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순 화백 작품전

젊은 영혼의 예술가

by 김도형


인사동 문화의 거리 중간에 있는 인사동 마루 문화 센터. 그곳 2층과 3층의 갤러리 공간에서는 다양한 작품들이 매주 전시되고 있다. 건물에 가로로 걸린 두 개의 플래카드가 노재순 화가의 전시를 알리고 있었다.(지난 7월 말경)




그 건물 옥상에 처음으로 올라가 봤다. 나무데크 양옆으로 식물들이 자라고 벽 한쪽에는 장독대처럼 올망졸망한 항아리들이 모여 있었다. 뜨거운 오후였지만 정겨움이 가득한 옥상 정원에 적잖이 감탄했다. 가을엔 이곳에서 바람을 쐬며 한동안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건물주에게 땡큐 쏘 마치~.



3층에서는 한 작가가 큰 방과 작은 방 두 개를 합쳐 무려 세 개의 공간에서 전시를 열고 있었다. 강렬한 여인의 입술을 주제로 한 전시였다. 먼저 관람객이 없는 2, 3관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1관으로 입장했다.

늘 전시회장에 들어가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작가들의 영혼의 편린이 담긴 생생한 작품들을 무료로 감상한다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이다!



입구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안쪽에 작가로 보이는 분(사진 인물 중 맨 끝)과 여러 명의 관람객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다.


세 개의 전시장에 작품이 많이 걸린 탓도 있지만 판매되었음을 알리는 빨간 스티커가 붙은 작품이 유독 많았다. 한 무리의 관람객이 빠져나간 후 슬쩍 이를 물어보았다.

- 근 10년 만에 전시회를 가졌는데 예상 밖의 반응에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더구나 지금의 코로나 사태를 감안하면 말이지요.

작품의 어떤 점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는지 무척 궁금해졌다.




대부분의 작품에는 Sounds of Silence 혹은 Sounds from the Wall이라는 영문 제목이 달려 있었다. 침묵과 소리의 가교 - 클로즈업된 입술을 통해 작가는 하고픈 많은 이야기를 화면 구석구석에 배치했다. 하나하나 소품 같은 표현의 의미를 듣다 보니 스토리텔링이 녹아있는 그림들임을 알게 되었다.


아래 그림에는 큰 입술 아래 슬픈 표정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하고 있다. 이는 작가가 비행기 좌석에 비치된 잡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스라엘에 있는 통곡의 벽 앞에서 억울하게 숨진 영혼들을 위로하는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그 옆에는 EXIT를 뒤집고 우리말 씻다를 그려 넣었다. 노 작가는 아마도 우리의 아픔으로 이어지는 강렬한 동조 현상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 역시 판매된 작품.

(작품 속 십자가와 sorrow도 찾아보시라~)




입술의 반짝임으로 보아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 줄 알았다. 하지만 전통 유화란다. 입술은 실제 모델의 것이라고 했다. 아래 작품에서는 과녁이 의미하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입의 결과는 총알이나 화살과도 같지 않은가?




아래 두 작품에는 현대미술의 한 주류인 팝아트 작품 일부가 콜라보되어 있다. 팝아트의 거장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과 원더우먼 시리즈가 작품의 소재로 사용되었다. 첫 그림의 우측 상단에는 황금 염소상이 번쩍인다(미국의 한 박물관에서 이 염소상의 아름다움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아래 그림에는 Sweet Dreams라고 표기되어 있다. 작가는 입술 하나로 온 세상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아래 그림의 제목은 Happy Day로 기억하고 있다. 세 아이의 등장, 그런데 과녁과 주황색 점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작가는 총상 입은 입술 작품을 여러 개 전시했다. 언론은 총이 되기도 하고 거꾸로 사격을 당하기도 한다. 서양인 특히 미국인들이 총탄 자국 그림에 관심을 많이 보인단다.

사실 작가는 오래전에 뉴욕의 그래버티 낙서 작품들을 보고 영향을 받았다고 귀뜸해주었다.




아래 작품에는 작가 자신이 등장한다. 그런데 머리 위의 두 존재가 궁금하다. 제목은 Sounds in My Dream. 꿈속의 동행인 혹은 자신의 분신일지도 모르겠다.




육감적인 입술과 시사적인 의사 표현의 충돌과 융합. 사랑과 평화와 위로를 선택한 노화백의 의지는 젊은 영혼으로 되살아났다.




작가의 오래전 유일하게 남은 판화 작품. 본인의 소장작이라 비매품이었는데 이번에 기어이 후배 작가의 손에 넘어가 버렸단다.




장남인 작가가 미대로 진학했기에 친동생은 다른 분야에 종사했다. 하지만 최근에 뒤늦었지만 작품 활동을 개시했단다. 찬조작으로 자화상을 보내왔다고.




작가의 연륜과 매너가 마치 드라마 주연급이었다. 선물로 주신 두꺼운 화보집의 사진이 오히려 부족해 보였다. 장시간 인터뷰에도 오히려 즐거운 기색이 역력했다. 여유가 넘쳤다.


부드러운 카리스마! 헤어질 때 생각난 표현이었다.



이후로의 약력은 여러 페이지로 이어진다.


작가님이 비망록의 새 페이지를 할애해 주셨다.


혹시라도 작품 감상을 글로 옮기게 되면 알려주기로 했으니 좀 더 다듬어서 조만간 연락드려야겠다.

8~9월에는 제주에 있는 지인의 갤러리에서 전시를 계속 이어갈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