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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Jun 02. 2021

Ludovico Einaudi - Experience

https://m.youtube.com/watch?v=hN_q-_nGv4


저녁 늦은 시간에 친구가 유튜브 파일을 하나 보내왔다

약 10분 뒤에 단문이 또 날아왔다

반응이 없는 걸 보니 너도 다른 친구들과 별반 다름없는 인간이다

그래서 지금은 명상시간이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자기는 이 곡을 듣고 흐느꼈다고 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일을 열어서 음소거 단추 탭한 후 볼륨을 키웠다

나이 든 레옹처럼 생긴 피아니스트 Ludovico Einaudi가 연주를 시작했다

그 옆으론 바이올린과 탬버린과 첼로가 나란히 자리했다

피아노가 앞에 서고 나머지 셋이서 뒤 따랐다

피아노가 이야기를 읊조리자 바이올린이 선율을 얹고 탬버린이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박자를 맞추고 첼로가 깊게 울어 댔다

달리는 마차 위로 하늘의 세 여신이 각각 바람과 구름과 비를 몰고 왔다

행렬은 초원과 계곡과 강을 건넜다

그리고 다가 다가 넘어져서 상처를 입었고 다시 일어났다

그러나 끝없는 길을 다 가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훗날 길가의 작은 돌더미로 지나가는 나그네를 마주하는 풍경이 떠올랐

곡이 끝난 뒤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감정의 진폭이 심하게 커져 버렸다

친구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그는 복잡한 어떤 일의 한가운데서 사람으로 인한 심적 고통을 겪고 있었다


문득 나도 그에게 곡 하나를 보내고 싶어졌다

Beirut Chants Season 9 / Seong-Jin Cho을 제목으로 파일을 전송했다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여러 곳에서 초청공연을 했는데 아직 그 풋풋함이 살아남아 있어 감동이 큰 연주였다

베이루트의 고성당에서 울리는 날 것 그대로의 선율을 들을 때마다, 그의  감은 표정을 대할 때마다 가슴은 매번 울컥 열려버렸다

그 연주가 친구의 마음에 가 닿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리고 이미 몇 번인가 들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조성진이 연주 후에 간단한 허리인사와 함께 무대 밖으로 바람처럼 사라지는, 격정과 단출함의 극명한 대조가 드러나는 휘날레 장면이 떠올랐다 

인생도 결국 저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공연은 오랫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었다


친구가 연주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라는, 미쳤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 친구가 공감할 여유가 있었기에 다행이라는 느낌이 들었

혼란과 고통이 심한 상태라면 주변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았을 테니까






생경한 그러나 익숙한 탬버린 소리가 소환한 먼 과거의 단편적인 기억들이 줄지어 떠올랐


현을 두드리는 소리가 푸른 비늘의 물고기 떼처럼 퍼덕이며 사원의 천정을 돌아 돌기둥에 부딪혀 부서져 내렸다


그렇게 지휘자 없이, 악보 없이 하루를 살아낸 쓸쓸함과 기특함에 늦은 밤 서로 한 줄 문자와 파일로 위로를 주고받았



조성진 베이루트 공연 실황

https://m.youtube.com/watch?v=kDSXOqsjc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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