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브런치북
풍경 그리고 짧은 이야기
14화
실행
신고
라이킷
22
댓글
2
공유
닫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브런치스토리 시작하기
브런치스토리 홈
브런치스토리 나우
브런치스토리 책방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김도형
Jun 12. 2021
방마다 달을 하나씩 들여놓자
유월의 우기 여행
초량동
부산역옆
작은 호텔을
나와서
비를
맞으며
한우 국밥을 먹으러 갔다
사람들은
바람에 날리는 비를
우산으로
막으며
종종
걸음을 쳤다
제주
공항에서는
심한
비바람으로
한 시간 반 정도 늦게 비행기가
이륙했다
하마터면 부산의 2박
호텔
숙박
비를
날릴뻔했
다
코로나 덕분에 저가 항공기에서도
위치
에 따라 최저가 좌석이 또 생겨났다
오늘 탄 진에어 비행기 좌석은 엔진 바로 뒷자리
성인 1인
세금 포함한 티켓이 1만 6천 원
3일 전 에어부산 김포발 제주행 티켓은 1만 8백 원
사실 이래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활주로에서 엔진을 예열하는 동안 역한 기름 타는 냄새가 창가 좌석으로 흘러 들어왔다
벌써 두 번째 경험이었다
비행기가 서행하며 직선 주로로 접어드는 동안
기름 냄새는 줄어들었다
비행기의
속도가
높아지자
작은 기창에 달라붙었던 물방울들이
일제히
뒤
로 밀려나며
직선으로
흘러나
갔
다
이륙하자마자 비구름이 날개를 스쳐
며
고무망치로
내려
치는 듯한 진동을 일으켰다
아주 심하지만 않다면 화창한 날보다
비행의
역동감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짐짓
위안을
삼아보려
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쉽게
줄어들
지 않았다
비구름로 인한 기체 진동에 승객 모두는 한동안 겸손한 표정을 짓고 앉아 있었다
일기예보를 보니 주중 후반부터 제주를 포함한 남부 지방
지도
에 비와 번개가 그려져 있었다
그 이후엔 더 긴 장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은 화창한 날만의 경험이 아니다
-
라는 생각에 기대어 우산을
챙기고
김포
공항으로 향했다
그렇게 서울로 북상하는 물의 세례를
제주에서 부산으로 미리 맞아보기로 했던 것이다
부산하면 구수한 돼지국밥이 떠오르지만
초량시장 입구의 이층 정육식당에서는
뽀얀 사골국에 한우 편육이 적당히 들어간
곰탕이 아직도 7천 원이다
부산역 근처에 들리면 감사한 마음으로
반드시 한 번씩 들린다
수입 김치를 쓰지 않는 정성도 고맙다
얼굴을 알아봐 주는
카운터
이모도 참 반갑다
식사
후에는
간식으로
바로 옆
가게의
따끈한 수제 어묵을
한 봉
샀
다
그리고
두고두고 먹으면서 서울까지 끌고 갈
각오로
짙은 갈색의 매실청도
1.5리터짜리로
한
통
샀
다
음... 건강한 이들은 왜 이런 것을 사는지
이해 못할 수도 있겠다
나도 전에
그랬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소화력이 약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기를 먹거나 과식을 했을 때
외지에서 낯선 음식으로 고생할 때
매실청을 물에 타서 마시면 다소 도움이 되었다
그 매실이 지조와 은은한 향으로
이름 높은
매화의 열매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꽃 따로 열매 따로 대하던 시절처럼
그 누군가의 애정으로 지금 서 있음을
미처
알아채
지 못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호텔방 티브이를 틀어놓고 핸드폰으로 브런치를
검색했다
티브이
Kbs1
채널의
독립영화관
코너에서는
<후쿠오카>를
방
영했다
보는 둥 마는 둥 하는
사이에
영화의
한 장면이 눈에 쏙 들어왔다
저녁을 맞은
50대의 두 한국인 남성 앞에 한 아가씨가 환하게 밝힌 둥근
종이
등을
들고 나타났다
- 이거 누가 만들었어요?
ㅡ
내가. 이쁘지? 그거 달이야.
- 아, 아저씨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
그렇구나
저 세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환하게 따뜻한
등이 필요하구나
비 오는 날에도 눈 오는 날에도
이지러지않은 둥근 저 달이 있어야 하는구나
음영진 얼굴로 온화하게 웃는 밝은 달이 있어야 하는구나
마음의 빛을
밝힌
등 하나
극도 끝났고 티브이도 꺼졌다
하루도 마지막 심지를 태우고 처음으로 돌아갔다
밤마다 어두운 방
거기서 피어나는 적막과 후회와 우울
평면 패널
위에
홀로그램으로 나타난 소녀가
한밤의
성모처럼 빛을 밝혀 그림자들을 밀어냈다
이제
방에 달을 들여놓아야겠다
환하고
둥근
달을
하루를
지나
며
새겨진
모든
검은
자국들
을 지워낼
은은히 빛나는 달등을
빈
마음 방에
가득
띄워
놓
아야겠다
keyword
부산
제주도
달
Brunch Book
풍경 그리고 짧은 이야기
12
울음 우는 일
13
Ludovico Einaudi - Experience
14
방마다 달을 하나씩 들여놓자
15
우리는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가
16
제비 맞으러 나가다
풍경 그리고 짧은 이야기
김도형
brunch book
전체 목차 보기 (총 22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