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방향성 보기[1] 문제보기 : 변화가 어려운 구조와 사고방식
국내 시중은행의 모바일 앱은 오랫동안 '계좌조회, 이체' 서비스 중심에만 머물고 있다. 비대면 금융거래 비중이 높고 투자, 보험, 생활서비스 등 많은 서비스를 제공함에도 왜 조회, 이체 서비스만 계속 잘보이도록 구성할까?
국민, 신한, 하나, 우리은행과 같은 대표적인 시중은행은 앞다퉈 서로 금융 디지털 혁신의 선두주자가 되리라 외치지만, 정말 그들은 혁신을 원하는게 맞을까? 그렇다고 하기엔 매번 동일한 콘텐츠를 유지한 UI만 약간 변형하고, 디자인 껍데기만 바꿔 갈아끼우는 정도의 늪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시중 은행의 디지털화가 더딘것에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금융이 UX를 이해하려면 화면 디자인보다 먼저 은행에 대해 몇가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1. 오래된 레거시
코어 뱅킹 시스템이 오래된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화면의 작은 구조 하나를 변경하려 해도 여러 연동 시스템을 함께 수정해야 한다. 그만큼 비용과 리스크가 크다. 레거시 구조는 어디에서 어떤 오류가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데이터조차 정리하는 일을 쉽게 시도하지 못한다. 불편한 요소를 하나 개선하자는 이야기만 나와도 “어디에 영향이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말이 반복되는 것이 일상이다.
특히 인터넷 뱅킹 초기 도입 당시 오프라인 업무 구조를 그대로 온라인으로 옮겨온 것이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서비스 개편을 추진하더라도 근본적인 구조를 손보기보다는 겉모습만 바꾸는 수준에 머무르기 쉽다. 레거시가 유지되는 한, UX 개선은 결국 ‘껍데기 교체’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2. 수직적 조직문화, 디지털 인력의 한계
은행은 기본적으로 행원 중심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이러한 구조는 보수적이고 위계적인 조직문화를 형성하기 쉽다. 돈을 다루는 산업 특성상 금융 규제가 강하고 안정성과 리스크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조직 전체가 변화를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이런 탓에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유연성과 속도를 확보하기 어렵다. 또한 부서 간 정보 공유가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서비스를 통합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데에도 한계가 생긴다. 각 조직이 자신이 맡은 영역에 집중하다 보니, 전체 사용자 경험을 아우르는 시각이 형성되기 어려운 것이다.
강한 규제 환경 속에서 오랜 시간 유지된 업무 절차와 관행 역시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자동화 도구가 도입되더라도 기존 방식에 대한 익숙함 때문에 비효율적인 업무 패턴은 쉽게 바뀌기 어렵다.
디지털 전환에는 빠른 의사결정, 데이터 공유, 그리고 실패를 통해 학습하는 문화가 필요한데 실제 은행의 일하는 방식과 맞지 않다.
그래서인지 디지털 전문 인력을 채용하지만, 이들은 조직 문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변화의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그 구조에 익숙해지거나, 그 안에서 역할을 축소한 채 머무르게 되는 것 같다.
3. 고객을 바라보는 관점
은행은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젊은 고객을 신규로 유입시키려 노력한다. 그들의 금융 습관을 조사하고, 어떤 소비를 하는지, 무엇을 선호하는지 끊임없이 분석한다. 그런데 은행 앱을 보면 항상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왜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계좌’가 가장 앞에 있을까.
여기에는 은행 서비스가 가진 모순이 있다.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이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기존 고객이 익숙하게 사용해 온 구조에대한 변화를 꺼려한다. 실제로 은행의 주요 우수 고객은 일정 수준 이상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중장/노년층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이들을 무시하기 어렵기도하다. 특히 고령 고객의 경우 앱에서 기능 위치가 조금만 바뀌어도 사용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민원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서비스의 큰 구조를 바꾸는 시도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작은 변화도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는 조직 내부의 태도도 있는 것 같다. 예전에 이체 프로세스를 일부 변경하는 작업을 지켜본 적이 있다. 기존 흐름의 사용성이 좋지 않아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체는 고객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기능이라 이미 익숙해져서 바꾸면 만원이 발생할 것이라는 반대 의견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개편 이후 민원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기존 사용의 익숙함이 불편 요소임에도 그것을 제거하는게 더 리스크라고 생각하는 관점과 태도가 서비스 변화를 끌어내지 못하는 장애 요인이 되지 않을까.
구조적인어려움도 있지만 변화를 원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사고방식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실무자들. 이것저것 뒤엉켜있는 것들이 많다.
4. '영업점' 중심 : 디지털과 역할 나누기
은행은 오랫동안 오프라인 기반의 금융 서비스였다. 어릴 적 통장에 돈을 입금하러 은행에 가면 번호표를 뽑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린 끝에 통장에 금액이 찍히는 것을 보고 나오면 괜히 뿌듯했던 기억도 있다. 그때는 지금처럼 예상 대기시간을 알려주는 시스템도 없었다. 순번표를 미리 뽑아두고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다 다시 돌아와 순서를 확인하던 풍경이 눈에 선하다.
돈을 다루는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은행은 오랫동안 영업점을 통해 그 신뢰를 쌓아왔다. 그 신뢰를 기반으로 고객은 영업점을 방문해 상담을 받고 설명을 들으며 대출이나 투자 같은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돈과 관련된 일에서 사소한 업무라도 시간을 들여 확인하고 판단하는 과정은 당연히 감수해야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영업점을 방문하는 사람은 많을 수밖에 없었고, 이를 응대하는 점포의 공간과 은행원은 한정되어있어 행원들의 업무 부담이 상당했을 것이다.
그래서 디지털화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옮긴 것이 조회와 이체 같은 단순 반복 업무였다. 이 시기 디지털화는 새로운 서비스 혁신이라기 보다는 업무 부담을 줄이기위한 수단에 가깝지 않았을까.
대출이나 투자처럼 복잡한 금융업무는 규제와 절차가 많아 디지털로 옮기기도 쉽지 않았다. 어쨌든 행원의 단순업무는 줄어들었고, 고객 역시 영업점을 방문하지 않고 기본적인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변화였다.
시간이 지나며 점차 디지털화되는 서비스들이 늘어났고, 영업점을 방문하는 고객의 수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간 비대면 서비스 확대와 함께 영업점이 줄어들고 있다는 뉴스가 자주 보인다. 기사만 보면 디지털 전환 때문에 영업점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비대면 서비스 확산뿐 아니라 인구 구조 변화와 PB 중심 점포 전략 같은 요소들도 함께 작용하고 있다.
출처 : 연합뉴스 / 최대이익에도 사라지는 은행지점... / 2026.02.17
은행원의 수는 줄어들 수 있지만, 영업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돈을 다루는 산업에서 신뢰를 형성하는 공간으로서 영업점의 역할은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앞으로 은행은 영업점과 디지털 서비스가 서로의 역할을 나누는 방향으로 전략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디지털 전환을 단순히 기존 구조를 위협하는 요소로만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과 오프라인의 장점을 어떻게 결합해 은행의 새로운 수익 구조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기술 변화는 기존 구조와 충돌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그 흐름을 막으려 하기보다 변화 속에서 어떤 방향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을 세우는 일이다.
토스, 카카오뱅크를 금융의 혁신의 모델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영업점이 없는 것이 이들의 장점으로 이야기 되기도 한다. 그런데 시중은행이 오랫동안 구축해온 영업점 네트워크는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려운 자산임은 분명하다. 앞으로 금융서비스는 어느 한쪽이 다른쪽을 대체한다기 보다 각각의 모델이 공존하며 변화해나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안에서 시중은행이 어떤 방향을 선택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하는 부분은 지금의 구조에서 UX를 고려한다며 화면이나 기능을 부분적으로 수정하는 것만으로는 큰 변화를 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은행 서비스 구조에 대한 분석을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정리한 후 그에 맞는 UX 관점을 입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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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