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종소리

by 김도형



속이 가득 찬

종은 없다



소리를 내려면

안을 비워야 한다



맑고 큰 소리를 내려면

남김없이 속을 들어내야 한다



머리 꼭대기 속까지 덜어내서

천룡이 두 발로 가뿐히 들어 올릴 수 있도록

몸통을 저미듯 얇게 둥글려야 한다



뜨거운 쇠통이 검게 식어지면

가슴에는 아홉 송이 꽃이 사방으로 솟아나고

배꼽 언저리에는 커다란 연화문이 피어난다



비파와 생황을 든 천인들이 날아들고

백 년된 금강송이 몸을 뉘어 연화문을 문지르면

공중으로 둥근 떨림이 퍼져나간다



종은 진공관

누각은 스피커



종소리는 지붕 끝을 떠나

하루를 건너는 모든 것들을 감싸 안고

먼바다 노을까지 울림으로 물들인다





무명번뇌여, 종소리에 깨져 무너질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