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스토리에 여행 다녀온 사진과 감상을 몇 번이나 올렸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내 일상을 궁금해하지도 않을 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근황을 전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가끔씩의 활자화된 독백은 함께 시간을 보낸 이들의 오해를 살 수도 있기에 걱정이 되었다. 살아보니 같은 차를 타도 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각기 달랐다. 같은 음식에 대한 평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가장 편한 것은 무소식이 희소식인 것처럼 sns에 어떤 전언도 띄우지 않는 것이었다.
사회에 나와 그 다름을 좌충우돌 체험하며 상처 받기 10년, 다시 다름을 점차로 이해하기 10년, 그것을 생활 속에서 편히 받아들이기 연습 10년 하다 보니 생기 있던 시절은 모두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인생에 대한 집요했던 의미 찾기도 빛이 바랬다. 가끔 열과 성을 다해 땀 흘리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자극을 받기보다는 '정말 힘이 좋군'이라고 감상에 젖고 만다. 사실 업무에 익숙지 않아 별다른 성과 없이 애만 쓰는 것이 보여 안타까울 때도 있다.
그러나 어쩌랴. 모두가 그렇게 자기 땅을 단단히 다져가며 인생을 지어 올리는 것이다. 선배나 부모세대의 어드바이스는 낡은 옷과 같아 입기가 불편하고 내가 깨달은 것이 아니니 기꺼이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 이전 세대에도 이후 세대에도 이렇게 삶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반복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지루한 일상의 반복 끝에 가만히 찾아오는 감정이 있다.
- 정말 다행이군~
삶의 반복되는 패턴이 없다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절대 손주들을 이해할 수 없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창조적 에너지가 넘치는 시절엔 이 지루한 반복적인 일상이 극복 대상이지만 의외로 이 패턴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한 분야의 전문가이자 설계자조차도 그 외 분야에서는 정형화된 패턴에 기댈 수밖에 없다.
알고 보면 가정도 패턴이고 국가도, 세계도 패턴이다. 창의적인 사람이란 그 패턴을 최대한 활용하며 모순을 인지할 때 적극적으로 개선을 시도하는 이를 지칭하는 것일 게다.
카스에 올린 글을 지우고나니 기억도 함께 사라졌다. 그래서 가장 최근에 다녀온 여행 기록을 올리되 공개를 제한하기로 했다. 기록이 있으면 그 여행을 필요할 때 재활용할 수 있다. 일상의 반복으로 삶이 질릴 때마다 기록을 보면서 무작정 걷던 이국땅에 대한 기억을 소환할 수 있다. 이렇게 올린 글을 우연히 두 친구가 돌려 보고는 블로그나 페이스북에도 올려볼 것을 권했다.
공연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나를 문학을 전공한 한 친구가 거듭하여 설득했다. 그리고 다른 친구는 나의 근황을 자세히 듣고는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소일거리도 중단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충고했다. 그는 제법 인문학 서적을 탐독하여 나름 교양을 쌓고 있었다. 그의 정신 속에는 가치 있는 삶의 구현이라는 오래된 구호가 살아 있었다. 거친 세상 풍파에 시달려 꿈을 잃어버린 주변인들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그는 얼마 전부터 사업에서 손을 떼고 고전을 비롯한 다방면의 서적을 탐독하며 수양에 힘썼다.
그는 함께 걸어갈 동지로 나를 지목했다. 그러나 나는 기력이 부족했고 의욕도 저하되어 있었다.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전에는 미처 몰랐던 인문학과 예술에 대한 일정한 안목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비로소 다소 안심이 되었다. 최소한 길을 걷다 넘어지면 부추겨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때 코로나 사태로 불안한 출퇴근을 하던 중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겨 사직을 결심했다. 이래저래 운명인 것 같았다.
주변의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이다.
- 잘 되었어. 코로나도 무서운데 넘 사람을 많이 접촉하잖아?
- 그래도 참지~ 어디든 막가는 부류는 다 있고 또 경제적인 것도 생각해야지.
둘 다 맞는 말이다. 이럴 땐, 마음이 내키는 대로~ 그래도 나중에 내 판단이 옳지 않았었다는 생각이 들까 봐 약간은 두렵다.
Que Sera Sera~ Doris Day의 흥겨운 올드팝 가락이 떠오른다.
케세라세라, 될 대로 되라지 뭐~
붙잡는 손길을 뿌리치고 미안한 마음에 인사도 채 못 다 나누고 사무실을 나섰다. 막연한 미래가 이상하게 가볍게 느껴졌다. 그리고 브런치를 발견하고 세 편의 글을 정리해서 작가 신청을 거쳐 생경한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이 지난 보름 안에 일어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