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잔을 온전히 받아 들기 쉽지 않은 저녁
그래도 반잔은 채울 수 있으니
아직은 술자리를 떠날 때가 아니다
마른 멸치와 고추장 그리고 오이를 앞에 두고
물방울이 맺힌 차가운 막걸리 통을 쓰다듬는다
그간의 만남은 늘 말없이 비어서 쓰러져갔다
사람이 떠나가고
이야기도 사라지면
마침내 남는 것은 술뿐인걸
첫 잔에는 손길이 망설여지지만
두 번째 잔에는 두려움이 사라진다
왜 힘없는 술병 앞에서는 용감해지는 걸까
갈라진 멸치의 등가시가 손가락을 찌른다
감히 머리를 함부로 비틀어댄 탓일 것이다
굳은 몸을 대함에도 격식과 예우가 필요한 법
시작이 반이라는데
이미 절반의 세월이 지났으니
이제부터 남은 시간은 그저 보너스겠지
다시 반잔
어설펐던 젊은 날에 대한 후회로
나머지 반잔을 마저 마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