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를 듣다 보니 처가 식구들은 삶의 가치관이 사뭇 다른 것 같아. 그간은 도움을 받는 입장이었기에 현실적으로 크게 부딪힐 일을 만들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이제는 경제공동체적인 틀을 벗어나 여유롭게 살고 있으니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지내면서 반응하는 걸 거야.
그러니까 문제가 되었던 농원의 잔디 깎는 요청건을 두고,
- 아니, 그간 도움 준 것이 얼만데 이렇게 무성의할 수가 있지?
- 그런 사소한 일은 얼마든지 사람 사서 간단히 처리하면 되는데 꼭 우리에게 시키는 건 뭐지?
라고 서로의 견해가 달라진 것일 수 있어.
그렇게 서운함과 오해가 관계를 경색시켰고.
마침내는 있지도 않은 일까지 지어내서 상대방을 격동시키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겠지.
(사실 친구에게는 처남들에게 요청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사실 내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네 처가 식구들이 아닌 자네야. 그러므로 처가 식구들을 속단하는 것은 실례일 뿐이니 친구에게만 고언을 하겠네.
평소에 가족 간에, 친구 간에 사소한 분쟁을 겪고 사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처가에서 일방적인 상담치료와 약물 치료를 강권했다고 들었을 때는 다소 쇼킹하고 어이가 없었지.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럴만한 빌미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굳이 짚어보자면, 지나간 일을 끄집어내어 집요하게 시비를 가려보려는 모습이나 상대방의 무심한 행태에 깊이 분노하는 모습 말이지.
처가 식구들에겐 이미 지난 일들의 실상보다는 분개하는 친구의 현재 모습만 눈에 들어왔을 거야.
지난번 대화 중에는 갑자기 한 야당 정치인의 피습 후 헬리콥터 이송건을 꺼냈지. 그리곤 매우 정당하지 못하다고 자네가 분개했었지. 그 바람에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네.
나이 들수록 가치관이 고착되기 쉬운데 독서는 그 정신적인 경화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
특히 고전 읽기의 장점은 양 극단이 아닌 중용의 힘을 기르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꾸준히 독서를 이어가는 자네가 획득했을 그 무언가를 놓친 것 같아 좀 아쉬웠지.
직접적인 본인의 개인사가 아님에도 진심으로 흥분하는 목소리에 난 달리 할 말이 없었네.
미루어 짐작컨대 사안의 시비를 떠나서 표출하는 감정의 골을 아내가 견뎌내기 힘들었을 듯도 하고...
이제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관조와 중용의 힘으로 상황에 대처해 가야 하지 않을까?
비록 당사자는 어렵겠지만 곁으로부터는 격려와 조언을 얻는다면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 거야.
오선위기.
바둑을 두는 두 신선과 각기 훈수 두는 두 신선, 그리고 바둑판의 주인인 한 신선.
때에 따라 역할이 바뀌는 인생살이와 같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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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매도 잘하면 술이 석 잔이요, 못하면 뺨이 석 대라 하니 글을 맺으면서도 사뭇 걱정이 든다.
금강경을 읽다 보니 친구 얼굴이 떠오른다.
수보리가 묻기를
-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보살은 복덕을 누리지 않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시길
- 보살은 지은 복덕에 탐욕을 내거나 집착하지 않아야 하므로 복덕을 누리지 않는다고 설한 것이다.
창밖으로 내리던 부슬비가 눈발로 변했다.
지면에 닿자마자 녹는다.
영점의 하늘이 내려앉고
그 가운데로 사람들이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