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장터 국밥

by 김도형


오늘은 구경차 간이 장터에 들렸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와서 우산을 가지러 다시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천막을 친 점포는 평소의 절반도 차지 않았습니다.

역시 장보러 나온 사람들도 별로 없었고요.

상인들 표정도 큰 기대가 없어 보였습니다.

아점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곳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는데요,

바로 장터 국밥집입니다.


중고등 학생 때는 그런 간이 포장 식당에서 국밥과 술 한잔을 먹는 분들을 피해 다녔죠.

왜냐고 한다면...

육체노동으로 찌든 모습과 거친 농지거리에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약간은 무서웠죠.


그러나 어린 물고기가 작은 연못을 떠나 거친 파도 일렁이는 세상에 나와보니 그 시장의 밥집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선배들은 맘 좋은 척 싸구려 제조 막걸리를 마구

사 먹였고 우리들은 단체로 토하기 바빴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것도 과나 써클의 이름으로 된 외상 장부에 달아놓고 술을 산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선배는 외상값을 다 갚지 않고 졸업해버려서 막걸릿집 이모들이 속을 태웠죠.

그러다 몇 년 후 양복을 입고 술집에 떡 나타나 후배들과 이모를 놀래키며 남은 술값을 통 크게 갚기도 했습니다.

물론 회사에서 일차 이차로 술이 되어서 그 참에 과거의 외상 술값을 청산하게 된 것이 대부분이지요.

어쨌든 그런 일을 겪으면서 나도 나중에 후배들 앞에서 저렇게 호기를 한번 부려봐야겠다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죠.


청춘의 술상에는 안주가 달랑 하나뿐이었습니다.

그 탁자에서 징그럽기 짝이 없는 삶은 돼지 간과 허파와 곱창과 귀와 혀와 질긴 껍질을 차례로 맛보았죠.

그렇게 젊음의 푸르른 날들은 세상의 낮고 소박한 음식들로 채워져 갔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헤어질 줄 몰랐습니다.

이모들이 가게 문을 닫는다고 등을 떠밀면 구멍가게를 찾아가 술과 새우깡을 사서 학교 캠퍼스 잔디밭으로 올라갔습니다.

잔디에 밤이슬이 촉촉이 맺혀도 개의치 않았죠.

그 거대하고도 적막한 캠퍼스의 신성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쉽게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땐 밤하늘의 별들도 연인과 친구처럼 웃으며 우리를 내려다보았지요.





비가 오는 탓인지 천막 식당의 원형 탁자는 삼분의 일도 다 차지 않았습니다.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30대 후반의 부부가 내 뒷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그들은 순댓국과 장터국밥을 하나씩 시켰습니다. 그리고 순대와 곱창을 반반 섞어 추가로 주문했습니다.


내가 시킨 국밥이 먼저 나왔는데 고추기름 동동 뜬 빨간 국물에 살짝 긴장을 했습니다,

아뿔싸, 시래기와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자

매워 보이지만 썩 순한 맛으로 안도감을 주는

기막힌 조화에 마음이 무척 즐거워졌습니다.


그러나 결국 첫 술을 내뱉고 말았는데요,

그것은 너무 뜨거워서 입천장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뜨거운 음식 때문에 투정하던 어린 시절까지 떠오르고 말았는데요,

아직도 음식의 온기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니 어머니가 계시다면 물끄러미 바라보실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비 오는 날엔 한여름이라도 당연히 국밥은 펄펄 끓어야 하고 유일한 찬인 김치는 쉬어 터진 맛이어야 합니다.

오늘도 마치 초절인 김치 같았는데 그 자극적인 맛은 시간의 끝에 주어진 마지막 손길이랄까,

왠지 거부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뒷 테이블의 커플 중 남자가 조그만 소리로 무언가 불만을 표하자 여자가 재빨리 남자의 말을 가로 막았습니다.

하긴 5천 원짜리 국밥집에서 음식 탓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리고 일하는 유일한 처자도 약간 검은 피부톤의 외국 아가씨인걸요.


비 오는 날 하천 변 간이식당의 국밥과 이국의 한 청춘.

그들의 대조는 익숙한 공간을 아주 낯설어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왜 굳이 출신지를 물어보았을까?

방콕이라면 이곳의 유랑 국밥집 일보다는 더 나은 조건의 일자리도 많을 텐데.

아니면 한국인에겐 태국 하면 그저 방콕이니 의례히 대답했을 수도 있겠네요.


무언가 빈 곳을 채우려는 듯

국밥 한 그릇을 모두 비우는 동안

아가씨는 긴 막대로 비 고여 처진

천막 밑을 쿡쿡 찔러댔습니다.


비바람은 간간히 천막 밑으로 밀려들어왔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