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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Nov 30. 2021

11월, 천변 풍경


굵은 빗방울이 날리고

바람이 몹시 불어옵니다.

비 내리는 천변 산책길을

몸을 움츠린 채 두 여인이 지나갑니다


나이 든 여인은 비바람을 견디느라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우산을 기울이고

가만히 서서 숨을 고릅니다

앞서 가던 젊은 여인은 뒤돌아서서 기다립니다


두 사람이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하며

긴 산책길을 따라 마을로 향합니다

두 개의 우산이 합쳐질 때마다

수초 더미 위야생 오리들이 날아오릅니다

그리곤 공중을 한 바퀴 돌아 근처 냇가에

다시 내려앉습니다


어느새 모녀는 다리 아래를 지나 작은 점으로 멀어집니다


빗줄기가 우산 아래로 정강이를 감아옵니다

신발도 물기에 젖어 축축함을 더해갑니다

마침 지은 지 얼마 안 된 공중 화장실이 눈에 들어옵니다

새하얀 타일 벽에 온풍기와 손건조 송풍기까지 설치되어 있습니다

따뜻한 곳에 들어오니 좀처럼 나가고싶지 않습니다


두꺼운 출입문 유리에는 빗방울들이

빼곡하게 달라붙어 있

지나는 바람은 엄청난 소리를 변주해 냅니다


핸드폰을 꺼내 유리창 밖의 풍경을 찍어봅니다


하늘엔 회먹색의 구름이

출렁이는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지나갑니다

작은 화장실은 울림통처럼 거센 바람소리를 증폭시킵니다

마치 폭풍우가 몰아쳐 삼키려 드는 것만 같습니다


삼십 분이 넘도록 화장실 근처에는 인기척이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웃음소리가 다가옵니다

밖을 내다보니 각가지 색의 우산을 쓴

초등학교 학생들이 궂은 날씨를 아랑곳 않고

큰 소리로 이야기하며 지나갑니다


겨울의 전령사 북방의 바람도

아이들 앞에서는 그 위력이 무색해집니다


당장은 하늘빛이 바뀔 기미가 없으니

이제 핸드폰을 접고 나가봐야겠습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

비바람이 날카로운 포효를 이어갑니다


돌아오는 길

작은 보 위로 흘러내리는 개천의 물소리가

오랫만에 제법 제 목소리를 냅니다




* 글을 올리려다 보니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군요.

바쁘게 일을 마감하는데 진동이라는 울림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글의 온기라는 것이 있어서

내일이면 날씨가 바뀔 테고

그러면 글의 색이 민망해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 괴로운 분은 알아서 피해 가시겠지요?^^


무사 귀가하시고 평안한 저녁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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