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경한 풍경 - 응급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by 김도형

(오늘은 개인적인 용무로 너무 무리한 나머지 오한이 나서 이것저것 책상 위의 약을 챙겨 먹고 자리에 비스듬히 누웠다. 글 쓰는 것도 쉬기로 했다. 그런데 타 작가의 글을 읽다 보니 예전에 발행 취소한 글이라도 올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금단현상을 앓는 것이리라.

전에 이미 보신 분들은 간단히

패스~하시면 되겠다.)






한 때는 문학만이 삶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었다.


무슨 배짱이었을까? 하지만 끝없이 노래하며 분투했던 수많은 위대한 시인과 작가들을 보고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은 경이로운 곡조로 신을 노래하고 사랑을 연주했다. 그들의 현실적 삶은 대부분 온전하지 못했으나 그들이 기록한 생생한 이야기들은 내 영혼을 격동시켰다. 그들의 목소리가 울리자 내 안의 잠자던 소리가 공명하며 거친 파동을 일으켰다.


잠깐 동안의 습작 시간을 보낸 뒤에 메이저 일간지의 신춘문예 공모에 시제품(!)을 투고했다. 시 부문에 한 번, 단편소설 부문에 한 번. 그때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반강제로 내 작품을 읽고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한 채 말을 아꼈다. 투고 결과에 대해서는 출판계 선배의 말로 위로를 삼았다.


- 적어도 입상하려면 유력 심사위원의 제자이든지 아니면 사사를 받아야지.


그래, 일부는 그럴 수도 있겠다 여기며 그렇게 두 해 동안 틈틈이 써나갔다.




어느 날 밤, 퇴근 후 글을 매만지던 중 조금씩 찾아오던 현기증이 휘몰아쳤다. 그때 불현듯 국어 교사직을 버리고 창작활동에 몰두했던 최명희 선생이 떠올랐다. 그녀는 신동아에 <혼불>을 게재하며 5부까지 완성한 뒤 얼마 되지 않아 밤하늘의 별로 돌아갔다. 그렇게 생명을 단축하면서까지 예술혼을 불태운 선배들의 삶에 공포를 느꼈다. 엇비슷한 운명적 길을 갈 수도 있다는 가정이 생겨났고... 나의 생존본능은 이 호사스러운 작업에 강하게 반발했다.


그래, 뒤돌아보지 말자!



그렇게 지옥 같던 직장에 조금씩 적응하고 (사실은 그런 내 청춘이 가여워서 늦은 밤 홀로 흐느낀 적도 있었다) 업무 능률이 오르면서 자리를 몇 번 바꾸게 되었다. 생각해보지도 않은 친화력까지 발휘하면서 어느덧 1인 3역을 하는 능력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내 인생의 꿈꾸던 목록에 포함된 항목이 아니었다. 그 후 직장 내 작은 갈등이 생겼는데 에너지가 방전 상태이었던 나는 결국 병원 응급실을 향해야 했다. 자동차가 마지막 기름 한 방울까지 소모하며 태연히 움직이듯 내 몸도 그렇게 작동하다가 갑자기 멈춰섰다.


그곳에서 무너져가는 육신과 정신을 필사적으로 붙들고 몸부림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나를 포함하여 그곳의 존재들은 온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사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뿐. 그곳의 의료진은 좀비 나라에서 파견된 사람들처럼 일관되게 무표정을 유지했다.


환자들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바닥에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며 침대에 누워서 간절히 기도했다.



< 다시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되면 세상을 향한 삶의 여정이 아닌, 뚜렷하지는 않지만 삶의 내밀한 소리를 따라 거친 외길을 걷겠나이다.>



육체의 기능이 최소한으로 줄어들자 정신과 영혼의 활성도가 높아졌다.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거대한 존재가 보였고 그는 날마다 말없이 병실에 머물며 가만히 모두를 지켜보곤 하였다. 그는 어떤 답도 주지 않았고 걸어온 길을 끝없이 뒤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나란 존재의 바닥을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그러나 회복에 대한 확신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동안 감지되지 않던 내밀한 것들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고 시시했던 전설과 고전과 신화의 모든 이야기와 존재가 모두 살아나서 움직였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의미가 있었고 반드시 그 이유가 있었다.



그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살아있는 역사에 대한 경외심을 체험했다.



두 눈에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흐린 눈동자에 비친 응급실 풍경도 습기를 머금고 눅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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