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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참한 인상의 아나운서는 나를 귀엽게 협박했다

그 사람의 실체를 알려면, 그와 갈등을 겪어보라

오래전에 A는 모 방송국에서 조연출(AD)로 일한 적이 있다. 직함만 AD이지 기사를 쓰는 직무였다. 스튜디오에서 방송 녹화하는 날이면 프롬프터를 만지는 스탭 역할도 맡았다.


AD 몇 명, 기자인 차장과 팀장, 행정 팀장, 아나운서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출근한 첫날에 팀 사람들에게 차례대로 인사를 하고 다녔다. 새로운 사람이 오는 건 자주 있는 일인 듯했다. 그들은 따뜻하고 덤덤하게 A를 맞이했다. 다들 A보다 나이가 많았다. A는 막내였다.

그런데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르고 A는 문제가 생겼다는 걸 직감했다.  


물론 그곳 팀원들은 다 평범한 직장인이다. 특별히 모난 곳이 없었다. 까칠하지만 악질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사회생활 안에서는 선배였다. 입사한 후배에게 기대하는 태도가 있었다.


A는 사회경험이 별로 없었다. 당시 업무 역량도 부족했다. 입 바른말도 할 줄 몰랐다. 어색하면 어색한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감정이 드러났다. 자, 이 정도면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입사한 당일이었다. 이른 시간 모두 사무실에서 둥글게 자리를 잡고 티타임을 가졌다. 팀장의 주도하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오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팀장은 어떤 주제가 떠올랐는지 A에게 물었다.


"여기 입사했다고 하니까 부모님이 뭐라고 하셨어?"


그때 A는 여기저기 면접을 많이 보고 다녔다. 불합격한 곳도 있었고, 합격한 곳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합격이었다. 집에서는 평이한 반응을 보였다. A는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했다.


"딱히 별 말은 안 하셨어요."

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슨 말을 하는지 가만히 지켜보던 차장과 다른 선배들의 표정도 구겨졌다.


아무 의도 없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한 것뿐인데 반응이 왜 싸늘하지. A는 당황했지만 정확한 원인을 몰라서 수습하지를 못했다. 다만 그들이 만족스러워할 만한 대답이 아니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게 됐다.

안 좋은 신호탄이었다.

팀장과 차장은 여러 명의 면접자 중에서 A를 선택했다. 그들은 감사의 인사를 듣고 싶어 했다.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했다 혹은 부모님이 A를 합격시켜서 감사하다고 하셨다든가 이런 종류의 말을 들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A는 그런 속내를 다 파악하지 못했다. 가족의 반응을 물었던 것은 입사한 A의 마음을 떠 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그때 알았다. 본인의 마음을 투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말 안에 숨기는 화법을 구사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듣는 사람이 암호를 풀듯이 속뜻을 해독해서 적절하게 응답해 주길 기대한다는 것도 말이다. A는 변화구로 던진 질문을 직독직해했다.    


인지도가 높은 직장이었다. 하지만 A는 계약직으로 합격했다. 다니는 건 좋은데 언젠가 떠나야 할 곳이었다. 물론 좋은 직장에서 일하게 된 건 기뻤다. 소원 성취한 기분이었다. 주변 사람들도 좋아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먼저 말하지는 않았다. 안 물어봤으니까 말이다. 팀장은 부모님의 반응을 질문했을 뿐이었다. 표면적으로 볼 때 A의 마음을 궁금해한 게 아니었다.

입사 후 일주일 뒤 팀 사람들과 백숙을 먹으러 갔다. 다 같이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데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왔다. 마침 그 방송국의 뉴스였다. 팀장이 흡족해하며 기사에게 물었다.


"혹시 저희가 어디에서 온 것 같아요?"

그들은 대형 방송국의 정규직 사원들이었다. 사회적 지위는 두말할 것도 없이 인정할 만한 위치였다. 그들이 누구인지 안다면 모두 좋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감탄사 비슷한 말을 자꾸 듣고 싶어 했다.


"아, 정말요? 그 방송국 직원이에요? 지금 제가 듣는 방송 맞죠? 와, 정말 대단하세요. 방송 잘 듣고 있어요."

이런 반응 말이다.


그들이 A에게 요구하는 것도 어깨를 으쓱하게 해 줄 감탄사였다.
"이 방송국에 입사하게 돼서 너무 기뻐요. 감사합니다.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셨어요."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말을 지어내서라도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게 나쁘지 않다고 본다. 인간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어떤 관점에서는 이해할만하다.    

백숙 맛집은 산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평상에 앉아 졸졸졸 흐르는 계곡을 바라보며 푹 삶은 닭을 먹었다. 그런데 거기에서도 핀트가 살짝 어긋나는 에피소드가 발생했다.

A보다 나이가 다섯 살 많은 AD인 B, 영상 편집자 C는 일이 있어서 뒤늦게 합류했다. 그들은 A가 앉은자리를 기준으로 대각선에 앉았다.


A는 B와 C가 어색했다. 그들은 1년 전에 입사했다. 서로 친한 동기였다. 평소에도 자기들끼리 몰려다녔다. 주로 본인들만 아는 이야기를 해서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었다. 배타적이지도 않지만 친밀하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아마 A가 먼저 다가오길 바랐던 것 같다. 업무적으로 얽히면 한두 마디를 하곤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A는 왠지 모르게 거리감이 느껴져서 말을 걸기가 망설여졌다.


A가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는 걸 느꼈다.


갑자기 C는 A가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말했다.

"선배를 봐도 인사를 안 해."

아, 그런 건가. A는 당황스러우면서도 의아했다. 그들은 자리에 앉으면서 A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대신 앞에 앉은 팀장과 차장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 부산하게 자리에 앉으며 깍듯하고 친밀하게 인사했다. 어찌나 서글서글하게 잘 웃던지. 그래서 A는 나라는 존재를 인식조차 못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사실 곁눈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후배인 A가 먼저 인사하기를 바랐다. 당연히 A도 먼저 인사하고 싶었다. 그런데 단 한 번의 눈길조차 주지 않으니 그들에게 A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상황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팀장, 차장과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는데 맥을 끊고 인사를 한다는 게 눈치가 보였다.  


팀원들은 짜고 치는 것처럼 차례대로 A에게 충성도 테스트를 감행했다. 기회만 생기면 그가 막내 역할을 수행하는지 혹은 수행할 수 있는지 판가름하려고 애썼다.

그들은 A를 막내나 신입사원이라는 기호로만 판단했다. 감정을 느끼고, 가치를 판단하는 존재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대신 어떤 말을 듣든지 하염없이 웃어주고 알아서 비위도 맞춰주길 바랐다. 그리고 A는 그런 순수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물론 A도 인간적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팀장, 친근하고 따뜻한 성격을 지닌 차장, 서글서글하게 눈웃음을 짓는 B, 재밌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가는 C. 적어도 그들이 나쁜 사람들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A도 친해지고 싶었고, 나중에 친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팀원들과 함께할 때는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게 느껴졌다. 아직 그들이 구박하지도 않고, 날 선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다. 거리감을 느끼는 근원적인 이유를 딱 집어 말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그런 이유를 굳이 찾아보자면 그들에게도 탐색 기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팀에 소속된 사람으로 A가 어울리는지 관찰하는 단계이기에 딱히 다가오지는 않았다는 점을 짚어 본다. 웃으면서도 마음 한편에 날카로운 심미안을 작동시키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런 이질감을 차지하고서라도 낯선 회사생활에 적응하는 게 우선이었다. 아직 팀 내에서 자리잡지 못했기에 내 코가 석자였다. 빠른 시간 내에 적응을 완료해야 서로 편해진다. 마음이 온통 일쪽으로만 쏠려서 대인관계에 깊이 신경 쓰지 못하는 면도 있었다.  


그들이 A가 대답 자판기를 역할을 하길 바랐다. 질문을 입력하면 의도에 걸맞게 맞춤형 답변이 나오는 걸 원했다. 콜센터 직원처럼 감정노동을 하길 원했다. 어떤 상황이든지 친절이 입력된 로봇처럼 상냥하게 응답하고, 잘 웃기를 바랐다.

그런데 팀원들 중에 그나마 딱 두 명만 깔끔한 태도를 보였다. 한 명은 팀장이었다. 온화한 성품을 지닌 그는 꽤 평판이 좋았다. 대상이 누구든지 함부로 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눈에 보였다. 다른 한 명은 바로 아나운서 D였다. 그는 A와 같은 종교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친근하게 다가왔다.

D도 기사를 썼다. 그리고 초행길을 걷는 A에게 기사 쓰는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그나마 팀 내에서 유일하게 A를 진심으로 대하는 것 같았다. A도 고마워하는 듯했다.


B는 A의 직속 사수였다. 초반에 B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 기사 프린트물 모아둬요. 하도 E한테 추궁당해서."

기사를 다 쓴 다음에도 해당 자료를 모아 두라는 거였다.  

하지만 B는 언젠가부터 친근감 있는 태도를 완전히 거뒀다. 대신 시멘트처럼 딱딱하고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하기 시작했다.


"이거 방금 내가 이야기했을 텐데?"

"정말 느려."

그 외에도 명령조로 이런저런 업무를 지시하곤 했다.  

A는 이 직무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했다. 맞는 옷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태도도 갖추지 못했다. B는 A와 잘 지낼 이유가 없어졌던 것이다.  

A는 상대의 공격적인 언행을 웃어넘길 말랑한 사람이 되지를 못했다. 그들은 적응속도가 더딘 신입사원이 무례한 말에 정색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A는 회의시간마다 미안했다. 리포트를 제때 써내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할당량을 채워야 했다. 그들이 욕해도 할 말이 없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A도 마음먹은 대로 일이 굴러가지 않았다. 누구보다 늦게 퇴근했다. 불이 꺼진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을 때가 점점 많아졌다.

그 와중에 방송 송출까지 담당했다. 공고에 송출업무는 게재돼 있지 않았던 것 같은데. 하여튼 A는 난생처음 보는 기계를 조작해서 방송을 내보냈다.


그런데 그 일도 여의치 않았다. 원래 송출을 담당하던 직원은 따로 있었다. 그가 A에게 인수인계를 하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기계를 다루는 일은 낯설기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송출하던 도중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결국 A가 혼자 일하다가 실수한 것이었다.


이후 B는 A와 함께 송출실을 찾았다. 팀에서는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담당 직원이 아닌 B에게 다시 인수인계를 맡겼다. 송출실로 향하는 복도와 송출실 안에서 그의 표정은 내내 굳어 있었다. 능숙하게 기계를 조작하면서 신경질을 묻힌 목소리로 송출하는 방식을 설명했다. 그리고 말미에 이렇게 물었다.

"일 잘하고 싶지 않아요?"

A에게는 생경한 질문이었다.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뉘앙스는 아니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말투였다. 그는 어떤 답을 원했을까? A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처음과 180도 달라진 B가 이상한 괴물 같았다. 사람 대 사람으로 이야기한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는 감정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이란 쉽게 감춰지는 것이 아니다. 두더지가 튀어나오듯 순간순간 매몰차게 쏘아붙이는 그였다.


송출을 마친 후 A와 B는 같이 계단을 내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B가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이런 질문을 했다.

"A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야?"


B는 기독교인이었다. 회사 내 신우회에 다닐 정도로 열혈 신도였다.


그 질문 자체는 문제가 없다. 다만 말하는 타이밍이 어색했다. 방금 전까지 그는 송출실에서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차갑게 대할 거면 계속 같은 온도를 유지하는 게 낫다. 새삼스럽게 이제 와서 종교로 말을 섞으려고 하다니. A는 B의 태도가 어이없었다.

B는 대형 교회에 다녔다. 강남의 한복판에 위치한 교회는 잘 알려진 곳이었다. 그는 그 교회의 교인이라는 걸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

"우리 교회는 사람들이 많아. 조별 모임은 따로 있어. 결국 각각의 조가 작은 교회인 거야."

언젠가 그가 자부심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창밖을 보며 말했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건 좋다. 기독교인임을 드러내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평소 그의 태도가 문제였다. 계속 배척하는 태도로 나올 거라면 종교를 화두로 올리지 않는 게 적절했다. B는 마음씨 좋은 기독교인이라는 이미지를 가져가고 싶어 하면서도 A를 향한 미움을 숨기지 못했다.

B는 다른 사람들에게 거의 균일하게 살가웠다. 특히 그는 팀장과 지나치게 가깝게 지냈다. 팀장의 필름 사진을 따로 수첩에 보관해서 다녔던 것이다. 직장 상사의 독사진을 들고 다니는 게 어색해 보였다. 나중에 모종의 일로 팀장이 징계를 받아 팀을 떠나게 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큰 충격에 휩싸여 눈물까지 흘리기도 했다. 과도하게 밀착된 관계가 기이했다.


B는 동기에게는 나긋나긋한 동료이자 다른 선배에게는 순종적인 후배였다. 그런 그가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는 존재는 그 팀에 딱 한 명뿐이었다.


"사람들은 아닌 척 하지만 기독교인들을 지켜보고 있어."

비장한 표정을 지은 B가 팔짱을 낀 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A는 어쩔 수 없이 거부감을 느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종교인으로서 남의 평가를 고려해서 행동하는 건 그럴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B는 A를 적극적으로 싫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걸 서슴지 않았다. 발동이 걸린 자동차처럼 거칠 것이 없는 태도였다. 정말 B가 비기독교인이 나를 어떻게 볼지 신경 썼다면 자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다. B는 열심히 맨손으로 과자를 냠냠 먹고 있었다. 그런데 먹던 도중에 선심을 쓰듯이 웃으면서 A에게 과자를 넘겨줬다. 처음에 A는 그게 호의 섞인 행동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옆자리에 앉은 AD에게 그 과자를 권하니 이런 반응이 돌아왔다.

"난 누가 주는 찌꺼기 안 먹어."


그 AD와 B는 사이가 안 좋았다. 수면 아래 잠자는 갈등이 있었다. 그래서 그가 그 사람이 준 과자를 보고 감정이 격해져 '찌꺼기'라는 단어를 썼을 수도 있다. 하지만 A는 그 말을 듣고, '찌꺼기'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B는 실실 웃어대며 과자를 줬다. 그는 화가 나면 크게 웃는 습관이 있었다. 그럼 그렇지. 인위적인 미소를 짓는다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을 감추고 싶은 심리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악마의 미소로 본심을 위장했던 것이다.

B는 A와 밥도 같이 먹지 않았다. 점심시간만 되면 B는 아나운서인 D의 뒤를 졸졸 따라가 버렸다. A는 사무실에 혼자 남겨졌다.  


A도 참기가 힘들었나 보다. 결국 B와 둘이 있을 때 한 마디를 하고 말았다. B는 억울해했다. 본인의 위치는 선배에게 치이고, 후배에게 치인다고 서러워했다. 울 것만 같은 표정으로 하소연을 이어나갔다.


A는 당황했다. 그렇게 쉽게 상처받는 인간이면서 그동안 나한테 막 대한 거야? 어이가 없으면서도 화를 낸 게 살짝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그의 여린 실체를 보고 다시 잘 지내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후 B는 A를 더욱더 싫어하게 됐다.


A는 B에게 농담을 한 적이 있다. B가 까만 나시 위에 하얀 나시를 입고 온 적이 있었다. 그는 옷을 좋아했다. 매일 뭘 입을지 여러 차례 피팅을 해보고 신중하게 옷을 골랐다. 나름대로 패셔니스타였던 거다.


그런데 그날 A의 농담에 B의 자존심을 긁히고 말았다. 하얀 나시 사이로 검은 나시가 보인다. 그걸 보고 연상되는 게 있었다. A는 평안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흰 나시 사이로 보이는 까만 나시가) 처음에 겨드랑이 털인 줄 알았어요."

B가 돌하르방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후 B는 A를 더 싫어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툭하면 종교적 언어를 쓰면서 분위기를 환기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콕 집어서 괴롭혔다. 고의적으로 과자 줘서 쓰레기 버리게끔 유도하기. 명령조로 업무 지시하기. 짜증 내면서 핀잔 주기 등. 종교와 B의 삶과는 서로 무관해 보였다.


사랑의 교회에서 사랑을 배우지 못한 B는 우회적으로 A를 괴롭혔다. 신은 그 꼴을 두고 보지 않았다.

활개 치던 B에게 어느 날 천적이 나타났다.


바로 새로 입사한 E였다. E는 영상 편집자인 C의 후임자였다. B와 동갑인 E는 순한 눈망울의 소유자였다.


처음부터 E는 경계심이 많았다. E는 다른 방송국에서 일하다 와서 대충 이 바닥(?)이 어떤지 잘 알았다. 그래서 누구든지 자신을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름대로 배운 생존술을 바탕으로 사람들과 자꾸 기싸움을 했다.

  

특히 동갑내기 B를 향한 태도가 날카로웠다. 둘은 동갑이지만 B가 선배 격이었다. 그리고 E는 B가 쓴 기사로 영상편집을 한다. E의 입장에서 B가 편안한 존재라기보다 잠재적 경쟁자이자 물리칠 대상으로 인지했다.

편집자가 영상 제작을 하지만 인터뷰를 편집하는 것만큼은 AD가 맡았다. 그래서 그때마다 AD는 편집자의 자리를 빌려야 했다. 그런데 그는 AD가 편집하러 왔을 때 단 한 번에 자리를 비켜준 적이 없었다.


일을 하는 도중에 바로 일어나기 힘든 경우도 많을 거라고 억지로 생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의 말투나 태도가 상당히 까칠하고 냉랭했다. 너희들에게 절대 마음을 열지 않을 거라고 선전포고라도 하는 듯했다. 그리고 매번 어떻게 같은 상황이겠는가. 이건 내 자리니까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겠다는 의지 같았다. 아무 일이 없어도 말이다. 자리를 비키는 시점은 내가 정할 것이다 혹은 내 자리니까 내 허락을 제대로 받아라 같은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특히 E의 기싸움은 B와 있을 때 더 치열해졌다. 그는 현장 취재를 나갔을 때 아주 제대로 기싸움을 걸었다.


어느 날 외근을 다녀온 B가 침울한 표정을 지은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새로 온 차장에게 E의 행동을 낱낱이 일러바쳤다. 경력이 많은 차장은 어떤 상황인지 대번에 알아챘다.   

현장 취재를 나간 둘은 직접적으로 말을 주고받지 않았지만 불꽃 튀는 주도권 싸움을 했단다. 그런데 B가 E에게 많이 밀린 모양이었다.

E는 현장에서 B가 촬영에 관련된 합당한 요구를 해도 의도적으로 묵살하거나 의견을 다 반대했다. 그리고 내가 촬영을 하는 것이고, 이를 B가 보조한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마음만 먹으면 서로 존중하면서 일할 수 있다. 하지만 E는 화합과 상생을 원하지 않았다. 대신 누군가가 나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마법진을 치고 싶어 했다. 그게 이 팀에서 살아남는 최선이라고 믿었다.

A는 촬영기자였던 F가 떠올랐다. 그와 현장에 나간 적이 있다. 처음 본 사이라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는 미동도 없이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들린다는 듯이. 그만의 수동 공격이었다.


현장에서도 F는 배타적으로 나왔다. 그는 A의 의견과 반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A가 인터뷰를 하려고 어딘가로 가면 F는 반대방향으로 가자고 졸라댔다. A가 시민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으면 F는 말없이 현장을 이탈해 버렸다. A가 전화해서 어디냐고 물으면 F는 심드렁한 말투로 여기 있으니 찾아오라고 대답했다.  

A는 F를 어르고 달래며 촬영을 진행했다. 어떻게든 일정을 마쳐야 했다. 그런데도 F는 제멋대로 엇나가기 바빴다. 그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현장에 끌려와서 인터뷰하는 장면을 어쩔 수 없이 촬영했다. 문제는 그가 찍으면서도 중간중간 큰 소리로 낄낄거리며 오디오맨과 사담을 나눴다는 것이다.


A는 그의 경박한 웃음소리가 오디오에 들어갈까 봐 인터뷰 내내 신경을 썼다. F는 나이만 먹었을 뿐 어린아이였다. 엄마를 속상하게 하려고 일부러 삐뚤게 행동하는 아이 말이다.


F는 미성숙했고, 프로답지 못했다. 원인은 그의 마음가짐이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을 경쟁할 대상 혹은 기싸움을 해야 할 대상으로 인지했다. 상대 의견대로 촬영하면 휘둘리는 거라고 해석했다. 비약적인 사고회로를 돌렸던 것이다.


상대를 눌러야 한다는 긴장감 때문에 그는 실책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촬영하러 온 사람이 촬영을 안 하면 어쩌자는 건가. 그는 사적인 감정에 짓눌려 본분을 망각했다.


F의 열등감이 문제였다. 그는 자신이 취재를 보조한다고 착각했다. 촬영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방송을 하겠는가. 중요한 일을 한다는 걸 잘 모르는 듯했다. 촬영도 전문적인 일인데 말이다.


싸움에서 상대가 물러나 준다고 당신의 존재가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어리석은 F는 조악하고 저열한 방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하여튼 E의 싸움 걸기에 B는 자존심이 상하고 말았다.


B는 E에게 화면을 분할 편집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방송 녹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E는 B를 타작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일단 E는 짜증을 내면서 편집을 시작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집은 미리 말해야 한다고 매몰차게 충고했다. B는 멈칫했다. 그리고 웃으며 알았다고 화답했다.

A에게만 감정적으로 나오던 B였다. 하지만 B는 E의 노골적인 신경질에 아무 말도 못 한 채 웃을 뿐이었다. 심지어 수고한다며 알아서 김밥까지 사다 바쳤다. 하지만 E는 편집하는 내내 투덜거리며 잔소리를 했다. B는 한 마디도 못했다. 상전이 따로 없었다.

바쁘고 힘든 건 알겠다. 하지만 E는 자원봉사하러 온 게 아니다. 무료로 재능 기부하는 것도 아니다. 일한 만큼 월급을 받고 있지 않나.

상황을 따져봐도 E의 태도는 시혜적이었다. 본인의 재능을 빌려 쓰면 고개를 숙이고 고마워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까칠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E는 B가 일을 지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성적인 판단이 아닌 감성적인 판단이었다. 분할 편집이라는 구체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입장에서 일단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그래서 방어기제를 작동시켰다. 게다가 그는 이 상황을 기싸움의 연장선상이라고 인식했다.

"왜 둥글둥글하게 지내지 못하고, 튀어나온 못처럼 저러는 거야?"
B는 E가 없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면전에서는 그런 말을 안 했다. 아니, 말을 못 한 건가. 내 앞에서 가차 없던 B는 앞에서 말하지 못하고, 뒤에서 구시렁댈 뿐이었다. 화를 내는 E 앞에서는 못 그러면서 말이다.

B가 몸을 사리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영상 편집자와 틀어져 봤자 본인에게도 좋을 게 없었다. 서로 피곤해질 것이다. 물론 위에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이 없는 듯했다. B는 애매하고 예민한 관계성을 파투 내는 최후의 칼을 차마 빼들지 못했다.  

아나운서 D는 조금만 더 참아보라고 A를 위로했다. 


D는 여기에 입사한 직후 항상 웃자는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착한 아이 증후군도 있는 듯했다. 부정적인 감정을 보이는 것도 건강한 태도인데, 그는 무조건 웃는 게 최선이라고 믿었다.

언젠가 팀에서 큰 일정이 잡혔다. 우리와 교신하며 리포트를 함께 만들어 가는 리포터들을 초청한 것이다. 떨어져 있지만 같은 팀이라는 유대감을 쌓기 위해서였다.

리포터들은 대개 무난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유독 군인 복장을 한 남자 리포터 F가 문제가 됐다. 이전에 그는 아나운서 D에게 부적절한 접근을 했었다.

그래서 다른 리포터들을 포함해 그도 온다는 소식에 D는 일부러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계속 피할 수는 없었다. 한참만에 D가 사무실에 돌아왔지만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F가 사무실로 찾아온 것이다. D는 반가운 척하며 F에게 인사했다. 그런데 갑자기 F가 돌발행동을 했다. D를 껴안아버린 것이다.

외국도 아닌데 이성끼리 껴안는 행동은 오버액션이었다. D는 거부하지 못하고 하하 웃으며 어쩔 수 없이 포옹했다. 누가 봐도 부담스러운 장면이었다. 이럴 때는 확실하게 거절해도 되지 않나.   

팀은 리포터들과 식사를 하려고 버스를 대절했다. 버스 안에서도 B는 얄밉게 툴툴거렸다. 그가 셀카를 찍을 때 A가 함께 나오자 '저리 갈래?' 하며 핀잔을 줬다.

B는 차장 E에게 구박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구박 스킬을 A에게 적용했다. 
그런데 B는 E가 본인에게 그렇게까지 차갑게 대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방송을 하다가 B가 어떤 실수를 했단다. 그런데 좀 큰 실수였단다. 이후 E는 태도를 바꿨단다. 구박하고 멸시하면서 몰아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그 딴에는 내가 무르게 대하니까 구멍이 난 게 아닌가 경각심을 가졌던 것일 수도 있다. 하여튼 B는 그 점을 무척 서운해했다. 


그리고 내가 들어온 뒤, B는 본인이 당했던 고압적인 태도를 흉내 냈다.  

아나운서 D는 착하긴 했지만 묘하게 A와 안 맞았다.

A는 이 팀 중 한 사람인 G의 행동이 깔끔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은근히 G을 멀리했다. 평소 G는 괜찮은 사람 같아 보였다. 하지만 다 같이 회식 겸 노래방을 간 날 그가 자신을 잘 절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목격했던 것이다.

A가 이런 생각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D는 단번에 손사래를 쳤다. G가 그런 유형이 아니고, 지극히 깔끔하게 처신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A는 동의가 안 됐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A의 예상은 어긋나지 않았다.

리포터들과 팀 사람들이 밤새도록 술을 마셨던 날, G가 한 리포터에게 선을 넘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충분히 문제가 될 만한 장면을 직관한 다른 리포터가 있었다.

졸지에 목격자가 된 리포터는 G가 특정인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지 A에게 고스란히 말했다. 그 리포터는 G를 경계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전했던 것 같다. 

A의 의견을 반대하며 태연하게 G를 변호했던 D가 떠올랐다. D의 판단은 틀렸다. A의 판단이 맞았다.

무엇보다 D는 A와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D는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특정 집단의 종교인이었다. 차장 E가 A에게 살짝 귀띔한 것이다. D는 친절한 미소를 보이며 A에게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D가 보여준 관심이 거짓은 아니었지만 A를 기만한 것도 사실이었다. A는 D를 다시 보게 됐다.

A는 하루하루 버티며 일했다. 다른 신입사원들과 비슷한 모습이었을 거다. 그동안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고, 미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조금씩 일에 적응해 갔다.

하지만 A에게 잠재된 고민은 여전했다. 과연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을까? 

그러다가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해외에서 거주하던 리포터가 A에게 찍은 영상을 국제소포로 부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영상이 유실된 것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영상은 오지 않았다. 

누구의 책임인지 모른다. 다만 그는 영상을 보낸 게 맞단다. 그럼 도착을 해야 정상이다. 아직 오기 전이었던 걸까. 아니면 중간에 정말 분실된 것일까. A는 도착한 게 없으니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리포터는 전화통화를 하며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기분 나쁘겠지만, 원래 몸에 좋은 약은 쓴 거예요."

거짓말이었다. 리포터는 상대에게 교훈을 주려고 화내는 게 아니었다. 그는 다만 일에 차질이 생기자 분풀이를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잘못된 사태에 책임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에피소드를 계기로 A는 일을 그만두게 됐다. 회사는 후임을 뽑았다. 이제 인수인계 일정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과정도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을 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D는 A를 오해하게 됐다. (2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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