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5(수)자 카톡에 '드디어 브런치 입성'이라는 멘트와 함께 브런치팀이 보낸 축하 합니다!라는 화면이 떠 있다. 물론 아주 가까운 지인 몇 명에게만 보냈던 기록이다. 그중에는 카카오스토리 정도밖에 몰랐던 내게 브런치의 존재를 알게 해 준 선희 샘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함께 즐거움을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슬슬 후회감이 밀려왔다. 늘 한 테이블에 앉아서 대화하는 듯한 지인들의 눈길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글이란 결국 생활 속에서 비롯되지 않은가! 그 소재는 때때로 지인들과의 교류공간을 향할 수밖에 없다. 그때는 지인들조차 응원의 손길을 보내기보다는 검열과 심판의 차가운 표정을 짓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므로 출발부터 한 손을 묶인 채 자유롭지 못한 글쓰기를 시작한 셈이다.
한편으론 시어머니같이 의식해야 할 대상이 있음으로 인해 신중해지는 측면은 있다. 과거의 일을 회상함에 있어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장착해야만 사건의 대상자가 조금이라도 공감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시절 비루하게 굴었던 감정상의 표현이나 처신, 쓸모없는 결기 등이 사뭇 반성되기도 한다.
그렇게 이런저런 점을 고려하고 눈치도 보면서 글을 발행하다 보니 은근히 포장하는 기술이 향상되는 것만 같다. 지난 이삼 주 동안 처음으로 응모해보는 오디오북 경선을 위해 발행한 글들을 이리저리 묶어보았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 모르는 남이 보면 내가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일 듯한데? 즉 써낸 글들이 그럴듯하게 살짝 내 품성을 넘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얼마 전 문단의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연루된 큰 사건이 있었다. 최영미 시인이 과거 문단 선배의 성적인 일탈 행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고은 시인은 노벨문학상 후보에까지 추천받았던 유명 인사이지만 과거 사석에서의 기인에 가까운 행위로 인해 명성에 큰 흠이 가고 말았다. 그 후 다른 문인들이 사건에 대한 본인들의 사적 견해를 밝히며 논란이 확대되었다.
사실 이 논란의 추동력은 현재의 한국 현대사에 강하게 불고 있는 양성 평등의 바람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 여성 문인들은 수적 열세와 남성 중심적인 문단 분위기 등으로 수동적인 역할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 속에서 남성 문인들로부터 권위적이고 성적인 억압을 다수 경험했던 것이다.
이러한 어두운 과거에 대한 폭로는 현재라는 시대환경상 자연스럽기도 하고 당연한 것이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새로이 드러난 개인적 치부가 작가의 업적 평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옳은가라는 숙제가 남는다. 그것은 아마도 그 시대의 대중이 허용하는 인식의 한계에 따라 평가가 분리될 수도, 깊이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이 사건은 법정 소송으로 비화되었기에 그 진위를 단언해서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사실 이렇게 이야기가 멀리 간 것은 훗날 내가 쓴 글들이 나를 온전히 대변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그 대답은 간단히 '아니다'에 방점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론을 섭렵하게 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작품 세계와는 이율배반적인 작가의 사생활이나 비도덕적인 행적을 발견하기도 한다.
위대한 예술가나 사상가 혹은 과학자의 인간적 삶의 궤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는 정해진 기준이 없으므로 각자의 판단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로서는 내 글이 나의 고유한 성정을 벗어나 원만하고 매끄러워질수록 스스로를 속이기는 것만 같아서 부끄러워질 따름이다.
근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펜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약 170편의 글을 쌓게 되었다. 요 근래에는 짧은 시를 주로 발행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에세이나 사유를 필요로 하는 긴 글은 에너지 소비가 다소 컸다. 어느새 꾀가 늘어나 몇 줄이면 족할 시를 가까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때론 의욕적으로 장문의 산문시도 써 보지만 시의 특성상 함축미가 떨어지면 제 맛이 나질 않기에 짧은 시를 주로 쓰곤했다.
그동안은 작품 수 자체가 적어서 딱히 응모 이벤트에 참여한다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응모 방향에 맞추어 작품을 발행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여러 가지 글이 쌓이고 보니 산만해져서 좀 몇 개로 묶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충 매거진을 두어 개 만들었는데 마침 오디오북 응모 이벤트가 공고되었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성우 낭송이라면 시도 괜찮을 듯 싶었다. 평소 내 글쓰기에 관심을 거두지 않는 작은 누님은 글도 잘 쓰지만 시낭송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나도 덩달아 한 때 관심을 가졌었다.
그리하여 시를 분류하여 묶다 보니 두 권의 브런치 북을 발행했다. 나머지 글들도정리하는 김에 매거진으로 묶은 후 북으로 전환했다.
그리하여 표지 사진의 <처음 맞은 50대의 풍경>까지 합하여 총 5권의 브런치 북을 응모했다.
이는 내가 생각해도 좀 지나친 결과이다. 처음엔 별생각이 없었다가 나중엔 급쏠림 모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여기에는 절친의 역할도 한몫했다.
- 친구야, 시집 한 권 만들어 응모해보려고 하는데 괜찮은지 좀 봐주라.
-- 음, 응모해보려는 곳이 어딘데?
- 브런치에서 오디오북 응모 건이 있어서.
-- 그래?(대충 살펴보더니) 그러면 그쪽 하고는 방향이나 정서가 아~주 멀구먼. 그냥 이것저것 다 내 봐. 물량공세!
- 이 인간이 영 성의 없게 말하네?
하긴 기왕 묶었으니 제출이나 해보자라는 심사가 되어버렸다. 응모 기간 동안에는 미리 제출한 타 작가들의 작품을 열람할 수가 있었다. 클릭해보니 그중에는 반가운 공감의 기술 님도 있었고 드라마틱한 교정 일기를 쓰는 효라빠 님도 있었다. 혹시 류완 님 작품은 없으려나 했는데 제대로 찾아볼 수가 없었다. 또한 의미 있는 독후 작품을 연재하는 박성원 님도 응모하지 않은 듯하여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응모를 마쳤으니 발표날인 8월 15일까지는 초조감이 생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이전 작업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응모하려고 다시 읽어볼수록 비문과 어색한 곳이 한 두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5권을 목표로 했으니. 근 2주간은 새 글을 발간할 여력이 전무했다. 응모 기한 마지막 날까지 글을 다듬다보니 피곤할 때마다 나타나는 대상포진 같은 피부 이상 증상과 입속 염증이 생겨났다.
응모한 5권 중에는 읽고 듣는 오디오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브런치 여행기>인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아끼는 기록이다. 이 책은 나 개인의 작품이 아닌 수많은 브런치 작가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작품이다. 1년여에 걸쳐 함께 나눈 생생한 기록이기에 어느 작품보다도 진솔하고 그 가치가 크다. 함께 교류했던 모든 작가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이렇게 별 의미 없는 개인적인 응모 과정을 자세히 나열하는 것은 기억 속에서 아스라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시간들을 구체적으로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