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비 한 그릇

by 김도형


후드득

비가 내립니다

많지도 적지도 않게

하루를 온전히 적셔냅니다


창문을 열면

담벼락 양철통 밑으로

쏟아지는 물방울들이

높은 음의 변주를 엮어냅니다


이렇게 추적추적 비가 내리니

수제비라도 만들어 먹어야 할 듯합니다


밀가루 반죽을 만든 후

야채가게 들려서

호박이랑 감자랑 버섯이랑 깻잎을 사 올 때까지

비는 그치지 않아야 합니다


가게를 다녀오는 동안

슬리퍼를 신은 발도 비에 젖습니다


끓는 물이 담긴 냄비에

똥 뺀 멸치와 굵직하게 썬 감자를 먼저 집어넣고

준비했던 반죽을 맨 손으로 얇게 떼어내

한 점씩 떨어뜨립니다


질척거리는 반죽에

밀가루를 두 번이나 더 넣었지만

손가락에 달라붙는 통에

좀처럼 모양을 내기 힘듭니다


뜨거운 수증기 속에 마지막 한 점을 떼어 넣고

황태와 야채까지 더해

하얀 도자기 그릇에

풍성하게 수제비를 담아냈습니다


그러나 그 앞에서 마음은 순식간에

어머니의 온기가 담긴 저녁상으로 돌아가 앉습니다


채 썬 애호박을 고명으로 얹고

새우젓으로 간을 한

감자조각들이 달큼하게 녹던


마당 한가운데의 들마루에 모여 앉아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마주하던


아버지의 무릎 옆에서

뜨겁다 투정하며

어린 소년이 받아 들었던


수제비 그릇


타닥타닥

빗방울이 창틀에 부딪혀서

잘게 쪼개지며 마루 위로 떨어집니다


수제비에서 피어난 더운 김이

방안을 한 바퀴 돌아 창밖으로 빠져나가는

비오는 저녁입니다




어젯밤 산책중에 만난 노란 꽃 친구들. 황국인지 코스모스 종류인지. 벌써 가을을 염두에 두어야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