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때는 영단어 외우기가 꽤 힘든 과제였다.
서점에 가면 나름 체계적으로 긴 단어를 분석해서 보여주는 단어집들이 여럿 있었다.
비록 기대와는 달리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요런 놈들이 합성되어 새 단어가 만들어졌구나 정도는 알게 되었다.
또 하나, 진정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영단어를 익히는데 자꾸 라틴어 어원이 튀어나와 방해하는 것이었다.
일단 궁금하면 이해되기 전까지는 수용의 문이 열리지 않는 스타일이라 엄~청 힘들게 공부했다.
책의 머리말에도 수업시간에도 도대체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대학을 진학하여 영문학사와 유럽 역사를 강독해보니 하~ 알게 되었던 것이다.
과거 영국과 아일랜드는 유럽의 변방으로 바다 건너 멀리 비문화인(유럽 대륙에서 볼 때)들이 살던 척박한 땅이었다.
대륙의 문화는 대개 침략의 과정을 통해서 섬나라인 영국으로 전해졌다.
그 대표적인 것이 로마제국의 침략이다.
지금도 로마시대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영국 잉글랜드의 남동부에 위치한 Bath라는 도시는 로마식 공중목욕탕 유적으로 유명하다. 그 도시 이름에서 Bath(목욕)라는 단어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굳이 우리식으로 하면 온천목욕 마을쯤 되겠다. 그곳은 십수년 전에 세계 유산에 등재되었다.
Bath, England. 출처 - Pixabay바로 이 시절에 문화 향기 드높았던 로마어가 많이도 차용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영어를 좀 공부하겠다 하는 이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라틴어까지 섭렵해야 한다.
여기서 왜 로마어가 아니고 라틴어냐고요?
BC 505년에 라틴 민족이 고대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 지역 라티움을 정복했다. 이후 라틴 민족이 이탈리아 전역을 정벌하며 타 지역의 언어를 흡수 병합하였다. 그리하여 고대 라틴어가 생겨난 것이다. 그 후 시기별로 중세 라틴어, 현대 라틴어 등으로 나뉜다.
현 로마자의 기원을 살펴보면,
수메르의 상형문자가 이집트의 상형문자와 음절 및 자모문자로, 다시 고셈과 페니키아 문자를 거쳐 고그리스와 고로마자(BC 6세기)를 지나 로마자(BC 3세기)에 이르렀다.
그 로마자는 광활한 로마제국 시절 이후에 각 유럽 나라의 언어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근대의 산업혁명 이후에는 새로운 신조어에 차용되며 현대 라틴어의 활동 영역이 전 세계로 확장되었다.(다음 백과, 라틴어 참조)
구어는 모든 민족이 가지고 있으나 글자는 표기법을 정립해야 사용할 수 있기에 고도로 발달된 문명의 소산인 것이다. 하여 고대 로마인들이 이렇게 이웃 선대 문명의 문자를 이어받아 세련되게 정립시켰던 것이다.
(민족적 자긍심이 넘치는 우리 민족도 세종대왕 전까지는 고유 문자가 없었으니 문자를 소유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줄 알겠다. 덕분에 당시 내로라하는 학자들을 총동원하여 집현전에서 세계 최고의 문자를 만들어냈으니 전화위복이라고나 할까?
물론 일각에서는 이미 한글의 모체가 되는 우리 민족 고유의 문자가 존재했다는 학설을 내세운다.)
어쨌든 라틴어는 이렇게 로마 문명을 통해 영어에까지 보금자리를 틀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에 특징적인 고유한 문명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던 영국인들은 북유럽 바이킹들의 침략을 받고 또 영향을 받았다. 그 후엔 가까운 바다 건너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그 당시 영국 왕실에서는 공식적으로 프랑스어를 썼다고 한다.
그러던 영국이 심기일전하여 대영제국으로 변모했던 것이다.
한 나라의 언어에는 그 나라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언어도 세상 풍파를 겪기에 상처와 영광이 드러난다.
또한 교합된 이질 문화들도 숨어 있다.
각설하고,
이 Epigram라는 단어는 라틴어 접두어 epi(위, 겉, 밖, 뒤의 의미)와 ~gram(기록, 그림, 문서의 뜻)이 결합되었다.
그 뜻은 경구, 짧은 풍자시이다.
굳이 어원에 따라 풀이하자면,
겉으로 드러난 의미 있는 기록 혹은 표현 정도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에세이를 쓰다가 시를 쓰다가 5줄 이내의 시를 쓰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경구가 쓰고 싶어졌다.
자려고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 두어 개를 썼다.
다시 누웠는데 다른 경구가 떠올랐다.
그렇게 누웠다 일어났다 하면서 하룻밤에 10편 정도를 써 내렸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자꾸만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았다.
학창 시절, 다윗의 시편과 솔로몬의 잠언이 가슴에 와닿았다.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언어와 크리스털같이 반짝이는 지혜가 청춘의 시름을 달래주었다.
그리고 전쟁 중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의해 집필된 <명상록>에 매료되었다.
레바논의 현자인 칼란 지브란의 <예언자>를 읽고는 탄식했다. 왜 우리는 이런 책 한 권이 없는 걸까라고.
채근담과 법구경을 읽고는 긴 시간 끝에 생각을 내려놓는 연습을 했다.
가장 큰 쇼크는 입원 후 처음으로 본 주치의(그는 티브이에도 자주 출연했던 대형병원의 간부급 의사였다. 후일 병원장이 되었고 메르스 사태때는 대통령과의 회동도 보도되었다.)의 한 마디였다.
- 당신은 이러다 곧 죽을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 써야겠다는 저 밑에 가라앉아 있던 결심이 한순간 조용히 솟구쳐 올라왔다.
- 너, 이런 거 쓰지 마~
친구의 얼굴은 걱정하는 표정이지만 속마음을 알겠다.
누가 이런 교훈 투의 글을 좋아하겠어?
그리고 네가 글처럼 그렇게 살고는 있니?
사실 그런 점 때문에 쓰기가 망설여졌었다.
그런데 그러다가는 영영 못쓸 것 같았다.
- 그래, 일기장이라고 여기자.
- 누군가 들어왔다가 읽기 싫으면 그냥 나가겠지.
경구를 쓰면서 재미있는 현상이 생겼다.
어느 날 급 화가 나는 일이 생겼는데
그 순간 내가 썼던
~ 현명한 당신이 한 발 물러서라
는 문구가 딱 떠올랐다.
덕분에 문자로 보내려던 톡을 가만히 내렸다.
이곳의 경구는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
내가 나 자신에게 전하는 조언 내지 다짐인 것이다.
이제 두 편씩 20화를 발행했으니 총 40편을 썼다.
이제는 좀 다른 형식으로 써 보고 싶어졌다.
우화 형식으로 10편을 더 지어 전체 30편짜리로 만들어볼 생각이다.
브런치를 만나 구체적인 기록 활동을 하게 되어 퍽 다행스럽다.
아니었으면 여기저기에 끄적거리다가 어느 순간 멈추었을 것이다.
또한 여러 선량한 작가들을 만난 것도 큰 행운이다.
여기서 한 번이라도 만났던 모든 분들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 지인들에게 감사를 드려야겠다.
덕분에 지금껏 이것저것 써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속이 든든한 English Breakfast 출처-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