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링

쓴다는 일, 그 의미

by 김도형


어느 날인가 길이 주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숙제가 시작되었습니다

힘들었지만 내색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왜?라는 한 마디를 꺼낼 수도 없었습니다


'열심히'는 쓸모가 많았습니다

학교든, 직장이든, 가정이든, 모임이든

그것은 마치 벨벳 망토와 같아서

누구나 다가와서 칭찬하며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나 밤의 거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어린 소년은 다락방에 있다는 것을

소년의 얼굴은 오랫동안 창백하다는 것을

아이는 왜 눈물이 나는지도 몰랐습니다


자판을 두드리는 일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동안 걸어온 길을 고백해야 할지도

지금 입고 있는 옷을 벗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꿈속에서 사기 친 사람을 마주쳤습니다

땀 흘리며 겨우 잡고 보니

그는 빈털터리였습니다

허탈감이 분노의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아침이면 다시 웃어야 합니다

태양빛도 그걸 원하니까요

그렇다고 이슬이 다 마른 것은 아닙니다

가득했던 안개를 지워내는 일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합니다


이젠 채널을 돌리는 방법을 압니다

고요한 밤이면 주파수를 바꾸곤 합니다

그렇게 모니터를 마주하고

첫 문장을 새겨 넣을 때

소년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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