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고민 끝에 팀장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팀장은 사무실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퇴사 소식을 전달했다. 사람들이 컴퓨터에서 눈을 떼고 A를 쳐다봤다.
[일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는데. 정말 그만둘 거야?]
[너 정말 그만두는 거니.]
A를 면박 주던 B와 A를 응원하던 D에게 차례대로 문자가 왔다.
[네, 죄송해요.]
그 팀에서 나쁜 사람은 없었다. 그들이 지독한 소시오패스나 나르시시스트는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행동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인간은 누구나 분노, 멸시, 짜증, 무시, 오만, 증오 등을 가지고 태어난다. 적합한 상황이 주어지자 봉인했던 자아를 드러냈을 뿐이었다.
어떤 책에서 이런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인간은 물에 젖은 행주라는 거다. 행주를 꽉 짜면 물기가 나오듯이 사람은 어떤 상황만 주어지면 잠재돼 있던 못된 자아가 드러낸다는 내용이었다.
B는 A 앞에서 마음껏 턱을 치켜들고, 인생을 통달했다는 듯이 행동했다. 하지만 여전히 혈기 어린 젊은이였다. 먼저 입사해서 회사에 잘 적응했고, 나이가 다섯 살 더 많다는 이유로 그는 대단한 권한을 가진 사람처럼 굴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언어 선택, 감정적 분풀이,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걸 입증하는 거들먹거림 등 치기 어린 모습이 별로였다.
그는 A의 말과 행동을 저울대에 올려놓고 수시로 부정적인 평가를 일삼았다. 큰 소리로 충고하는 사람들을 겉으로만 보면 뭘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그다지 강한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표면적인 모습만 보고 그들을 과대평가할 수 있다.
A를 구박하는 그들도 누군가에게 구박받는 입장이었다. 먹이사슬의 딜레마라고 할까.
처음에 영상 편집자 C는 일부 사람들이 A를 하대해도 유일하게 A 편을 들었다. 그러던 그도 점차 싸늘한 태도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A의 언행 중에 마음에 걸리는 면이 있는 듯했다. A도 난처했지만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한번 틀어진 마음을 돌이키기란 영 쉽지 않다. 아무리 잘 대해줘도 친절하게 성의껏 대우해도 나빠진 사이가 좋아지기란 기적에 가깝다.
파견 계약직이었던 그는 계약 기간이 만료되자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이직한 곳에서 C도 A처럼 다시 신입사원이 됐다. 그는 정부기관이나 단체장들의 얼굴과 이름을 몰라서 뉴스에 할당된 그래픽을 만들 때 헤매기를 반복했다. 더불어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게 됐다. C가 선배들에게 수시로 구박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C가 잘 모른다는 점을 콕 꼬집어 무안을 줬다. '왜 너는 그런 것도 몰라?'라고 말하면서.
"사람을 아껴야지, 나한테 왜 그래. 나 완전 거기에서 구박덩이야."
오랜만에 팀 사무실에 놀러 온 C는 창가에 걸터앉아 서러움을 토로했다. 멸시와 무시의 콜라보로 얻어맞자 그는 시무룩해졌다. 이제 A의 처지와 같아졌으니 A를 이해할 수 있으려나.
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C는 친절하고 다정한 동료인 B와 잡담을 나누다가 갑자기 A에게 화살을 돌렸다.
"A가 좀 살찐 것 같다. 아, 미안.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 말 들으니까 기분 나쁘겠다."
갑자기 핸들을 확 꺾어 수동공격을 한 것이다. A는 말없이 일하는 중이었다. 대화에 끼지 않았다. 다짜고짜 발을 걸다니.
그런데 그 말이 A는 기분 나쁘지 않았다. A는 체질적으로 살이 잘 찌지 않는다. 살이 찌는가 안 찌는가는 고민거리가 아니다. 사실 C가 A를 '살'이라는 단어로 평가한 진짜 이유는 본인의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C의 말로는 예전에 몸집이 좀 큰 편이었다고 한다. 그는 현실과 상관없이 자신의 모습을 혐오했고, 굳은 결심으로 무조건 탄수화물을 안 먹고 버티는 극단의 다이어트를 반복했다.
일을 하려면 체력이 필요하고, 먹지 못하면 체력이 떨어진다. 뇌에 영양이 공급되지 않아 집중력도 흐트러진다. 굶을수록 기초대사량이 낮아져 나중에는 조금만 먹어도 살찌는 체질로 바뀐다.
A가 C의 친구라면 굶어서 빼는 다이어트를 하지 말고, 차라리 운동을 병행하며 천천히 빼라고 조언했을 것이다. 몇 년간 그는 위험한 다이어트를 지속했다.
그래서 C는 이십 대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무릎 관절이 아팠다. 영양이 결핍되어 뼈가 약해졌던 것이다. 다이어트 부작용을 겪는데도 그는 아침, 점심, 저녁을 전혀 먹지 않았다.
C는 살이 쪄서 예전의 몸으로 돌아가는 걸 무척 두려워했다. 그런데 또 매일 과자는 먹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C의 건강상태가 걱정될 정도였다.
C가 쉽게 타격받는 지점이 '살'이었다. 그래서 A에게도 고의적으로 '살'이야기를 꺼낸 거였다.
누군가가 앞뒤 맥락 없이 날 비난할 때 그를 유심히 관찰하자. 비난의 내용이 비난하는 사람의 약점에서 기인한 경우가 많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단순하다. '내가 비난하면 상대가 위축될걸?'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의 이면을 바라보는 힘을 갖고 있다. 누군가는 비난의 테두리 바깥에서 비난하는 사람을 관망한다. 비난 속에서 비난자의 상처를 찾아낸다. 그래서 그 비난을 품지 않고, 비난자에게 되돌려준다. 지금처럼.
그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내비쳐도 손해보지 않았다. A는 인사권자도 아니고, 상사도 아니었다. 말단 막내일 뿐이었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그게 다였다. 그래서 고압적인 태도를 취했다. 사회생활에서 권력자에게 눌린 스트레스를 분출하기도 했다. 손해보지 않으니까 말이다.
당연히 C가 아무에게나 쏘아붙이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신을 똑바로 차려서 사람을 가렸다. 다 같이 회식으로 노래방을 간 적이 있다. 차장이 당시 엄청 뜬 걸그룹의 히트곡인 마돈나를 불러달라고 했다. 그런데 C의 표정은 누가 봐도 부르기 싫은 표정이었다. 그가 춤도 춰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대충 부르고 끝내려고 했지만 차장은 노래를 재차 틀면서 C를 재촉했다. 결국 그는 마구 춤을 췄다. 노래도 불렀다. 부르기 싫은 건 개인의 기호다. 하지만 그는 정당한 감정 표현조차 하지 못했다. 영상 편집자인 E가 신경질을 내자 표정을 굳힌 채 말 한마디 못한 B처럼 말이다.
똑같이 기분이 나빠도 그들은 대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나 직급자한테는 힘을 쓰지 못했다. 그리고 어머, 선배, 감사합니다, 호호호 하다가도 뒤에서 안면을 바꾸고 줄기차게 험담을 해서 기분을 풀었다.
그래, 인간이니까 그럴 수 있다. 어떻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며 살겠는가. 그것도 직장에서.
억울하고 황당한 일이 넘쳐난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얘기해서 공감과 위로를 얻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다만 그렇게 할 거라면, A 앞에서도 절제를 했어야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언젠가 야근하는 A에게 행정팀 차장 H가 다가왔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차근차근하게 말했다. "쟤네도 처음 입사했을 때 너처럼 그랬어."
힘껏 몸집을 부풀려 이래라저래라 하던 자칭 선배들을 가리킨 말이었다. H는 연배가 꽤 있었다. 그는 B, C의 입사 시절부터 성장과정을 지켜봤다.
H는 그들의 흑역사를 생생하게 지켜봤다. 그래서 그의 관점에서는 A를 구박하는 게 웃겨 보였던 것이다. 처음에 자기들도 헤맸으면서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여겼던 거다. H는 '쟤네'라는 한 마디로 그들에 대한 평가를 함축했다.
어떤 남자 AD는 A가 뭘 물어보면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짓곤 했다. 물론 매번 그러지는 않았다. 격려도 있었고, 응원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인내하지 않고, 속마음을 드러내기로 결정한 듯했다. 그는 왔다갔다거렸다.
이럴 때 굳이 그 사람의 친절한 면을 부각해서 바라볼 필요가 없다. 저 사람은 좋은 말도 하니까 아군일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일 수 있다.
상대를 진짜 존중하는 사람은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하는 태도로 나오지 않는다. 태도의 높낮이가 크지 않다. 쓸데없이 사람을 헷갈리게 하지 않는다. 그 AD는 사회생활 차원에서 가면을 썼다 벗었다 할 뿐이었다.
그들이 A가 웃기를 바랐다면 비현실적인 기대였다. A랑 밥도 같이 안 먹고, 대화도 안 하고, 냉소적으로 배척했다. 그러면서도 A가 사근거리는 태도를 보이길 원했다.
B는 A가 본인을 선배 취급 안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더 고압적인 자세로 자신을 부풀렸다.
"너는 왜 말할 때 아무런 반응이 없어?" "우리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아."
B는 약이 올랐는지 나중에 빈정거렸다. "너는 한 가지만 알고 두 가지만 모르는구나."
말속에 담긴 뜻은 이런 거다.
- 너는 나를 선배라고 인정하지 않는 거니?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 주제에 왜 나한테 화를 내? 내가 너보다 나이도 많고, 이 회사에 다닌 지도 더 오래됐어.
- 나도 선배들한테 엄청 혼나면서 일을 배웠거든? 나 정도면 유한 거라고. 내가 신경질 내는 것도 못 참니? 왜 정색해? 이 일에 대해 너는 나보다 모르잖아. 모르는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정색을 해?
- 나도 인정받고 싶어. 나도 차장한테 얼마나 구박받았는데. 제대로 일을 못하면 사람 취급도 못 받았어. 너도 비슷한 과정을 밟아야지. 내가 너를 구박하는 건 당연한 거야. 그나마 내가 좋은 사람일걸?
A가 B의 배타적이고 고압적인 태도 때문에 그를 멀리 했다. B는 자신이 행동이 A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한 가지만 알고 두 가지를 모르는 사람은 B였다.
A가 상대와 친해지는 방식도 그들의 기대와 달랐다. 그는 서열로 직조된 사이에서 불합리한 일이 벌어지는 게 별로였다. 수직적인 문화와 잘 맞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남에게 모욕을 주고, 그것조차도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게 살짝 이상해 보였다.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짜증을 내고, 배척하고 또 배척하면서 상대는 그러지 않길 바라는 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A는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눈치를 보지 않고 해맑게 다가갔다. 상대의 입장에서는 낮은 서열이면서 자유롭게 행동하려는 게 가짢아 보였을 수도 있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보상심리가 작동해서 A의 다가감은 일종의 서열 무너뜨리기라고 해석했을지 모른다. 본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그들은 웃는 A를 보면서 '내가 쉬워 보여?'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네가 못하니까 내가 그러는 거야.' 그들은 이 한마디로 못된 행동을 합리화했다.
하지만 그들이 일을 헤맸을 때 내가 화를 낸다면? 두고두고 그들은 내 말을 곱씹을 것이다. 나를 싫어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 그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물론 나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아나운서 D였다. 하지만 그는 나를 기만했다. 그는 이단에 귀의했으면서 같은 종교라고 뻥을 쳤다. 그리고 끝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이후 D와 함께 밥을 먹었다. 그리고 그는 다음에 밥을 한 번 더 먹자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다. 이게 나중에 도화선이 돼서 관계가 틀어졌다.
드디어 나의 후임자가 왔다. 나와 동갑내기인 잡지사 기자였다. 이 짧은 인수인계 시간에도 나는 오해를 받았다.
우리 팀은 스튜디오 녹화 때 인터뷰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줬다. 포장지로 펜을 직접 포장하는 업무도 AD의 몫이었다.
후임자에게 펜을 포장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직접 포장을 해보라고 물건과 포장지를 줬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굳었다. 내가 일을 '시킨다'라고 인지했던 것이다.
'선물 포장하는 것도 업무라서, 혹시 기분 나쁘지 않다면 직접 해볼래요?'라고 말할 걸 그랬나. 아니다. 기분 나쁘지 않다면이라는 전제를 달면 기분이 더 나쁘려나. 그럼 그건 내버려 둘 걸 그랬나. 포장이야 알아서 하겠지 하면서. A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같았다.
후임자는 마음을 닫아버렸다. 어차피 상대를 떠날 사람이니까 성의 있게 대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안 볼 사이일 텐데 불쾌함을 드러내도 피해받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가위를 책상 서랍에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나한테 일을 시켰으니까, 나도 널 흉내 낼 거라는 보복성 멘트였다.
점심시간이었다. A는 D가 밥 먹자고 한 게 기억났다. 약속된 거니까 D에게 밥을 먹으러 나가자고 말했다.
A의 말을 들은 D가 당황했다. 지난번에 이미 밥을 같이 먹었다. 밥 먹자는 말이 공수표였던 것이다. 얼마 전에 밥을 같이 먹었으니 또 먹는다는 게 이상하긴 했다. 호의라고 생각해서 기억해 뒀다가 한 말이었다. 하지만 D는 A가 자신을 이용한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밥 한 번 더 먹자고 한 것으로 말이다.
옆에서 B가 A에게 핀잔을 줬다. D가 밥값을 지불하는 건데 선배 돈이 떨어지겠다며 타박을 했던 것이다. A가 눈치 없이 밥을 또 얻어먹으려고 한다는 식이었다. 아니, 다음에 밥 먹자고 해서 그런 건데 막상 밥을 먹자고 하니 그건 또 별로라고? A는 겉치레 인사말을 듣고, 진짜 약속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밥을 같이 먹자고 제안한 사람은 D였다. A가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D의 손을 반갑게 잡자, D는 내 손을 탁 놓아버렸다.
D는 후임자도 함께하자고 말했다. A는 떨떠름하지만 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하자는 것도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마음이 무거웠지만 일단 밖으로 나갔다.
식당에 도착했다. A와 후임자는 D와 마주 보고 앉았다. D는 A 앞이 아닌 후임자 앞에 앉았다. 그는 A를 쳐다보지도 않고, 후임자에게만 시선을 고정한 채 대화하기 시작했다.
A를 보지 않는 이유는 A를 많이 의식하기 때문이었다. D는 후임자와 얘기하는 척하면서 A를 겨냥해 화살을 쏘았다.
"어떤 사람 I가 J회사를 떠날 때 마무리를 잘 못했대. 그 뒤에 I가 K회사에 지원한 거야. K회사 임원이 J회사 사람한테 메신저로 I의 평판을 물어봤대. 그런데 그 임원이 별로라고 했대. 그래서 K회사에서 I를 특채에서 떨어뜨렸대."
누가 들어도A를 겨냥한 말이었다. D는 감정을 드러내면 나에게 공격당할까 봐 후임자에게 조언하는 척하며 자신을 포장했다. 정말 그는 A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을까. 이렇게 태도를 바꾸다니.
그는 A의 눈에서 나오는 레이저를 의식한 건지 고개를 움직이지 않은 채 눈동자를 굴려 A의 낯빛을 살폈다. 그는 여우처럼 구는 게 익숙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회사에서 입사 지원자의 평판을 '메신저'로 물어보는 게 상식적인 건가. 뭐, 버디버디 같은 걸로 소통한 건가. 소꿉놀이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한 명의 입에서 나오는 평가로 면접의 당락을 가르다니. 과연 공평한 심사인가. 분별력 있는 판단인가, 그게. 어쩌면 그 말 자체를 지어냈을 가능성도 있다. 아니면 과장했거나. 정말 그게 사실이라면 그 면접관의 판단력이 이상한 것이다.
같은 종교라고 거짓말하는 것처럼 설마 거짓말하는 건가. 사실 여부는 불투명했다. 참한 인상의 아나운서는 후임자를 이용해 A를 귀엽게 협박하고 있었다. 마치 돈가스 칼로 사람을 죽일 거라고 위협하는 것과 같았다. 그가 으름장을 놓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고 기묘했다.
D는 사무실로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커피 나눠줄까?"
A는 거절했다. 오해를 받고, 공격당한 게 마음에 걸려서 그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태도를 단번에 바꾼 그에게 정이 떨어져 버렸다. 아닌 척하면서 시치미를 뚝 떼고 선심 쓰는 척하는 게 가증스러웠을 것이다. 그나마 좋은 이미지였던 D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빠 보였다.
생각해 보면 D도 마냥 좋은 모습만 보인 건 아니었다.
송출 담당자 L은 대학교를 막 졸업하고 방송국에 처음 입사했다. 아직 학생 티를 못 벗어난 그는 활달했다. 사람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스타일이었다.
점심시간에 송출하면 식당에서 밥을 먹지 못한다. 같은 시간대에 두 명이 송출을 담당한다. 그래서 한 명은 지하식당에 내려가 밥을 포장해 온다. 식당이 많아서 음식은 고를 수 있었다.
그날은 A가 지하식당에 내려갔다. 그런데 L은 아직 뭘 먹을지 못 골랐다며 지하식당에 내려가서 전화를 해달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본인이 A에게 전화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손수 전화를 해달라니. 그것도 메뉴를 못 골랐다는 이유로. 황당한 제안을 거절하자 그는 삐져버렸다. L은 살짝 철이 없었지만 사회에 때 타지 않아 순수한 면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D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L를 비난했다. 물론 당사자는 없었다.
"(L은) 도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야?"
가정교육? A는 깜짝 놀라서 곱게 화장한 D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는 우아하게 물갈퀴로 호수 위를 유영하듯이 L의 부모님을 모욕했다.
무슨 상황이었는지 모르지만 가정교육을 운운할 정도로 L이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말에 거침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가 질 나쁜 말을 하는 건 아니었는데.
정확한 시간에 화면을 넘겨야 하는 송출을 맡으면 아침에 절대 늦으면 안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L이 지각을 했고, 다른 사람이 빈자리를 메우려고 송출실에 부리나케 올라갔다. 그 일로 팀장은 사무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치며 L를 혼냈다.
하지만 가정교육을 운운한 시점은 L이 지각하기 전이다. 그리고 한 번 지각했다고 그 정도의 얘기를 듣지는 않을 것이다.
D는 타인을 막무가내로 무시하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착한 미소를 띠면서 살짝 물러나 욕할 뿐이었다.
그는 딱 한번 A를 오해했고, 그 오해를 물고 늘어졌다.
A 눈에는 D가 아수라백작이었을 것이다. 그가 협박이랍시고 특채에 떨어진 사람을 질질 끌고 오는 태도는 정말 질이 나빴다.
D는 A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A의 의도를 함부로 예측했다. 어쩌면 인간 자체에 대한 신뢰가 원래 없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선한 인상을 내세워 다가온다면 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와 갈등을 겪으면 실체를 알게 된다. 갑작스러운 썰물에 밑바닥이 드러나는 갯벌처럼 말이다.
유난히 도덕적인 모습을 유지하려는 사람일수록 남에게도 높은 잣대를 들이댄다. 그런데 높은 잣대를 통과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 잣대를 만들어 낸 사람은 과연 그 잣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인가.
오히려 그런 사람이야말로 높은 잣대 때문에 사람을 혐오하게 된다. 결국 끈적거리는 혐오의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한 채 도덕을 외치는 본인이 도덕성에서 멀어져 버린다.
D는 빈틈없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외면과 좀 달랐다. 호의적인 미소가 쩍 갈라져 그 틈 사이로 어두운 그림자가 스멀스멀 올라올 때가 있었다.
평소에도 D는 조언자의 역할을 자처했다. 처음 본 후임자에게도 다짜고짜 조언을 했다. 사회생활 스킬 뭐 이런 비슷한 종류의 이야기였다. 후임자는 정말 소름이 끼친다면서 좋아했다. D의 표정은 따스했다. A가 입사한 날 봤던 바로 그 미소였다. 아무래도 후임자는 D와 베스트 프렌드가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