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방정식

~하는 척하기의 효용

by 김도형


누구는 결혼 생활을 행복이라고 말하고

누구는 인내의 과정이라고 말하고

누구는 지옥이라고 말한다.


혹은 결혼 생활을

3달간의 짧은 행복,

3년간의 치열한 싸움,

30년 이상의 인내와 침묵이라고도 한다.


어느 커플은 이삼 년 안에 폭풍처럼 이 모든 것을 겪고 헤어지기도 하고

어느 커플은 사오십 년간 느리게 반복하면서 겪어나가기도 한다.


대략 이러한 과정을 인정한다면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도 단계별로 달라진다.


3달인 경우, 사랑한다'는 말은 <네가 나의 전부>라는 감성적 표현이다.

3년인 경우, <도대체 내가 왜 결혼했는지 모르겠다. 좀 잘해보자>의 하소연이다.

30년 이상인 경우, <서로 눈치껏 건드리지 말자>라는 신호이다.


비혼도 늘었고 이혼도 늘었다.

모두가 살기 바빠서인지 따가운 시선도 줄었다.

그러나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커플들도 많다.




결혼한다는 것은 각자의 배를 가진 사공이 배를 합쳐 함께 강을 내려가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동반한다는 잠깐 동안의 기쁨 뒤에는 두 배로 커진 배 운행의 버거움이 놓여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공이 둘인 것이다!

그래서 배는 때때로 산으로 가는 듯도 하다.

각자의 노 젓는 리듬이 엇박자를 내면서 배가 제자리에서 빙그르 돌기라도 하면 서로에 대한 비난거리는 차고도 넘친다.


간혹 한 사공이 주도적으로 노를 젓기도 한다. 그러면 뒤에서 지켜보는 보조 사공은 답답하기 그지없어진다.

원래 훈수 두는 판 밖의 사람에겐 모든 것이 뚜렷하게 객관적으로 보이는 법이다.

주도하는 사공은 나름 최선을 다하지만 종종 뒤통수가 따갑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의 정의 중 하나가 믿음이다.

그러나 함께 하는 생활이 불안해지고 신뢰가 흔들리면 마음은 어느덧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진다.

왜 나만 이런 답답하고 불행한 처지에 놓인 걸까?

세상에 수많은 잉꼬부부는 다 어디에 있는 걸까?


사실 주위를 돌아보면 이상적인 커플은 없다.

결혼식이라는 단기 목표 때문에 참고 억누르다가 신혼여행에서 폭발해 따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또 신혼의 달콤함이 가시기도 전에 시댁과 친정의 노가 배 앞의 물살을 헤젓기도한다.

그러면 배는 당연히 리듬을 잃고 흔들리게 된다.


결혼 생활을 이어가다 보면 고비고비 넘어가며 부처되는 공부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그리고 상대에 대한 현실적인 감각은 낭만을 떠나 무미건조하다 못해 너덜너덜해진다.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도 생겨난다.

심한 경우 헤어져도 별다른 뾰족한 방법은 없지만 헤어지지 못하는 현실도 견디기 힘들다.

교회 가서 기도하고 절에 가서 절이라도 하고픈 마음만 간절해진다.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고 결혼했다는 후회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하긴 다 알면 누가 결혼할까나.

그래도 생긴 자식들이 인연 끈이 되어 살아지기도 한다.




결혼 축사에서는 흔히 사랑과 책임감이 강조된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감정은 쉽게 증발하고 책임감의 유효 기간은 한정이 없다.

한마디로 결혼의 팔구 할은 의무와 인내로 채워진다.

이로써 진정한 사랑이 단련되기 시작하는 것인데 그 과정이 너무 지난해서 많은 사람들이 견뎌내지 못한다.


유교적인 일부종사 사상이나 기독교의 하나님이 한번 정한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라는 기준은 이제 과거의 것이 되었다.

한 여류 문인은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거듭하여 각기 다른 아빠를 가진 세 명의 자녀와 살고 있다.


이혼이나 자발적인 비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개인적인 행복을 위한 여러 형태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단지 주변의 파장을 고려하여 신중히 결정할 필요는 있다.




기왕 결혼을 했으니 평범하기 그지없는 생활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그중 하나가 <~하는 척>하기이다.

살면서 매일 진정한 사랑과 관심의 감정을 일으킬 수는 없는 일이다.

감정은 효능이 큰 반면 일시적인 불꽃과도 같다.

그러므로 매일 그런 감정이 생긴다면 솥이 불에 달구어져 결국은 터져버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이 유효한 환상을 활용하면 진실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리고 그 효과는 거친 현실을 상당히 부드럽게 만들어줄 수 있다.

물론 상대방도 이런 행위가 백퍼 진심이 아님을 알지만 내심 싫어하지는 않는다.

게임이더라도 나름 의미있게 진행된다.


관심 있는 척하기
들어주는 척하기
미안해하는 척하기
예뻐해주는 척하기
이해해주는 척하기
공감해주는 척하기
염려해주는 척하기
최선을 다하는 척하기


그렇다면 하필 왜 ~하는 척일까?

살아보니 매번 진심을 다하려다간 자칫 인간임을 벗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그릇마저 깨질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서로 간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는 진심 아류인 척하기를 유용하게 활용해볼 수 있다.

플라시보 효과의 원리처럼 우리의 뇌와 가슴은 척하기에도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난 싫은데?라고 말하기보다는

좋긴 한데 이래서 난 어려워,라고 말해보자.

시크한 거절은 멋져 보일 수 있지만 본의 아니게 관계가 냉각될 수 있다.


솔직한 감정과 언사로 파트너를 상처 주어서는 안된다.

경험해보지 않았는가?

그 결과가 즉시 두세 배가 되어서 되돌아오는 것을.


갈등이 진정된 후에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는 것과

가장 상처가 되었던 상대의 말과 행동을 알려주고 삼가해주기를 부탁하는 일이다.

그러면 갈등이 재연될지라도 상대방은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게 된다.


우리의 삶이 단단하게 고정되어 변화되기 어렵다면 척하기와 white lie로 부드럽게 매만져보자.


아이들도 굳은 표정의 부모보다는 영혼 없는 웃음이라도 보이는 부모를 기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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