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어느 날, 인사동 문화의 거리를 배회하다가 3호선 안국역 쪽에 가까운 갤러리 인사아트 1층을 기웃거렸다. 여기는 커다란 통창 너머로 갤러리 안이 훤히 다 들여다 보이는 곳이다. 그래서 전시 중인 그림의 경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그러니까 원치 않은 곳에 잘못 들어왔다가 뻘쭘해지는 경우는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일단 밖의 거리에서 작품 스캔이 가능하니까. 그러므로 약간만이라도 좋아하는 소재나 스타일, 혹은 색감이 보인다면 들어가 보는 것이 좋다.
흔히들 걱정하는 것처럼,
- 관람비가 있습니다 ~
- 어떻게 오셨나요?
- 그림 사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 팸플릿 좀 구매해 주시겠어요?
- 오셨으니 방명록 작성 좀 해주세요~ 등의 대화는 아쉽게도(?)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변 관람객들을 살펴보면 이삼십 명 중의 한 명 정도가 작가나 전시 매니저와 대화를 나눈다. 그래서 보통 때의 전시장 분위기는 마치 종교 시설의 그것처럼 고요하다. 즉 아무도 관람객의 관람 행위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니 안심하고 맘껏 감상할 일이다. 작가와 눈인사도 없이 전시장을 나와도 썰렁한 갤러리에 온기를 나눠준 당신을 작가는 고마워할 것이다. 이러하니 문을 나올 때는 가볍게 "잘 보았습니다~"라는 인사를 남겨보자.
아, 데스크 위의 한 장씩 인쇄된 작품 엽서는 무료이고 얇은 작품 팸플릿은 칼라 화보인데도 대략 3천 원 정도이다. 그것도 대화가 좀 통한다 치면 거저 주는 경우도 있다. 무심코 받아온 작품집이 책상 위에서 잠자다 어느 날 문득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관계가 형성되고 작품에 대한 안목이 생겨난다.
좋아하거나 인상적인 전시회에서는 작품 사진을 좀 더 많이 찍게 된다. 때에 따라선 아주 가끔이지만 관계자가 촬영 금지라고 알려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미리 "사진을 좀 찍어도 괜찮을까요?"라고 묻는 매너를 갖춘다면 만점짜리 관람객이 될 것이다.
사실 시간이 좀 지난 전시회를 기억해보려고 사진을 찾아보았다. 사진을 밀어 올려보니 촬영 당시의 정보가 자세히 드러난다.
2.62MB의 용량으로 나목군 그림이 저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촬영 날짜와 시간 데이터는 기본적으로 저장되어 있다. 계절의 여왕 5월의 마지막 날. 그때의 사진은 한때 빛나던 계절을 간직한 사진 이상의 것이 되었다.
전시장 한 면을 가득 메워 섰던 겨울 나목들. 그 등뼈 끝 언저리에 진주처럼 까치집들이 맺혀 있어 생명의 온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너와 나의 마른 뼈로 서로 기대어 겨울 언덕을 지켜내는 광경을, 작가는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 혹시 어느 그림이 가장 맘에 드시나요?
간단히 인사를 끝내자 작가가 먼저 물어왔다.
ㅡ 저기 <한낮의 포도밭>이 눈에 들어오네요. 검은 그늘망과 대나무 위의 그림자, 그리고 바닥의 비닐 깔개와 잡초들. 포도밭에 부는 한낮의 더운 바람도 느껴지네요.
검은 그늘망 표현에 상당한 공을 들였을 법한데요?
- 전 조각도로 하나하나 홈을 파고 그 위에 물감을 덧칠해서 입체감을 부여하죠. 그래서 보는 위치에 따라 빛의 굴절 또한 다르게 느껴지지요.
작가는 천 캔버스가 아닌 질이 좋은 나무판을 캔버스로 사용한다고 했다. 그래서 조각 작업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림은 작가에 따라 붓뿐만 아니라 나이프나 조각칼이나 다른 도구들, 심지어 맨 손이나 그 외 신체 일부 등이 동원되기도 한다.
일부 나무 판화에 회화를 덧입혀 표현하는 작가의 작품에는 역시 나무와 바람과 어머니와 따뜻한 기억이 피어난다. 그 위에 가디건 같은 가림막과 망사와 그물과 덩굴이 내려와서 찬란한 슬픔 같은 것을 가만히 내리 덮는다. 또한 작가의 온유하고 따뜻한 손길이 생의 상처를 감싸안는 것도 같다. 작가는 본인이 크리스천이라고 말했다.
<한낮의 포도밭> mixed media 2021. 세밀하면서도 자연스런 터치가 인상적이다. 재밌게도 포도는 오른쪽 상단에만 살짝 걸려 있다. 마치 우리네 생의 부족한 결과처럼.
초록색과 뜨거운 빛은 대표적으로 여름을 상징한다. 그 솟아나는 생명력의 분출을 파란 그늘망이 식혀 주며 수위를 조절한다. 아래 그림은 청춘의 불꽃과 야망을 갈무리하기 시작한 작가의 연대기가 아닐까?
<초록넝쿨과 파란 그늘망> mixed media 2021
미쳤다. 백만 송이 백매화라니!
다소 과장된 공간의 사용과 헝클어져 보이는 가지와 들떠 보이는 꽃송이들.
사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때를 겪지 않았던가?
빛나는 에너지가 구심점도 없이 마구 피어오르던 시절, 너도 나도 불에 데어 상처를 입곤 했다.
오늘 그 불꽃이 폭죽처럼 화면에서 폭발했다!
(나의 개인적 감상은 당연히 작가의 의도와는 다를 것이다. 사람 사이에 놓인 작품이라는 강물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흐르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만개한 백매화> mixed media 2019
(두 시간 전에 사진 정리만 한 상태에서 클릭 잘못으로 발행이 되었다. 발행을 취소하고 감상을 덧붙였는데 다소 덥고 힘들어서 일단 중간 발행 후 곧 나머지 멘트를 이어가려고 한다. 읽는 분들은 알아서 취사선택하시면 되겠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노?라는 중얼거림도 들려오겠다^^
근데 아래 그림 늦가을 단풍 든 감나무 묘사란~ 정말이지 살아있다!)
여기까지 읽은 지인이 작품 감상이 좀 길어서 건너뛰게 된다고 톡을 보내왔다.
그렇다면~
나머지 그림은 각자의 감상 몫으로 남겨두어야겠다.
그리고 주문을 외워야겠다!
짧아져라~ 짧아져라~
<감나무> mixed media 2018
아래 그림에 대해서는 그냥 지나갈 수 없다.
늦가을 큰구슬 같은 열매들을 매달고 잎사귀 앙상한, 그러나 철골처럼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르는.
작가의 강인한 예술혼이 초겨울 느티나무에 빙의되었다.
제목도 하늘바람!
<하늘바람> mixed media 2015
<겨울나무숲> mixed media 2020
<파란휴식> mixed media 2018
<평상> mixed media 2021
작가님의 초상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모자이크~
평상으로 세 개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다니~
김보연 작가님은 평범한 일상이 가장 평안함을 평상에 누워 알아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