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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Dec 08. 2021

브런치 단상


브런치에 올라온 글을 보면 생각보다 긍정적인 메시지가 많다. 애초에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작가이기에 그런 작품들을 생산할 것이다. 혹은 갖가지 역경을 극복했거나 이겨내려는 의지로도 읽힌다.

그런 면에선 의미가 있다.

그러나 때로는 그것은 슬픔, 부정 혹은 파괴에 몰두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할 수도 있다.


노래의 음표는 반드시 높낮이를 달리하여 위치하고 장조와 단조는 번갈아가며 작품을 구성해간다. 아침은 저녁과 어울리고 소년은 노인으로 이어진다.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지나치게 힘을 쓰면 부자연스러워진다. 때론 의식을 다칠 수도 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어쩌면 극복의 대상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겪음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성공의 우렁찬 목소리는 진실함을 의심받기 쉽다.


삶은 정작 성공과는 큰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그것은 그저 살다인 것이다.  삶이란 그저 살아내는 것이다. 내가 풀어내는 이야기가 자기 계발서처럼 들린다면 그건 비즈니스 칼럼에 가까울 수 있다. 그것도 나쁘진 않겠다. 누군가에겐 일종의 희망 가이드가 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자칫 브로커의 부자연스러운 얼굴을 갖기 쉽다. 그건 애초에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일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풀어놓되 흘러나오는 곡조대로 수위를 조절하면 그뿐이다. 결말을 정해놓고 생각을 작위 하면 본인뿐만 아니라 읽는 이까지도 함정에 빠져버린다.


유능한 목회자의 설교는 인기는 있을지언정

구원과는 거리가 멀다. 교언은 영색하기 마련이지만 진실은 투박함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는 분명 그의 메시지를 어눌한 말투에 실었을 것이다.


출판을 목적으로 삼은 글은 시대의 흐름에 어울려 들어야 한다. 작가 스스로의 자비 출판이 아닌 이상, 출판사의 편집자는 작가에게 재창작에 가까운 수정 요구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서로 간에 의사 교환이 원활하지 않으면 작품은 활자화되지 못하고 긴 시간 동안 표류하기 쉽다.


여기에 작가의 딜레마가 존재한다. 나름 흥행의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하면서 작품성을 훼손하는 듯 한 제의를 해 올 때, 어느 선에서 이를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런 갈등을 겪은 한 작가가 "무조건 집자가 옳다"라고 선언하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작가의 작품성만으로는 현실적으로 판매가 수월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브런치 작가라면 누구나 <성공적 출판>을 한 번쯤은 생각해봤음직하다. 브런치 운영진들도 여러 가지 공모 이벤트를 진행한다.

물론 일정한 목표를 설정했을 때 동기 부여도 되고 작업 추진력이 생긴다.

그러므로 실패와 낙담을 반복하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나가는 것도 쓰기를 포기하지 않게 되는 요령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각양각색이라고 하지 않던가.

잠시 가졌던 현실적인 목표를 내려놓고 나니 브런치에서의 처신이 한결 편안해졌다.

당연히 각종 심사 대상은 보다 젊고 패기 있는 작가들의 참신한 작품이 합당할 것이다.


매양 밝은 글은, 정말 그럴까?라는 의구심이 들게 만든다.

늘 어두운 글은, 자신이 마주하는 작은 기쁨들을 확신하지 못하고 숨기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똑같이 절반씩은 아니지만 기쁨과 슬픔, 성공과 좌절, 사랑과 이별, 건강과 질병, 만남과 헤어짐, 젊음과 늙음 등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한 현상을 함께 엮어낼 때 입체적인 삶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래야 공감하고 싶어진다.

사람의 삶이 그러하므로.


때로 글쓰기는 작가 자신의 스트레스 분출과 트라우마 치유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만의 독백을 이어가다 보면 추상적이었던 자신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인지된다. 글이라는 거울을 통해 편향된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다른 작가들의 글을 탐독하는 과정은 그러한 결과를 얻는 시간을 단축시킨다.


각자 글쓰기를 대하는 자세나 목표가 다를 것이다.

모든 작가의 정진은 각자 나름의 꽃을 피우는 시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브런치에서 진득하게 살아남기!


또 한 가지,

세계를 조금 여행하면서 다른 인종과 민족들을 만나보면서 느낀 점 -

한국인의 부지런함, 열정, 정직은 미래의 일류 자산이지만 안타깝게 결여된 이것!

유~머!


대체로 한국인이 쓴 글의 분위기는 진지하고 무겁다.

물론 그 배경에는 역사적, 지정학적, 문화적 요소들이 작용한다. 그러나 우리 문화는 어느새 글로벌 핵심 코드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러니 작가들이 세계 공통어인 유머를 엔진으로 장착하거나 곳곳을 빛나는 유머로 장식하면 멋진 작품들을 창작해내게 될 것이다,

라는 개인적인 소견을 남겨본다.



*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을 적었기에 보는 분에 따라서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거나 불쾌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또한 나의 과오가 아니겠는가?

때론 이곳의 글이 고해성사가 되기도 한다.


(단상이라 흐름이 곳곳에서 끊김을 용서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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