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보스턴을 방문했을 때 가장 가슴 뛰게 했던 것이 있다. 그것은 하버드를 비롯한 유수의 대학도 아니었고 이민자들의 개척사가 전시된 박물관도 아니었다. 물론 그곳은 미국인들이 고향으로 여기는 역사적인 장소로 미국의 전통이 살아있는 기념비적인 곳이다. 바로 첫 이민자들의 배가 도착한 곳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대서양 횡단이라는 고난을 불사한 영국 청교도들. 그들은 신대륙 정착을 도왔던 원주민들을 학살하는 오욕의 역사를 쓰게 된다. 청교도들에게 그들은 이웃이 아닌 이교도일 뿐이었다. 그 후에도 미국은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로 부리며 경제적 부를 축척했다.
많은 나라들의 역사는 수많은 피지배계층의 고난과 희생의 기록이다.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신의 사랑을 실천하고 전파해야 할 기독교인들이 극심한 인종적 박해를 자행했다. 정작 본인들의 선조는 종교적 박해를 피해 고향을 등진 사람들이었다. 인간이 행하는 자기모순이 미국 역사에도 고스란히 적혀 있다.
개척과 번영이라는 세속적인 가치와 청교도정신을 황금률로 삼은 미국 역사 속에서 또다른 정신세계의 진수를 길어 올린 장엄한 존재가 있다. 그는 청정한 샘물처럼 맑고 깨끗하며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밝게 빛난다. 그는 바로 미국의 정신적 마스터인 에머슨이다.
밖에서 답을 찾지 마라. - <자기 신뢰>, 에머슨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년 5월 ~ 1882년 4월)은 미국 보스턴 태생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이다. 여러 대에 걸친 목사 집안에서 성장하며 자신도 목회자가 되었으나 2년 만에 사직했다. 그의 초절주의적 사상은 범신론적 특징을 지니는데 그러한 면이 문제가 되어 목회를 중단하게 되었다. 가문이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신이 아닌 자연에 대한 공개적 연설과 집필은 가히 이단아의 것이며 또한 혁명적이었다.
에머슨은 도그마화 된 신 이전의 우주와 자연을 깊이 묵상했으며 인간의 내재적인 음률을 중시하였다. 그의 사상은 기독교라는 테두리에 안주하지 않았고 내면의 자아를 찾아가는 동양 사상에도 깊은 주의를 기울였다. 그의 목소리는 기성의 가치관에 오염되지 않은 젊은 영혼들을 각성시켰는데 <월든>의 저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대표 인물이다. 또한 <풀잎>을 쓴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 휘트먼도 사상적 영향을 크게 받았다.
학부 시절 미국 역사와 문학을 공부하면서 목격한 인간의 부조리에 가슴이 무거웠다. 그때 만난 그의 어록은 어둠을 비추는 한 줄기 빛과 같았다. 그는 광활한 우주를 홀로 항해하는 혜성과 같이 자신을 태워 순결한 불꽃으로 주위를 밝혔다. 그는 사회, 종교, 국가, 혈연이라는 틀 속에서 발생하는 삶의 부조화를 근본적으로 통찰하였다. 바로 그런 그가 태어나고 고통받고 각성하고 활동한 장소, 보스턴이 몹시 가슴 뛰게 만들었던 것이다.땅은 사람을 키워내고 사람은 그 땅을 명예롭게 만든다.그의 연설은 공중의 햇살로, 길가의 수많은 가로수 잎으로 반짝였다. 그는 나의 유일한 미국인 소올 메이트이다.
자신을 믿어라. 그러면 그대 마음속의 단단한 현이 모든 사람의 가슴을 울릴 것이다 - <자기 신뢰>, 에머슨
그 후 몇 년 뒤 에머슨이 정신적 각성을 체험했다고 고백한 파리의 식물원을 찾아갔다. 매우 큰 규모의 온실 속에는 온갖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습하고 답답한 공기 탓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그는 어느 지점에서, 어떤 자연물 앞에서 우주의 속삭임을 들었을까?... 과연 그 우주의 소리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신을 넘어서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태초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 설파했다. 식물원을 한 바퀴 돌아 나오면서 내게는 아직 묵상의 시간이 많이 남아있음을 알게 되었다.
무엇이 성공인가 ... 정직한 비평에 감사하고 배신한 친구들을 참아내는 것...- 에머슨
훗날 그 배신한 친구는 바로 첫 맹세를 저버린 나 자신임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밖을 향한 분노가 멈추었다. 소중하게 여겼던 많은 것들이 나로 인해 버려졌던 것이다. 그래서 닫았던 문을 열고 다시 사색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도시 거리의 한가운데에 서서 천체를 바라볼 때 그것은 얼마나 위대한가! - <자연>, 에머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