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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Jun 29. 2021

우리는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가

종로 2가 사거리


창밖 가로수 너머엔 옛 낙원상가가 언뜻 보이고 상가 뒤로는 멀리 인왕산과 청와대를 가늠할 수 있는 종로 2가 사거리 커피집의 이층


한적한 일요일 오후


창가 네 좌석 테이블에 혼자 앉아 에스프레소에 밀크를 넣어 조금씩 마셨


통유리 밖 도로엔 4212번 5000번 버스가 1가 방향으로 좌회전하며 신호가 바뀌자

멈춰 기다리던 721번 271번 버스가 직진했


2층 창 바로 아래의 건널목 양쪽엔 젊은 연인들이 길 위에 동상처럼 서 있다가 신호등 불빛이 푸르게 변하자 갑자기 생기를 띄고 살아 움직였


6차선 도로를 반 지때쯤엔 신호등의 파란 인형이 점멸을 시작하고 그 아래 등엔 28이란 숫자가 나타나서 거꾸로 크기를 축소했


숫자가 10쯤에 이르자 새로이 건널목에 들어선 이들이 손을 잡고 가볍게 뛰기 시작했


7,6,5로 행운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면서 짧은 시간의 엄중함이 거리에 팽배해졌


4,3,2 이들 숫자는 보행자만에게만 의미심장한 것은 아니 

네 방향과 각방향의 좌우회전을 기다리는 덩치 큰 차량들이 도사려 낚아채려는 순간이기도


교차로엔 이삼 초의 시간을 아쉬워하는 새로운 보행객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사람들의 초조함은 무엇에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우리가 세운 질서에서 생겨난다

선악과는 관계없이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면 죄가 생기고 벌을 받는다


고대의 신정정치에서는 계율을 어기면 신의 이름으로 징벌을 내렸지만 사실은 정해진 시스템에서 벗어날 때 판결이 내려졌던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각자의 신들이 있었고 자신들만의 공동체 시스템을 구축했고 규율과 징계 체계를 마련했다


진정한 인간의 원죄는 타인을 심판하려는 의식 자체일 것이다

무의식 속에 반복적으로 되뇌어 박힌 원죄와 욕망에 대한 신화적인 관념들


수많은 현대의 복잡한 시스템은 도처에서 전자 문맹을 일으키고 학습의 수용력이 떨어진 세대는 신인류에게는 고대인 내지 원시인에 불과할 뿐이다


신호등의 전환과 함께 재빨리 길을 건너는 청춘들과 달리 그들의 움직임을 신호등 삼아 뒤늦게 걸음을 옮기는 나이 든 이들도 있었


해를 바라보며 아침 점심 저녁이라는 세 개시간만을 생각하던 이들은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 속에서 갈 길을 잃었다


고개를 들어봐도 빌딩 러 글라스의 반사빛만 번쩍일 뿐 진짜 해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

대신 주머니 속의 전자 폰이 수시로 울리며 시간을 알려주고 거리의 신호등이  방향을 정해주었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을 온전히 간직한 것일까

혹은 어디 골목이나 거리 또는 사무실이나  거래처에서 미처 챙겨 나오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굳어있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오후였






간장 종지만한 커피잔이 식어

창밖의 풍경도 색채를 잃고 흑백 톤으로 변해갔

그 속에서 신호등은 눈을 부릅뜨고 어김없이 사람들을 앞으로 밀어내 있었



몹시 진한 커피는 어릴적 먹었던 쓴 탕약을 연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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