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음

by 김도형


8월 말 주말의 지하철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수도권에서는 방역 4단계가 9월 초까지 연장되었다. 확진자가 증가하자 점차로 지방 대도시에서도 4단계가 시행되었다. 1년 반 넘게 마스크 사용이 의무화되어서인지 착용으로 인한 불편함을 호소하던 이야기도 사라졌다.


반포대교를 지나는 차창 밖으로는

장맛비의 영향으로 한껏 불어난 한강이

황톳빛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내가 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어느 날 눈뜨고 보니

나의 절반은 그대로 아버지, 또 절반은 어머니였다.

그저 정도의 차이가 있어서 거죽만 한쪽을 더 닮았을 뿐이다. 성품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부모와는 영 다른 인물이라 생각했는데 시절의 변화가 색다른 옷을 걸치게 만들었을 뿐 그분들의 모습이 바로 나였다.


부모가 돌아가신다 함은 어데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만들어놓고

다시 내게로 스며든다는 것이겠다.


한 번 생겨났다 스러짐은 보이는 현상이거니와

그 자취는 고스란히 남는다.

서로의 본모습은 광활한 우주 속에서

선후가 없이 하나로 섞이어 흐를 뿐이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아이가 먼저 나고

조상이 나중에 났다 했던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프로그래밍하는

손을 보라!


그 손은 오직 태고의 적막한 침잠 속에서만

드러날 것이요 한 번 드러나면 낱낱이

밝혀 보이니 조금도 감춤이 없다.

그리하여 이를 맛본 이는 부끄러움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가 되어 세상의 손가락질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세간의 조롱을 뒤로 하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쓴다.


우리의 마음은 앞뒤와 안팎이라는

경계에 갇힐 때 한없는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현실이라는 좁은 배 위에서도

우주라는 거대한 바다의 물결을

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바다가 부모이고 자연이고 생명이다.


우리는 때때로 탐욕과 미망의 허깨비를 따라

춤을 추며 생명의 정기를 소모한다.

부부의 인연도 집착하면 지옥불이 되거니와

이를 고이 내려놓으면

서로가 스승이요, 은혜자가 될 수 있다.


나의 글은 나 스스로를 가르치는 거울이다.

글을 쓸수록 창백하고 애처로운 자아가 드러난다.

나를 닮은 자아.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나에게 갇힌 세계.

그 세상에 길을 내려 글을 쓴다.



고흐, 그는 자기 길을 미친 듯이 달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