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이라는 이름의 책임

by 산에태양

30년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돌이켜보면 처음 10년은 전적으로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미래라는 막연한 단어를 붙잡고, 오늘을 소모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던 시기였다. 주 7일을 일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고, 밤을 새우는 것이 성실함의 증표처럼 여겨지던 때였다. 젊음은 체력을 과신하게 만들었고, 가능성은 무모함을 정당화해 주었다. 그 시절의 나는 “언젠가”를 위해 오늘을 기꺼이 혹사시키는 사람이었다.

그 다음 20년은 가족을 위한 시간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가족이라는 이름의 책임을 짊어진 시간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집이 생기고, 가장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그때부터 휴가는 사치가 되었고, 쉬는 날은 불안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일을 쉬는 만큼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았고, 하루라도 멈추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일했다. 휴가를 미루고, 나중을 기약하며, ‘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요즘은 가끔 정말 일을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아무 이유 없이 몸이 무겁고 마음이 먼저 지쳐 있는 날들이 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늘 거기까지다. 옷을 입고, 가방을 챙기고, 다시 회사로 향한다. 회사에 도착하면 하루의 업무를 정리하고, 미팅을 하고, 메일을 보내고, 계획서를 작성한다. 몸은 익숙하게 움직이고, 말은 자동으로 나온다. 나는 여전히 ‘잘 작동하는 사람’이다.

퇴근 시간이 지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다시 다른 생각을 한다.
이제는 슬슬 멋진 은퇴 생활을 꿈꿔도 되지 않을까. 아무 일정도 없는 아침, 목적 없는 산책, 해야 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하루. 그런 장면들이 잠깐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그 상상은 오래가지 않는다. 둘째 아이는 대학을 졸업시켜야 하고, 첫째가 결혼을 할 때 적은 금액이라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이어진다. 그렇게 현실적인 계산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사이, 나는 이미 집 앞에 도착해 있다.

집에 들어가면 헐렁한 거실이 나를 맞이한다.
낡은 마루 바닥, 갈라진 방문, 여기저기 손볼 곳이 보이는 집은 마치 나를 향해 “이제는 좀 신경 써 달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집 안에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쌓여 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니, 어느 순간 내 나이가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 있었다. 예전에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의 말과 선택들이 이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번아웃은 흔히 이렇게 정의된다.
‘더 열심히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너무 오래 열심히 해왔기 때문에’ 발생하는 소진 상태라고. 그 정의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부모라는 책임감은 번아웃마저 이기는 것 같다. 지쳐도 멈출 수 없고, 힘들어도 내려놓을 수 없다. 나 하나 쉬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나를 보며 부모님을 떠올린다.
그분들도 분명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무 말 없이, 불평 없이, 그저 하루를 또 하루로 넘기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제야 나는 내가 얼마나 부족한 자식이었는지 깨닫는다. 고생을 당연하게 여겼고, 침묵을 익숙함으로 착각했다. 그 생각이 들 때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내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 지금의 나와 같은 기분을 느낄 즈음, 나는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때 아이들은 어떤 기억으로 나를 떠올릴까. 늘 바빴던 사람, 항상 일하던 사람, 혹은 묵묵히 자기 몫을 다했던 사람으로 기억될까.

번아웃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다.
그것은 책임을 너무 오래, 너무 성실하게 감당해 온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감정이다. 그래서 이 피로는 쉽게 말 로 풀리지 않고, 쉽게 쉬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오늘도 다시 하루를 살아내며,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로 스스로를 설득할 뿐이다.

아마 내일도 나는 같은 방식으로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하루가 쌓여 또 다른 10년이 될지도 모른다.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마음 한켠에 둔 채, 그래도 다시 걸어가는 이유는 단 하나다. 책임은 피로보다 오래 남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나를 바꾸는 태도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