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시장의 파편은 전세계로

by 산에태양

요즘 뉴스를 보고 있으면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유가는 뛰고, 원화 가치는 흔들리고, 주식시장의 낙폭은 커진다. 멀리 떨어진 중동의 분쟁이 한국의 일상과 자산, 기업의 비용 구조에까지 직접적인 충격을 주는 현실을 보면, 글로벌 시대란 연결의 시대인 동시에 취약성의 시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최근 한국 정부가 유가 급등에 대응해 유류세 인하 확대, 채권시장 안정조치, 에너지 절약 대책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점만 보더라도 이번 충격이 단순한 뉴스 한 줄로 끝날 사안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번 상황은 단순히 “중동 리스크가 또 왔다”는 수준에서 볼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 경제와 산업이 앞으로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매우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에 가깝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공급망 재편을 이야기해 왔다. 특정 국가에 대한 원료 의존, 특정 항로에 대한 물류 의존, 특정 외부 변수에 의해 흔들리는 가격 구조를 줄여야 한다는 말도 수없이 했다. 그런데 여전히 충격은 반복되고, 그때마다 한국 경제는 환율과 원자재 가격, 증시 변동성의 삼중 압박을 고스란히 받는다. 최근 보도에서도 한국 원화가 중동발 에너지 충격 속에서 2009년 이후 가장 약한 수준까지 밀렸다고 전해졌다. 이는 전쟁의 파편이 더 이상 전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를 타고 전세계로 확산된다는 의미다.

특히 한국은 에너지 구조상 이러한 충격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전체 에너지 공급에서 석유와 석유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7%**다. 전력 생산에서 석유 비중은 높지 않지만, 국가 전체 에너지 시스템으로 보면 석유 의존도는 여전히 매우 크다. 게다가 최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약 70%가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결국 제3국의 전쟁이 우리 경제의 연료비와 물가, 환율, 산업 경쟁력에 직접 영향을 주는 구조는 아직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AI를 다시 봐야 한다. 많은 사람이 AI를 소프트웨어의 문제, 인재의 문제, 반도체의 문제로만 생각한다. 물론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AI 경쟁력은 결국 에너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IEA는 2025년 보고서에서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30년경 약 945TWh 수준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날 수 있으며, 그 핵심 동인 중 하나가 AI라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 AI를 잘하는 나라는 단지 모델을 잘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전력 비용을 통제하며 에너지 안보를 확보한 나라가 될 가능성이 높다. AI 시대의 산업전략은 반도체 투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발전원, 전력망, 저장장치, 효율화 기술까지 함께 가야 한다.

그래서 공급망 재편은 단지 “수입처를 바꾸자”는 이야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제는 내재화와 대체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내재화란 꼭 모든 것을 국내에서 생산하자는 구호가 아니다. 적어도 국가 생존과 산업 경쟁력에 직결되는 에너지·소재·핵심광물 영역만큼은 외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완충 능력을 국내에 만들어야 한다는 뜻에 가깝다. 대체제 역시 마찬가지다. 특정 수입 원료가 막히거나 가격이 급등할 때 다른 소재, 다른 조달 구조, 다른 회수 체계로 전환할 수 있어야 진짜 경쟁력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이 더 주목해야 할 분야가 바로 자원순환, 핵심광물 재자원화, 그리고 이른바 도시광산이다. 사실 이 논의가 새로운 것도 아니다. 한국 정부는 이미 2018년부터 「자원순환기본법」 체계를 운영해 왔고, 2024년부터는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을 본격 시행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통해 폐기물을 단순 처리 대상이 아니라 다시 투입 가능한 자원으로 보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정부는 2011년에도 도시광산 산업 활성화를 통해 여러 금속자원의 재자원화를 추진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내놓은 바 있다. 즉, 리사이클 강화 자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 의제로 존재해 왔다. 문제는 이제 그것을 환경정책의 보조축이 아니라 산업안보의 핵심축으로 다시 끌어올릴 때가 되었다는 점이다.

앞으로 한국이 키워야 할 기술은 분명하다. 폐배터리와 전자폐기물에서 유가금속과 희소금속을 회수하는 기술, 소재의 고순도 분리·정제 기술, 사용 후 자원의 재투입 효율을 높이는 공정기술, 에너지 저장장치와 차세대 전력 인프라 기술, 그리고 AI 산업을 뒷받침할 저전력·고효율 운영 기술이다. 이것은 단순히 친환경을 위한 선택이 아니다. 원유와 원자재 가격이 외부 충격으로 요동칠 때도 버틸 수 있는 경제 체질을 만들기 위한 선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누구보다 글로벌화에 성공한 나라 중 하나다. 수출로 성장했고, 해외 공급망을 통해 번영을 키웠다. 그러나 바로 그 글로벌 연결 구조 때문에 외부 위기 앞에서 더 크게 흔들리는 모습도 반복해서 보여왔다. 글로벌 시대는 이미 끝나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무조건 연결되는 나라”가 아니라 “충격을 견디며 연결되는 나라”로 진화해야 한다. 이번 중동발 충격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AI는 중요하다. 반도체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앞에 한 줄이 더 붙어야 한다. 에너지를 통제하지 못하는 AI 강국은 오래갈 수 없다. 그리고 공급망을 스스로 보완하지 못하는 개방경제 역시 반복되는 외부 충격 앞에서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전쟁의 파편이 전세계를 흔드는 시대, 한국이 준비해야 할 것은 더 빠른 연결만이 아니라 더 강한 버팀목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 전략은 ‘더 많이 만드는 기술’보다 ‘덜 흔들리는 구조를 만드는 기술’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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