훅~, 한 방을 위해

브런치 댓글 10

by 김도형


하루 전에 <빛의 소리>란 짧은 글을 올렸다.

그 글에 아름다운 콩새님이 댓글로 화답했다.

아래는 그 글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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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만나는 정효민 님은 한 문화재단에서 근무하신다.

지금까지 브런치에서 만난 작품 중에서 님의 글처럼 근무 동기, 과정, 결과, 그에 따른 삶의 변화를 자세히 기록한 것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올인하는 열정이 마냥 부럽다.




여러 글을 읽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매끄러운 글도 좋지만 어딘가 허술한데 한 두 구절 임팩트가 강한 글도 인상적일 때가 있다.

연인 사이로 치면 평소엔 무심한데 어느 순간 특별한 언어나 행동으로 감동을 주는 것과도 같다.


타인의 글을 읽어보면 나 자신만의 주관적인 장점과 단점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 버릇처럼 총점을 매기듯 '~하군' 하며 평을 하게 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작품을 대하는 자세가 바뀌게 되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충분히 훌륭하지 않아도, 어느 딱 한 구절만 가슴에 와닿아도 그 작품은 성공했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같은 작품을 두고도 지인들의 평은 제각각이다. 그리고 인상 깊었던 부분이나 구절도 다 다르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힘주어 표현한 구절이나 장면이 주목받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고유한 생명력을 지닌 채 독자들을 만난다. 그 후에 일어나는 일은 별개의 일인 것이다. 이때 의도적으로 독자의 반응을 제어하려 한다면 작가는 창작자의 위치에서 관리자의 자리로 이동하는 셈이다.


작품과 독자가 일으키는 화학작용에 대하여 희비로 집착하게 되면 작가는 내상을 입기 쉽다. 흔히 바라는 호평엔 반드시 비평이 따라붙는다. 그때마다 끌려다녀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일정 부분 본인이 지어놓은 결과물에 대한 추후 조치나 피드백은 불가피하다.

단지 회오리바람에 휩쓸리게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아이, 어른 모두를 위한 판타지 마술 이야기인 해리포터 시리즈에서는 이른바 훅 들어오는 구절이 크게 생각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작가인 조앤 롤링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 훅! 함이 날아왔다.


그녀는 실직과 이혼 끝에 스코틀랜드의 여동생에게 의탁해서 연명했다. 그녀의 유일한 수입원은 미혼모 대상의 정부 보조금뿐이었다. 그녀는 난방비조차 아껴야 했기에 유모차를 끌고 동네 카페에서 차 한 잔을 놓고 글을 써야 했다.

-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절망의 벼랑 끝에서 아이라는 마지막 희망을 붙들고 서 있는 그녀의 회색빛 얼굴이 상상되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후에 그녀가 성공하여 2조 원대의 갑부가 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왔지만 그런 결말은 내게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가난이 주는 비참함에 대한 진술을 듣고는 다시 한번 강한 바람이 훅 지나감을 느꼈다.

그녀의 기억은 회상이 아닌 증언이었다.

그녀의 증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Poverty can destroy one's life.

가난은 삶을 파괴합니다.


그녀가 복지재단을 세워 거액을 기부하는 이유이다.


그녀는 상상력으로 외부 세계를 변화시켰다.

그녀의 빛은 가난이 빚어낸 불꽃이었다.

그녀는 가난이라는 과거를 갚는 마법을 보여주었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상상력은 책상 위에서만 맴돌 수도 있고 저 도심을 배회할 수도 있다. 또는 과거나 미래로 확장될 수도 있다.


브런치에 모인 이들은 제각각의 통찰력과 상상력을 시험하는 이들이다. 서로 겨루지 않아도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충전받는다.


아름다운 콩새님이 그러하고

다름을 찾아 방문하는 정효민 님이 그러하다.


우리는 그렇게 또 다른 미지의 작가가 살고 있는 땅으로 한방의 뜨거운 훅! 함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앞선 글에서도 밝혔지만 공개 댓글이라도 댓글 단 분들의 의사에 반하는 노출은 예의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불편한 분들은 즉시 연락 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