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단의 키 작은 꽃이라도
피어나면
제 할 일 다 했다고 여겼다
현관에서 몇 계단 내려가도
따뜻한 방 한 칸이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늘이 쉼 없이 무너지던 날
강가 미루나무들은 한결같이
하류를 향해 누웠고
거센 흙탕물은 골목까지 흘러들었다
시련도 높낮이를 가늠하는가
빛없는 지하에 산다는 것은
애초에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는 일인 듯
그 누구는 고된 여름의 끝을 견뎌내지 못했다
오그라든 가슴뼈 아래
습한 어둠을 품고 사는 사람들
그들이 다가와도
칼날 같은 두려움과 공포에
빈 위로조차 건넬 수 없던 계절이 지나간다
* 이 여름은 몇 날씩 광포한 얼굴을 내밀었다.
재난대비란 낱말의 테두리 밖에서 서성이다 잠든 사람들.
이 재난의 정도는 모든 이들의 안락한 삶에서 비롯되었다니 그 누구도 일말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멀리서 위로와 평안을 비는 마음이지만 이것도 혹시 나를 위한 것은 아닐런지...
내 마음의 아랫방도 때론 위태로우니
오늘도 시란 가장 낮은 곳의 노래임을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