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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May 23. 2021

울음 우는 일


얼마 전에 A에게서 전화가 왔다.

- 선배, 어디야?

ㅡ 응, 친구 만나고 들어가는 중이야.

- ...

ㅡ 왜? 말을 해.

- 나, 너무 힘들어...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흐느꼈다.

그녀몇 마디를 더 했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지하철 두 정거장을 앞두고 하차해서 플랫폼 한쪽 끝의 의자에 앉았다.

울음 섞인 그녀의 목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일전에 그녀의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기에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그러기에 무슨 일인지 다그쳐 물어보지 않고 조용히 듣기로 했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정을 들이며 쌓은 인간관계.

어느새 사랑은 열기를 잃고 일상적인 감정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시를 사랑하는 여린 심성의 A는 아직도 설레던 첫 만남의 기억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상대는 때때로 자신의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만남을 지속했지만 감정 문제에서는 솔직하게 냉랭해졌음을 알려왔다.


A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변함없음을 보여주면 상대가 언젠가는 알아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기대가 헛될 것이라는 조언을 하는 것은 그녀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의 희망을 짓밟는 것과도 같았다.

그러기에 그저 들어주고 염려의 눈빛을 보내줄 뿐이었다.


A는 그날도 를 만나고 왔다고 했다.

식욕도 없고 우울하다는 전화에 먹을 것을 잔뜩 사들고 갔다고 했다.

의 따뜻한 허그와 스킨십이 그리웠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고 했다.

순간 그동안 균열이 갔던 자존감이 무너져 내렸고 참을 수가 없어서 자신의 감정을 떨리는 음성으로 표현했다고 했다.


는 이제야 우리 관계의 실체를 알았냐고 차분히 응대했다.

그냥 편한 사이로 지내면 안 되겠냐고도 했다.

또 자신도 너무 피곤하니 두세 달간 연락을 끊고 지내면서 생각해보자고도 했다.

그리고 수면제를 먹고 좀 자야겠으니 이만 가 달라고 했다.


결국 그녀는 가져간 과일을 문에다 집어던지고 나왔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

그러지도 못한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워서 더 눈물이 난다고 했다.


나는 어느새 지하철 역을 빠져나와 두 정거장을 걸어가며 전화를 받고 있었다.


A는 급기야 감정적 혼란으로 인한 가슴 통증을 호소했다.

그래서 서랍 속에 해열진통제나 간단한 종합감기약이라도 있는지 찾아보라고 했다.


A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나 상대와는 달리 홀로 힘든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진 그녀위태롭게 보였다.

어떤 감정이 휘몰아칠 때는 그 감정의 당위성에 대한 어떤 언급도 아무 소용이 없다.

과연 감정의 폭풍우를 맞서 이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조금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네 심정을 충분히 이해해.

그러나 급류의 한 복판에서는 몸을 가누기 힘드니 일단 생각의 자리를 바꾸어보자.

알고 보면 애정 있는 척 말을 건네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상대도 나름 괴로움이 있을 수가 있어.

너의 순수한 감정을 받아들이기엔 처한 현실이 너무 팍팍하고 시간도 많이 흘러서 관계도 예전 같지 않을 것 같다.

서로의 바라는 포인트가 다르니 엇갈리는 것인데 상대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

자신의 기대와 사랑이 상대에겐 피하기 어려운 구속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이용하고픈 유혹에 빠질 수도 있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야기했다.

ㅡ 네가 바라는 것은 상대의 진심 어린 배려와 관심인데 현재 는 삶의 갖가지 힘든 조건에 부딪혀 있는 것 같아.

만일 그 모든 것을 함께 겪어나가면서 기꺼이 예상치 못한 결과도 감수하겠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어.


그리고 자신의 미숙함을 일부라도 인정한다면 상대를 원망하지도 말고 또 자기 자신의 과오에 집중해서 자학해서도 안된다고 했다.


대부분 이별의 끝은 지극히 비생산적인 자존감의 나락일 경우가 많다. 이 단계에서는 자기 비하에 빠지지 않도록 주변인의 따뜻한 관심과 단호한 격려가 필수적이다. 일종의 심적인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어느덧 듣고 있던 A의 어조가 차분해졌다.

그녀는 자신이 상대의 심각한 문제점을 인지하고도 외면했던 것 같다고 했다.

서로의 관계에 있어 감정적인 포인트보다 그 외의 요소가 훨씬 더 크게 작용하고 있으며 사실 자신은 그것을 감당할 능력도, 자신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고맙다고 했다.

가슴 통증이 다소 줄어들었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의 소용돌이는 언제고 다시 생겨나서 그녀를 사로잡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인어수인 님이 종종 방문해서는 하트를 누르고 가신다.

작가님의 닉은 시소믈리에.

시를 제조하고 감상하고 따뜻한 잔에 담아 치유의 에센스로 담아낸다.

작가 <그대여, 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아요>에서 한 빵집의 낯선 중년 사장 앞에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을 묘사했다.

그녀의 내재된 슬픔이 수위를 넘어서는 순간 빵집 사장은 따뜻하게 마음으로 두 손을 잡아주었다.

가눌 수 없는 아픔이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같은 아픔이 회복된 자리를 찾아간 것이리라.

그 글에 에너지드링크 님이 댓글을 달았다.

동전 세탁소에 빨랫감을 내려놓으면서 울음이 터져 나왔던 기억을 풀어놓았다.

상처는 상처를 즉각 알아보는 이다.



그렇다

울음은

참았던 울음은

전화기 너머로

낯선 이의 가게 안에서

구질구질한 생의 껍데기 앞에서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어

기어이 터지고 마는 것이다


화산처럼 뜨겁게

무지개처럼 아름답게

폭포수처럼 시원하게

솟구치고

펼쳐지고

쏟아져 내리는 것이다...



(혹시 인용된 두 작가님이 글 내용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바로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지나가다가 한 컷. 굳이 신자가 아니더라도 성당을 장식한 꽃만으로도 위안을 받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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