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시인 - 서정춘

by 김도형

백발의 노시인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몸은 왜소했지만 홍안이었고 목소리에는 기운이 넘쳤다. 사진과는 달리 활기찬 개구쟁이 소년의 모습이었다. 서유기의 천방지축 손오공이 연상되었다.

시인은 배고프던 어린 시절, 마부였던 아버지의 조랑말이 걸어가며 똥을 싸던 장면을 회상했다. 볏짚이 발효된 뜨끈뜨끈한 푸른빛의 말똥은 구수하고 달콤한 냄새가 났다고 했다. 그리고 똥 모양이 마치 맛있는 밀가루 빵처럼 생겼다고 했다.
4남매의 막내로 한 살에 엄마를 잃은 소년은 김 오르는 말똥의 온기에 자신을 의지하고 싶었을 법하다.
밤중에 마구간에 들어가 말의 큰 눈에서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빛을 보았다고도 했다.
시인들의 노래는 그렇게 어두운 밤의 별빛에서 태어난다.

교회의 찬송가, 성당의 종소리, 순천여고의 피아노 곡에서 위로를 받던 소년은 청년시절 순천 선암사에서 잠시 기거했다. 개신교회의 빠른 종소리와 새벽의 고요한 성당의 종소리와 사찰의 은은한 동종 소리는 제각각 다르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교회의 종소리는 죄인을 부르고 회개하라는 소리인데 절의 종소리는 모두 내려놓고 안심에 들라는 소리라고 했다.

객석 한 모퉁이 의자에는 시인의 부인이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처가에서 가난한 시인과의 결혼을 승낙하지 않자 두 청춘남녀는 야반도주하다시피 서울로 떠나 청계천 판자촌에 정착했다. 빈 손이었기에 한 때 남대문 시장 등에서 리어카와 등짐으로 마늘 장사하며 사 모았던 모든 서적을 팔아야만 했다. 그러나 이희승의 국어대사전만은 도저히 처분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당시 유명세를 떨치던 소설가인 한 친구에게 3달치 먹을 쌀과 직장을 부탁하였다. 그 친구는 바로 무진기행의 저자, 김승옥이었다.

아, 가난한 시인의 아픈 청춘을 지탱했던 모든 문학보다도 위대한 것이 사랑이었구나~노시인의 회상에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분명 부인은 사내의 시심에 마음을 빼앗겨 타향 먼 곳으로 동행했을 것이다.

강연 마지막에 한 사람이 시집을 뒤적이다 질문을 했다. 스님이 주장자로 바닥을 치는 구절을 물어보았다.
노시인은 선암사 해우소에 들어가면 바닥이 깊어서 변이 떨어지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리고 절 마당의 붉은 해당화가 툭 떨어지는 모습이 그것과 오버랩된다고 했다. 또한 법당의 노스님이 주장자로 나무 바닥을 내리치며 방하착을 외친다고 했다. 모두 내려놓아라라는 뜻인데 해우소의 용도와 같다고도 했다. 시인은 불가의 깊은 뜻도 훔쳐내서 자기 글을 꾸몄다.
그 사람 외는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파란만장한 시인의 삶 앞에서 아무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조건 서울로 떠나가는 막내아들에게 마부 아버지는 이렇게 말을 했다.
"얘야, 애비 말 잘 들으래이. 잘 먹고 배부른 곳이 고향인 것이다이~" 아비 가슴속 절절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부디 너만이라도 배곯지 말고 고향도 돌아보지 말고 정착해서 잘 살아라...강연 후에도 메아리처럼 울리는 시 아닌 시구이다.

시인이 추천하는 좋은 시 공부법은 필사였다. 불가의 수행법 중에도 필경법이 있다. 손을 통한 수행은 무의식에까지 기록을 남기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한 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펼쳐 보여준
늙은 인간의 한 생이
바로 한 권의 빛나는 시집이었다.

노시인은 자신의 청승맞은 어려웠던 옛이야기일뿐이라고 했다. 잘 쓴 시보다도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시는 쉽고 평이했지만 금강석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