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이는 푸른 동쪽 바다 한가운데에있는 울릉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소년은 한 번도 섬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습니다.가끔씩 아버지의 배를 타고 주변 바다로 나가볼 뿐이었죠. 그런데 이년 전 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좀 더 멀리 파도를 헤치고 대한이를 데려갔습니다. 배를 타고 한참을 가다 보니 멀리서 두 개의 큰 바위섬이 나타났습니다. 그한 쌍의 섬에는 수많은 바다새들만이오가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곳을 끝으로 동쪽 바다에서는 더 이상 육지도 섬도 찾아볼 수 없었죠.
초등학교 삼 학년인 강대한은 바다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방과 후엔 종종 바닷말을 말리는 엄마의 일손을 돕곤 했지요. 그렇지 않은 날엔 친구들을 따라 파도가 거칠지 않은 해안가에서 멱을 감았습니다. 덩치가 큰 형들은 숨을 참고 물속으로 들어가서 큰 조개나 전복을 건져냈습니다. 대한이는 얕은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퐁당거리며 재미있게 수영을 할 뿐이었습니다. 형들을 따라 하기엔 힘이 부쳤으니까요.다 같이 물 밖으로 나와 모래사장에 누우면 뜨거운 열기가 차가워진 몸을 데워주었습니다. 머리 위로는 바다제비들이 날아다녔습니다. 가까운 절벽 위에는 여러 종류의 새들이 집을 짓고 새끼를 길렀습니다.
대한이는 아직 어렸기에 태어난 섬 울릉도를 모두 구경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넓은 육지와 육지 사람들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티브이를 틀면 큰 바다와 산맥 너머의 외국 소식도 날마다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섬소년인 대한이의 유일한 꿈은 육지의 가장 큰 도시인 서울을 가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바다 끝 바위섬들이 서서히 마음속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죠.
얼마 전의 여름날 아침,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던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 오늘은 하루 종일 파도가 잔잔하겠군. 같이 바다에 나가보지 않으련?
대한이는 아버지의 표정과 말투에서 그 무인도를 돌아올 계획임을 금방 알아채고 부리나케 아침밥을 먹었습니다.
아버지는 바다 중간중간에 놓인 통발을 끌어올려보며 배를 밀어나갔습니다. 햇빛이 따갑게 내려 쪼였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그리 덥지는 않았지요. 배가 삐걱거리며 몇 시간을 나아가자 멀리서 섬의 뾰족한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대한이는 아무 표시도 없는 물 위에서 매번 길을 잃지 않는 아버지의 솜씨에 감탄했습니다. 배를 섬 한쪽가에 대놓고 엄마가 싸준 주먹밥을 먹었습니다. 밥에는 소금간만 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섬그늘에서 아버지와 단 둘이 먹는 주먹밥은 아주 색다른 맛이었습니다.
배의 시동을 끈 채 잠시 쉬는 동안 대한이는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는 어디선가 강아지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아빠, 저 소리 좀 들어보세요!
소년은 아버지와 함께 소리 나는 곳으로 다가갔습니다. 검은 갈색의 바다 동물 한 마리가 그물에 칭칭 감겨 바위틈 속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 아빠, 물개가 못 움직여요.
- 음... 이건 물개와 아니라 강치라는 독도 바다사자가 틀림없구나. 오래전에 씨가 말랐다고 들었는데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대한이는 아버지와 함께 배에서 내려 강치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어구를 다듬는 칼로 조심스럽게 강치를 감은 그물을 끊어냈습니다. 강치는 너무 울어서 지친 듯 가만히 몸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그물을 걷어낸 후에도 강치는 눈만 꿈뻑이며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때 대한이가 무언가가 생각난 듯 급히 배로 돌아갔죠. 그리고 오는 도중에 잡았던 물고기들을 가져와 강치 앞에 놓았습니다. 강치는 잠시 눈치를 보다가 허겁지겁 물고기를 주워 먹었습니다. 두세 발 떨어져 바라보던 아버지는 아마도 어린 암컷 강치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소년의 머릿속에서는 강치의 먹물 같은 두 눈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늘엔 회색 구름이 낮게 깔렸고 옷깃을 펄럭일 정도로 바람이 세게 불었습니다. 대한이는 바다 끝 무인도의 가파른 능선에 홀로 서 있었습니다. 괭이갈매기들이 위협하듯 그 주변을 날아다녔지요.
- 대한아, 여기야~
어디선가 낯익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대한이가 아래쪽 바닷가를 바라보니 한 소녀가 서 있었습니다.
- 너는 누구니?
- 나야~ 여기서 너의 아버지와 함께 만났잖아. 네가 맛있는 음식도 주었고...
- 내가?
이야기를 나누며 대한이는 천천히 바닷가로 내려갔습니다.
소녀는 짙은 갈색 머리칼에 투명하리만큼 맑은 피부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눈동자는 바다에 비친 햇살처럼 반짝였지만 어딘지 슬픈 느낌을 주었습니다.
소녀는 궁금한 표정의 대한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 안녕? 나는 사실 아주 오랫동안 이곳 섬에서 살아온 강치 부족의 마지막 생존자야.
- 마지막?
대한이는 신비한 소녀의 정체가 궁금했습니다.
- 그래. 지금으로부터 약 백여 년 전에 이웃 섬나라 일본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총을 쏘고 작살로 부족인들을 찌르기 시작했어. 수만 명에 이르던 우리들은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없었기에 속수무책으로 잡혀갔지.
- 왜?
- 일본인들은 큰 육지인 대한제국을 강제로 합병하고 이곳 섬들도 강탈하기에 이른 것이었어. 수십 년에 걸쳐 우리 부족은 그들의 전투 물품과 식량과 기름으로 희생되었어. 전쟁이 끝난 뒤에 살아남은 부족인은 극소수였기에 결국은 생존을 이어가지 못하고 지상에서 사라지고 말았지.
-... 너는?
- 최후에 남은 생존자 중 제일 나이 많은 강치 할아버지가 슬피 울면서 말했어. 전쟁이 끝났지만 사람들의 심성이 포악해져 더 이상은 이곳에서 살 수가 없게 되었다고. 그리고 이렇게 말했어.
- 바다 큰 고래들에게 어렵게 부탁했으니 아주 먼 섬을 거쳐 대양을 건너가거라. 그곳 땅의 바다사자들은 크고 텃세도 강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보다 안전한 그곳에서 살아남아 훗날 다시 가족들을 데리고 귀향하도록 해라.
- 그럼 너는?
- 부모님으로부터 그런 사연을 듣고 용기를 내어 고래의 안내를 받아 선조들의 고향을 살펴보러 왔어. 그런데 그만 누군가 쳐놓은 그물에 걸리고 말았던 거야.
그때 심정은 다시는 돌아올 곳이 못 된다라는 절망감에 빠졌지만 너와 너의 아버지의 도움을 받고는 생각이 바뀌었어.
- 그럼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거야?
- 응, 그럴 생각이야. 다행히 얼마 전에 이 땅을 떠나 또 다른 곳으로 피신했던 부족인들의 후손들이 살아남았다는 소식을 들었어. 이제 그들을 찾아가서 함께 돌아와 살 계획을 세울 생각이야. 이젠 너처럼 이곳 사람들도우리를 보호해주려는 마음이 커질 것 같아.
- 넌 정말 씩씩하고 용감하구나.
- 아니야. 너야말로 이웃을 소중히 여기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왕자님과 다름없어.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이 아름다운 섬과 바다를 잘 지켜주길 바래. 고마웠어, 그럼 안녕~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할 사이도 없이 소녀와 섬과 바다가 빠르게 사라져 갔습니다. 대한이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창밖에는 새벽의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습니다. 소녀의 슬픈 듯 빛나는 모습이 별빛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대한이는 꿈속의 소녀가 분명 강치 부족을 부활시킬 용사, 독도 강치 공주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이른 아침, 소년 대한이는 허리를 똑바로펴고언덕 위에 서서 푸른 독도 바다를 응시했습니다.그리고 지난밤 이야기를 자신의 가슴속에만 간직하기로 했습니다.
- 기다릴게, 어서 집으로 돌아와~~~
소년은 바다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마침내 대한이의 두 눈에서 작은 이슬이 반짝였습니다.
(한 때 해양수산부와 경상북도와 울릉군은 멸종으로선언된 독도 강치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캘리포니아 바다사자를 들여오는 것을 구상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DNA 분석을 통한 개체 복원을 탐색하는중이다. 다행히도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강치 복원 및 전시를 위해 2019.12월에 14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