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나 크리스마스 시즌, 신정 연휴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영화를 몰아보기 좋은 시간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나에겐 이 기간들은 대부분 별다른 계획 없이 주어지는 자유방임 시간이다. 이때는 대개 막연히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다 보니 무심코 tv를 시청하며 연휴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올해는 특히나 신종 covid19의 확산으로 축제와 명절에도 불구하고 외출과 만남이 제한되었다.
나 또한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tv 시청 횟수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교양 프로그램에서 막장 드라마까지, 심지어 온갖 홈쇼핑까지 의도치않게 섭렵하게 되었다.
거실에서 tv 리모컨으로 선택할 수 있는 채널 숫자의 최대치는 999이다. 실제로 차례차례 올라가며 검색해본 채널은 대략 70까지이다. 그 정도까지 채널을 올리다 보면 급피곤함이 몰려온다. 그러면 999번 채널의 존재는 어떻게 아냐고? 그건 거꾸로 채널을 내리다가 1번 아래까지 검색해본 결과이다. 1번 바로 아래 몇 개의 채널은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방송이다. 마치 수면 아래의 빙산처럼 현실적 이슈들을 다루는 채널들 아래 이 판타지 채널들이 숨어있다. 가려져있는 무의식의 세계처럼.
그저께는 25일 즉 크리스마스였다. 언제나 흥분과 기대가 고조되는 축제 전날과는 대조적으로 축제 다음 날에는 마치 바람 빠진 풍선 같은 기분이 든다. 어제가 바로 그런 날이었다. 감정적으로 처져버린 느낌을 받으며 소파에 앉아 리모콘 단추를 누르다 보니 영화 채널에 도달했다. 화면에서는 next~ <완벽한 타인>을 자막으로 예고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
2018년에 개봉한 영화 <완벽한 타인>은 이재규 감독이 매거폰을 잡고 유해진, 염정아 등 7인의 유명 배우가 출연했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 영화 <Perfect Stranger>를 리메이크했다. 통속적인 소재를 다루고 흥행성이 높아서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리메이크 작품을 제작했다.
<완벽한 타인> 원작 영화 홍보 포스터이야기는 성형외과 의사인 석호네 집들이 장면에서 시작된다. 집들이엔 석호의 고등학교 절친 3 커플이 초대받아 등장한다. 그중 한 친구는 이혼했기에 테이블에는 총 7명이 둘러앉는다. 음식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누군가가 잠시 동안 핸드폰의 통화와 메시지와 이메일을 모두 공유하자고 제안한다. 서로 오랫동안 교류하며 스스럼없이 지내왔고 현재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으니 별 문제없는 것 아니냐는 제안이었다. 대부분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지만 대놓고 반대하다가는 큰 비밀을 감춘 사람으로 의심받을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 이렇게 마지못해 각자는 개인 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마침내는 걸려오는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받기에 이른다.
영화는 하룻저녁 두세 시간의 설정 속에 부부와 가족이라는 관계 뒤에 숨겨진 갖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핸드폰을 통해 울리는 목소리와 전송되는 메시지와 사진은 각자의 사생활을 수면 위로 밀어 올린다. 일상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사건들 - 부하 직원과의 불륜과 임신, 친구 아내와의 적절치 못한 관계, 거액의 담보 대출 투자로 인한 파산 위기, 성적 취향의 뒤늦은 깨달음으로 인한 이혼과 동성 파트너와의 교제, 건조한 부부관계의 대안인 온라인상의 교류, 결혼 전 애인과의 잦은 연락, 대학생 딸의 섹스 결정권에 대한 관여, 이모와 같은 연상녀에게 끌림 - 이 한 무대 위에서 비빔밥처럼 뒤섞인다.
한 사람이 지닌 비밀로 인해 나머지 멤버들이 충격과 어이없음을 선사받지만 폰이 울릴 때마다 혼란을 제공하는 주인공이 차례로 바뀐다. 또한 사건의 관계 인물이 밖에만 있진 않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지인과도 비밀스러운 관계는 얽혀 있다.
폐쇄된 듯한 공간 속에서 하나하나 사연이 드러나고 긴장이 고조되는 분위기는 애거시 크리스티의 추리물과 닮았다. 이 영화에서는 특정 범인은 없으나 각자가 모두 혐의가 짙은 용의자 배역을 맡았다. 사실 이 영화의 성공 비결은 연기자들이 지닌 비밀, 일종의 죄악이나 터부가 바로 관객들의 것과 일치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포스터애거시 크리스티는 작품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외딴섬으로 10명의 인물들을 불러 모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핸드폰이라는 더 지독한 갈고리를 매개체로 모든 등장인물을 옭아맨다. 숨겨왔던 각자의 사생활이 하나씩 폭로되자 갈등은 극에 달하고 모두는 배신과 죄책감 사이에서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급기야 그들은 와인잔을 깨뜨려 피를 보고 이혼을 거론하며 약혼반지를 던져버리고 가슴에 성적 편견의 비수를 꽂는다.
이 영화가 크리스티의 작품과 다른 점은 등장인물 중에 주도적으로 복수를 계획하거나 심판하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그 역할을 등장인물 각자가 맡고 있으며 광의적으로 보면 관객들이 심판자의 지위를 부여받은 것이다. 그러나 감독의 진정한 의도는 등장인물들을 관객들에게 투사하는 것에 있 다. 극장안 사람들에게 심판과 동시에 자신을 돌아보라는 명령어가 부여된 셈이다. 이 종합 선물세트 같은 부조리한 상황에서 온전히 벗어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거시 크리스티영화 후반부에 석호는 아내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 그래서 사람들은 상처 받기 쉽지.
이는 우리 모두의 정체성에 관한 발언이며 상처 받고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고백이다.
또 하나, 그럴듯한 대사가 있다.
- 인생에서 빛나는 순간이 있어. 나중에 돌이켜 봤을 때 그것이 오늘이라고 생각된다면 그냥 가.
동침을 원하는 오빠를 따라 여행 가고픈 딸이 엄마 몰래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인 석호는 딸에게 조용히 콘돔을 챙겨주었었다. 갈등 끝에 석호는 이 말을 딸에게 전하지만 딸은 결국 밤늦게 귀가한다. 반쯤 열린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그래서 이 대사는 그 의미의 무게를 상실한 채 그럴듯함으로만 남았다.
스크린에는 마지막 엔딩 자막 하나가 올라간다.
사람은 누구나 세 개의 삶을 산다.
공적인 삶, 개인의 삶 그리고 비밀의 삶.
주제 전달의 의미는 있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 요약해서 자막 처리를 했어야 했을까? 다큐라면 모를까.
사실 이것은 이재규 감독 탓은 아닐 것이다. 원작을 감상한 이들이 이 영화는 의미 있는 리메이크 작품이 아니라 복붙에 불과하다고까지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인물의 대사, 직업 설정까지도 같다고 하니까.
원작과 비교해보진 않았으나 이 영화의 마지막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커플끼리 다정하게 귀가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은밀한 관계의 메시지는 배우자 몰래 계속된다. 이에 관객 중 일부는 허탈감에 헐~소리를 내뱉는다. 커플 간의 파국을 예상했던 기대가 깨진 탓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코미디 계열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
알고보면 관객을 긴장시켰던 극 중 장면들은 사실이 아닌 등장인물들의 비밀스러운 삶을 바탕으로 한 가공의 순간들이었던 것이다. 즉 영화라는 가상 속에서 다시 한번 가상의 세계가 펼쳐졌던 것이다. 그런데 그 가상의 시작과 끝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기에 관객은 혼란스럽다. 더구나 누구의 상상인지도 알 수 없다. 이런 표현법은 감독의 신공이라고 해야할듯 싶다.
마지막 장면은 불안하게 봉합된 현실로 배우들을 다시 데려온다. 이는 우리가 유지하는 현실이란 드러나지 않은 이중, 삼중적인 세계이며 생각처럼 쉽게 깨뜨리기도 어렵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감독은 현실의 이중성과 비밀스러운 인간관계에 조명을 집중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그 도구로 쓰인 핸드폰이라는 작은 정보 기기가 가진 효율성과 파괴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점점 더 전자 기기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어느새 인간과 인간 사이에 기계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 기계에 의하여 사람의 관계와 가치가 결정되기 시작했음을 알려준다. 이미 주변에서 이와 유사한 일들이 벌어진 지 오래되었다.
12월 말 현재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의 세계적 전파로 각국의 국경이 재봉쇄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안전을 위하여 가족 중심의 생활 반경 안으로 동선을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서로 간의 밝히고 싶지 않은 면들을 알게 되는 순간들이 평소보다 많아질 수 있다. 그 순간들의 기폭제는 사생활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컴퓨터와 핸드폰이라는 기계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우리는 파트너를 신경 쓰는 것보다 어쩌면 이 개인 기기들의 보안에 더 신경을 집중해야 할지도 모른다.
가려져있는 무의식의 세계처럼 모든 존재는 자기만의 세계를 여럿 소유하고 있을 수 있다.
일정한 관계로 맺어진 파트너의 숨겨진 세계를 우연히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미행, 심판, 결별, 침묵, 이해, 용인, 무관심, 냉담...
선택지는 많으나 알맞은 해법을 골라내기는 정말 어려운 문제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나 자신을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러니 나 아닌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항상 옳은 것도 아닌 매우 난감한 일이다.
영화의 제목도 꽤 도발적이다. 완벽한 타인이라니.
이미 극중 배우가 완벽함은 없다고 했지 않은가?
그러고보면 우리 대부분은 파트너와 타인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것만 같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이 균형잡기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익숙해질까?
그 가능성이 적더라도 그러하기를 바라는 12월 어느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