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숙 작가 개인전 - 인사동, 2021 가을

by 김도형


지난주 토요일 오전에 인사동 근처에서 동태탕으로 아점을 먹고 문화의 거리(예전에 지정된 명칭이지만 사실 최근에 알았다)를 배회하였다.


메인 거리는 주말에 차 없는 거리로 운영되기에 편안하게 산보하듯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좋다.


탑골 공원 쪽 입구에서 옛 풍문여고 가는 방향으로 가다 보면 중간 오른쪽으로 살짝 들어가면 잘 알려진 경인미술관이 자리한다. 그곳에는 세 개의 전시관이 자리하고 있어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의 백미는 전시관들을 품고 있는 정원 마당이다. 실제로 그림 감상보다는 그 분위기가 좋아 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사람들도 많다.


중심 도로의 왼편에는 최근에 지어진 대형 문화 복합 건물이 중간중간 들어서 있다. 물론 작품 전시를 위한 공간을 함께 갖추고 있다.


좀 오래되었지만 인사아트센터는 지하에서 지상 6층에 이르는 전문 갤러리 공간이다. 큰길에 우뚝 서 있기에 그만큼 접근이 용이하다.

그 건물에 들어서면 층별로, 방별로 정말 여러 작가의 다양한 작품이 매주 전시되는 것을 알게 된다.

일단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계단을 통해 내려오면서 마음에 드는 방의 작품을 감상하면 된다.

가끔은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가 이렇게 많고 또 그 많은 작품들을 어떻게 관리할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내가 아는 지인은 전시회가 끝난 뒤 남은 많은 작품들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관리하느라 고생을 하고 있다 )


이곳의 개인적 애호 공간은 5층의 나무 바닥 테라스이다. 작품 감상 전이나 중간에라도 다리가 아프거나 지루해지면 야외 테라스의 간이 나무 벤치에 앉는다. 정면으로는 오래된 천도교 본당 탑이 고즈넉하게 보이고 왼쪽으로는 삼각형의 인왕산과 청와대의 푸른 기와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발아래로는 꼬물꼬물 사람들이 거리를 오간다. 한 번은 작품 감상을 생략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삼십 분을 넘게 앉았다가만 내려왔다.


바람과 구름과 사람들.

청명한 날이라 좋고 또 흐린 날이라서 좋다.

고도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소박하나 붐비지 않은 숨은 나의 최애 공간, 하늘 정원이다.


그리고 한가하면 쌈지길 문화쇼핑몰의 완만한 경사길을 느릿느릿 걸어 올라가면서 생활 공예품들을 유리문 밖으로 구경하기도 하고 직접 들어가 살펴보기도 한다. 가끔은 구매도 하는데 구매품을 자주 활용하게도 되고 때론 전혀 사용하지 않게도 된다. 구매한 물건을 잘 이용하는 것도 일종의 기술이다.


떨어진 은행잎을 밟으며 중심도로를 설렁설렁 걷다 보니 1층 통유리를 통해 갤러리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곳이 있다.

일전에 김흥배 명인 도예전을 감상하고 인터뷰를 했던 갤러리 인사아트관이다.(앞서 언급한 인사아트센터랑 이름이 유사해서 헷갈릴 수 있다. 실제로 그곳에 머무는 동안 한 여성이 들어와서 물어보고 나갔다)

동양화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전통 회화에 비해 강렬한 색감이 인상적이었다. 마침 관람객도 별로 없어서 편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와유황산-새벽인상. 한지에 혼합재료. 2021

작가는 이번 전시 제목을 와유산수로 정했다.

그 연유를 작가의 말로 대신한다.


병들어 갈 수 없어 옛 여행을 누워 그리워함-이 이 시절과 맞아떨어지니 작가의 감각이 예사롭지 않다.

작가는 그녀의 산수가 연상과 상상의 소산임을 친절히 밝혀준다.


홀로 - 섬. 한지에 혼합 재료. 2021

작가의 <홀로 - 섬> 연작이다.

동쪽 끝 섬 독도를 모티브로 삼았다.

작가는 결혼 후 미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가사를 돌보면서도 도예 등을 익혔다. 그리고 세상사를 어느 정도 건사하자 마침내 홀로 가야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그러나 작가의 홀로 됨은 고독하거나 비장하지 않다.

빨강과 파랑과 금빛으로 강렬하고 충만하다.

작가는 작은 몸체와 여린 표정 속에 화산 하나를 품은 듯하다.

<섬>은 바다의 섬과 (일어)서다의 섬의 중의적 효과를 드러낸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분이다.


아스라이 타오르는 저 섬이 그립다...


친정 가는 길. 한지에 혼합 재료. 2021

도화에 둘러싸인 고향집.

작가의 열정이 뿌리를 둔 곳은 어린 시절의 속리산 근경이 틀림없을 것이다.

속리산!

속세를 멀리 떠난 산.

과연 그 이름에 어울리는 그림이다.

가장 따뜻하게 가슴에 와닿은 것은 바로 이 작품이다.(확대해서 보시기 바란다, 이렇게^^)


작가의 위 작품은 조선초기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연상시켰다.

짙은 안개와 산봉우리, 끊긴 인적...


이쯤 되면 송 작가는 전생에 여선이 아니었을까?...


작가의 작품 다수는 전통적인 먹의 농담에 전적으로 기대지는 않았다. 대신 많은 색을 입히고 물감의 무게를 더했다. 그래서 한지를 최소 3겹에서 5겹까지 쌓아올려서 작품을 완성한다.

참으로 공력이 많이 드는 작업 과정이다.

또한 동양화의 특성상 유화와는 달리 불완전한 그림을 싹 갈아엎고 새로 그릴 수도 없는 고충이 뒤따른다.

조용히 말하는 작가의 모습은 제작이 아닌 잉태라는 낱말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약력을 소개해본다.


작가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답장이 도착했다.

님의 작품이 활짝 날개를 펴고 세상을 비추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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