 중년의 수영이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액자와 과거의 수영이 꾸는 꿈을 담고 있는 액자. 이렇게 두 이야기가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되어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판타지를 구성한다. 그리고 이야기 전체의 외곽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반전에 해당하는 그것일 것이다. 어찌 보면 세 개의 이야기가 서로 중첩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판타지로 이어지지만 현실과 매우 교묘하게 맞물리면서 개연성이란 요소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이 판타지는 마지막까지 현실과 동행하는 판타지다. 그리고 이 판타지가 이야기하는 것은 시간을 넘어서는 영원한 사랑이다. 영화는 릴케의 시 "파괴하는 시간은 정말 있을까"로 시작해서 이 시가 영화 중간중간에 계속 반복된다. "파괴하는 시간은 정말 있을까"란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파괴하는 시간이 정말 있을까

                       - 라이너 마리아 릴케


파괴하는 시간이 정말 있을까.

그것은 조용히 쉬고 있는 산 위에서 언제 성채를 부술까.

영원히 신들의 것인 이 마음을

조물주가 언제 억압할까. 폭력을 휘두를까.


운명이 우리에게 증명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우리는 정말 그만큼 소심하게 여리고 약할까.

저 깊은, 약속에 가득 찬 어린 시절이

뿌리 속에서 -언젠가는- 침묵해 버릴까.


아, 무상의 망령,

그것이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사람 속을

연기처럼 지나간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떠돌아다니는 자이지만

그러나 영속하는 모든 힘 옆에서

신이 필요로 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시는 파괴하는 시간을, 시간의 폭력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파괴의 대상은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다. 시간 앞에서는 영원한 것이 없다. 생명체는 물론이거니와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돌덩어리도, 이 우주도 자신의 존재를 영속시키지 못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자식을 잡아먹는 크로노스로 표현되는 시간은 심지어 자신마저도 집어삼키는데 하물며 사랑이야... 하지만 삐삐소녀와 노란샤쓰의 사랑은 그런 시간의 파괴마저 거부하는 사랑이다. 그래서 릴케의 시처럼 파괴하는 시간에 물음표를 치고 증명하고 싶어 하는 운명의 힘을 빌린 그 사랑은 이제 더 이상 소심하지도 약하지도 않고 침묵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그 사랑은 무상을 거부하고 영속하는 모든 힘과 함께 가치를 보존한다. 그렇기에 그 둘은 죽어서도 이승을 떠나지 않았고 그래서 구천을 맴도는 대신 파란 나비가 되어 있는 그대로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며 자신들이 연결시켜 준 수영과 수지 주위를 배회하며 수영과 수지라는 또 다른 파란 나비를 준비한다. 영화는 릴케의 시를 판타지로 확장하여 시의 제목이 던지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하고 있다.




   영화에서의 파란 나비는 참 인상적이다. 파란 나비를 본 적이 있는가? 필자는 본 적이 있다. 상상이나 그림이 아니라 박제로, 그리고 실제로도... 미국 애틀랜타 근교 캘러웨이 가든 내의 나비 식물원에서... 커다란 온실 속에는 수백 종류의 살아있는 나비가 내 주위를 팔랑거리며 날고 있었고 그 수많은 나비들 중 영화에서 봤던 파란 나비의 펄럭임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고 필사적으로 셔터를 눌렀더랬다. <별빛 속으로>의 그 파아란 두 마리의 나비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후에 가끔은 필자가 직접 찍었던 그 파란 나비 사진을 보며 부질없는 상상도 해 봤더랬다. 삐삐소녀와 노란샤쓰라는 두 마리의 파란 나비가 2014년 4월 16일, 차디찬 바닷속에 펄럭이는 그 날갯짓으로 나타나서, 영화 속에서 매몰된 대학생들을 구했듯이 수 백의 노란 나비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더라면 하는... 그런 회한 섞인, 하지만 꿈에서라도 그랬더라면 하는 그런 푸념 어린 상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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