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반이 된 지금, 새해는 더 이상 가슴을 두드리는 단어가 아니다.
달력 한 장이 넘어갔을 뿐이고, 오늘은 그저 목요일이며,
휴일이라는 이유로 도로가 조금 덜 막힐 뿐이다.
어릴 적 새해는 분명 다른 날이었다.
무언가가 바뀔 것 같았고, 적어도 바뀌어야 한다고 믿었다.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졌고,
“올해는 다를 거야”라는 말에 근거 없는 확신이 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해가 바뀐다고 인생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을.
사람은 갑자기 달라지지 않고,
일은 계획보다 훨씬 느리게 움직이며,
관계는 새로 시작되기보다 조용히 정리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이제 새해는 내게 특별하지 않다.
들뜨지도 않고, 새해 다짐을 적어 내려가지도 않는다.
그저 하루가 더해졌을 뿐이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새해가 아무 의미 없는 날이라면,
나는 왜 이 시기에 자꾸 멈춰 서게 되는 걸까.
정말 아무렇지 않다면
왜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왜 지켜내지 못한 약속들을 떠올리며,
왜 남은 시간에 대해 조심스러워지는 걸까.
50대 중반의 새해는
무언가를 더 얻고 싶다는 기대의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내려놓을 것과 버릴 것을 정리하는 시간에 가깝다.
무리한 욕심, 굳이 끌고 가던 관계,
이미 끝났다는 걸 알면서도 붙잡고 있던 일들.
그리고 그 정리의 끝에서,
아주 소박한 다짐 하나만 남는다.
남은 시간을 예전처럼 함부로 쓰지 않겠다는 다짐.
더 빨리 가겠다는 다짐도 아니고,
더 크게 성공하겠다는 다짐도 아니다.
그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을 하겠다는 정도의 다짐이다.
그래서 새해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새해를 기다린다.
그건 설렘이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희망이 아니라 정리에 가깝다.
새해를 기다린다는 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이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조용한 약속일지도 모른다.
50대 중반의 새해는
그저 목요일이고 휴일인 하루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날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마도
그 질문이 남아 있는 한,
새해는 여전히 내게 의미 있는 하루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