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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불링을 좋아했던 B의 최후 - 2화

"몇 시간씩 어디를 다녀온 거야?" B는 자신의 선배에게 혼나고 있었다

다른 부서로 전출된 B는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몇 시간씩이나 너는 어딜 갔다 온 거야? ”


B의 직속 선배가 사무실에 막 들어온 B를 흘겨보며 물었다.

누군가를 평가하는 사람도, 누군가에게 평가당하는 사람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B가 한동안 자리를 비웠던 모양이었다.

그의 선배는 B의 근태가 태만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있는 사무실에서 공개적으로 큰소리를 냈다.


예전에도 B가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사무실에 나타나지 않은 적이 있었다.

집에서 늦게 출발한 게 아니라 전날 심하게 과음한 나머지 회사 숙직실에서 잠들었던 것이다.  

그에게 몇 시간씩 사무실 자리 비우기는 대수롭지 않았던 걸까. 

홍학처럼 B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B는 무척 당황해 얼굴이 빨개진 채 매서운 선배를 멍하니 쳐다볼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때 B의 선배 맞은편에 앉은 동료가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봐봐. 내가 말했지. B가 어디 갔다 왔는지 말 안 할 거라고 했잖아. 하하하.”


2명은 화기애애하게 B의 앞에서 B를 놀렸다.

당사자가 들으라고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는 그들은 즐겁고 여유로웠다.


B는 그들이 자신을 공격하는 모습에 넋이 나가 있을 뿐이었다. 

특히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의 사정을 결코 봐주지 않는다. 그게 사회의 매운맛 아니겠는가

내가 아파서 외근을 못 나간 적이 있었다.


나 대신 외근 나갈 사람을 D팀 단체 대화방에서 구했다.

B는 팀을 옮긴 뒤 일이 줄어든 건지 D팀 단체 대화방에 가장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

B는 더 이상 D팀이 아니기에 대화방에서 탈퇴해도 무방했다.
다만 그간의 정 때문에 B가 D팀 대화방에 머물도록 내버려 뒀다.
무엇보다 나 대신 외근을 나갈 사람은 적어도 B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A야. 괜찮아? ㅠㅠ]


B가 나를 걱정하는 척하자 나는 아프다고 대충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B의 두 번째 문자 내용이 반전이었다.  

평소에도 B는 나한테 만큼은 사사로운 일에 짜증을 냈다. 그런데 갑자기 걱정하는 문자를 보내는 게 좀 수상하긴 했다

[A야.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 주지 말고 병원에 가.]


B가 야멸차게 비아냥거렸다.
방금 전에도 괜찮냐고 물어보던 태도는 두 번째 문자를 보내기 위한 연막이었다.
B는 날 비난하고 싶어서 야비하게 웃으며 덫을 놓았던 것이다.   


피해 주지 말라고 하면 그만인데, 굳이 그 전에 안부까지 묻는 건 지나친 페이크였다.

왜 그렇게까지 쓸데없이 잔머리를 굴렸을까. 


당연히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 입으면 안 된다.
나의 빈자리를 대신할 사람에게 나는 마땅히 미안해해야 한다.


사회생활에서 만난 사람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B는 사회생활에서 만난 사람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을 듣고는 얼굴이 벌게지고 있었다.

"도대체 몇 시간씩 어딜 다녀온 거야?" 외근을 간 것도 아닌데, 어디에 다녀온 건가? 아마 그 선배 격의 누군가는 그런 의구심이 들었을 것이다

B는 E팀에서 인격적인 존재로 대우받지 못했다.


상명하복에 익숙한 그의 선배가 B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의 선배는 자신도 자리를 지키는데, 뚜렷한 이유 없이 몇 시간 동안 사무실 자리를 비운 B가 얄미웠을 것이다.   


그의 선배가 B에게 회심의 한 방을 날렸다.


“F가 너 보고 OOO라고 하던데?”


E팀 소속 F가 B가 없는 자리에서, B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고 전했다.

B의 선배는 상대를 능수능란하게 쥐락펴락했다. 우체부처럼 험담을 전달할 때 B의 선배는 여유가 가득했다. B는 임기응변 기술이 부족해 속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때 B의 안색이 눈에 띄게 변했다.


누구보다 앞서서 험담을 이끌었던 B는 험담의 대상이 되자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을 느낀 듯했다.
그는 없던 힘을 쥐어짜
F가 더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방어했다. 


“오...”


그의 선배가 감탄사 속에 조소를 섞었다.  

B의 솜 주먹에 놀라는 '척' 해준다는 식이었다.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선배는 B의 반격에 휘둘리지 않았다.
오히려 놀리는 듯한 제스처를 본 B가 재차 당황하는 모습을 즐겼다. 

2대 1이었다. B 앞에서 다들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웃지 못하는 사람은 B 뿐이었다

더 이상 온라인에서 고압적인 심판관 노릇을 자처했던 그가 아니었다.


예전에 그는 이 사람 저 사람을 평가하고 비난하면서 만족스러워했다.


그랬던 B가 막상 실전에서는 시원스럽게 싸우지 못했다.


D팀에 B가 있을 때, 그는 조금이라도 기분이 상하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곤 했다. 

B는 사람들 뒤에 숨어서, 자신을 기분 나쁘게 하는 이들을 공격했다

[야, 쟤 좀 혼내 줘.]


언젠가 그가 6살 어린 동료에게 날 험담하는 문자를 살포한 적이 있다.


내가 보낸 이모티콘이 과격해 보인다면서 B는 아이가 엄마에게 학교에서 생긴 일을 이르는 것처럼 어린 동생에게 칭얼거렸다.


그는 일부러 '혼난다'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보통 동료나 선배들에게는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는 상식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B에게 혼낸다고 말한다면 그는 자존심 상했을 것이다.

그는 일시적으로 본인의 지위를 올리면서도 남의 지위를 낮추고 싶었다. 

농담 속에 진담을 섞어 악의를 편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B야, 너 나한테 혼날래? 만약 내가 그런 말을 했다면 걔의 반응은 어땠을까?

B는 회사 동료들에게 친근하게 굴었다. 


누구에게는 과일 이름의 음악사이트 아이디도 빌려주고, 누군가와는 나란히 택배도 가지러 다녀왔다. 


그러면서도 유독 나에게만 이상야릇한 태도로 나왔다.  


게다가 그는 상대와 싸우고 싶을 때 항상 다른 사람을 끌어들였다.

혼자 힘으로 대항하기 무리라고 생각한 건지 이 팀에 자신의 편이 있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서인지 모른다. 

그는 다른 사람 뒤에 슬쩍 숨어서 보호받기를 원했다. 

B는 2명이 재밌다는 듯 자신을 놀리자 표정관리가 안 됐다. 단체 대화방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을 욕하던 모습과는 상반된 태도였다. 그렇게 속상해할 거면서 마구잡이로 험담을 한 거야

물론 B가 E팀으로 옮긴 뒤에는 '다른 사람 의존하기 처세술'을 쓰지 못했다.

팀원이 3명밖에 없었고, B를 제외한 나머지 2명은 서로 친했기 때문이다.

그는 무리에 편하게 녹아들지 못한 채 구박덩어리로 전락하고 있었다.


이제 B의 입장이 바뀌어 고스란히 본인이 했던 일을 되돌려 받고 있었다.


B가 “혼내 줘.”라고 말할 때는 그저 말 뿐이었다. 


그러나 B는 선배에게 진짜 혼나고 있었다.
B에게 '혼난다'는 말은 실전이 되었고, 그 상황에서 그는 어쩔 줄 몰라하며 상처받고 있었다.   

누군가를 판단하는 역할에 익숙했던 B였다. 그러나 이제는 B가 일방적으로 판단받을뿐더러 심지어 공격까지 당하고 있었다

나는 복도에서 B와 마두칠 때마다 그 인상을 유심히 봤다.


풀 죽은 B의 낯빛이 무척 어둡고 칙칙했다.
그는 눈을 내리깐 채 어깨에 힘이 쭉 빠져서 다녔다.  

내가 B와 잘 지내고 싶어 했음에도 불구하고, B는 SNS에서 내 험담을 하고 나를 겨냥한 저격 문자를 공개적으로 보내는 등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그런 수법이 E팀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그의 선배들은 결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B를 봐주는 편이 아니었다. 

누울 자리 보고 발 뻗는다고 내가 받아주니까 B가 공격적인 행동을 반복했던 것이다.


일부 직장 동료와 사이버불링 하던 기세 등등함은 B에게 남아있지 않았다.

B는 우울해했다. 대놓고 자신을 저격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는 아무 소리도 못했다

B도 힘들었을 것이다.


B는 사회생활의 매운 단면을 경험 중이었다.


게다가 B야말로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저격하고 망신을 주지 않았던가.


화려한(?) 과거를 뒤로 한 채, B는 사회생활 속 파워 게임 마법진에서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그리고 B는 파워 게임에서 제대로 밀리고 있었다.

B는 E팀으로 간 뒤 자주 혼자 다녔다. 물론 B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긴 했지만,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B는 더 이상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3명밖에 없는 E팀에서 B의 편은 없었다.
3명 중 1명은 B의 선배인 데다 나머지 1명조차도 B의 선배 친구였다. 그러니 B는 약자였다.


B는 선배에게 혼나기, 선배의 눈치 보기, 선배의 지적에도 억지로 웃기, 혼자 속을 끓이며 담배피기 등 이런저런 상황을 혼자 버텼다.


B는 지극히 평범하고 보편적인 사회생활을 체험할 뿐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B가 형벌을 받고 있는 걸까.'


B가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괜찮은 면도 갖고 있었다.


다만 B는 어떤 현상을 놓고 떠오른 생각을 가감 없이 나눴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말이 있지 않는가.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생각은 자유이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평가를 상습적으로 공론화하는 건 신중해야 할 일이다

B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자유로운 사이버불링을 했다.


B는 여러 사람 앞에서 특정인의 실명을 거론하며, 당사자에게 확인하지도 않은 말들을 퍼트렸다. 또 당사자가 듣지 않는다고 뒤에서 선 넘는 인격모독을 했다.


B는 자신의 말에 타격받게 될 이들을 고려하지 않았다.

상대가 안 본다고 뒤에서 그의 외모를 비하하고, 본인이 예쁘게 봐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는 식으로 말하는 태도는 별로였다

B는 '공개적으로 외모를 비하했던' 누군가와 출장을 떠났다.
그리고 그는 누군가와 함께 사진을 찍어 자신의 SNS에 올리기도 했다.


그 사진 밑에 'B에게 외모 비하를 당했던' 누군가가 '좋아요'를 눌렀다.

그는 뒤에서 B가 자신을 대상으로 어떤 말을 지껄였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싫어했던 사람과 나중에 친해졌을 수도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B의 태도에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 G가 없는 자리에서 B가 말했다.


"G는 성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어리더라고. "


그런데 B는 G 앞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G는 어리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성숙한 것 같아."


이 두 개의 말은 같은 의미일까, 다른 의미일까.


B는 SNS에 G의 사진을 올리고, 그를 칭찬하는 말을 잔뜩 써놓았다. 

공개적으로 욕하고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게 그의 특징인가. 

하여튼 그 칭찬도 B의 진심일 것이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SNS에 B가 G를 좋게 평가한 말을 보면서, 나는 G가 없는 자리에서 G에 대해 그렇게 말했던 B의 모습을 떠올렸다. 떠올리고 싶어 떠올린 건 아니다


B의 모순적이고 가식적인 모습이 싫었다. 

그는 적이라고 간주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이해력도 가동하지 않았다. 
아니, 이해는 고사하고 분별없이 상대를 물어뜯기 바빴다. 
감정적이고 편파적인 해석으로 뒤에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말로 건드리고 다녔다.


당시 나도 부족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도로, B가 퍼트린 루머는 사실이 아니었다.


B는 부정적인 평가를 이곳저곳에 퍼트리고 다녔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바로 그 점이 B의 부족한 면이었다.  


B가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그의 자유다.

답답한 심정을 제삼자에게 털어놓는 일은 누구나 하고 있다. 그런데 B의 행동은 상습적이고 악의적이었다

그러나 내가 짚고 싶은 문제점은, B가 '의도적으로' 그리고 '상습적으로' 여러 사람 앞에서 개인을 망신 주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B는 왜 그랬을까?


개인적으로 해도 될 말을 공개적으로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B는 '자신은 D팀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 메이킹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자, 이거 봐봐. 나는 너네 편이야." B는 특정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공유해 사람들과 유대를 쌓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B는 세상 사람들을 아군 혹은 적군으로만 분류했다.


그래서 같은 행동을 해도 아군이 하면 괜찮은 것이 되고, 적군이 하면 잘못한 것이 됐다.


B는 자신과 친한 사람들이 H행동을 하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했다.
B는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들이 H행동을 하면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그게 B의 판단법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회색도 있고, 보라색도 있다. 파란색도 있고 빨간색도 있다.

B는 그런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은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 그런데 B는 그런 상황을 딱 두 가지 관점에서만 정리했다

적군이 하는 말, 적군이 하는 행동이라면 일단 B는 다 의심한다.


B에게 '나'라는 사람은 적군이었다.


B는 다른 사람과는 우체국에 다정하게 다녀온다.


그러나 나와는 산책도 가지 않는다.


B는 다른 사람과는 차도 자주 마신다.


그러나 나와 개인적으로 차를 안 마신다.


B는 다른 사람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한다.


그러나 나의 질문에는 옆에 누가 있든지 매몰차게 무안을 준다.


적군과 잘 지낼 이유가 없었다. B는.

누구에게나 일관성 있게 대한다는 건 쉬운 게 아니다. 누구나 조금씩 사람을 차별한다. 그래도 사람을 맹목적으로 적대하는 태도는 그런 차별과는 다르다

물론 B는 나를 아군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나름대로 B가 나를 적군으로 보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B를 싫어했다면, B가 나를 적군으로 볼 때 나를 그를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B를 싫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B가 뾰족하게 나올 때마다 실망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B가 싫어졌다.


남이 나를 싫어하면, 나도 남을 싫어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B를 싫어하기로 했다.


결국 B가 공개적으로 이말 저말 하고 다닌 근본적인 이유는, 상대를 배려할 만큼 좋아하지 않아서였다.

만약 그 화살이 엄한 데를 찌른다면 책임질 수 있나

누군가를 저격한 만큼, B는 다른 사람들의 환심을 샀다.


B가 특정인들을 안 좋게 평가할 때마다 D팀은 좋아했다.
D팀에서는 자신이 일한 만큼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B가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때마다 D팀의 일부 사람들은 자기편이 있다고 위안을 얻었다.
B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타인을 부정적으로 말할 때, 그 말을 하는 당사자는 암묵적으로 자신만큼은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된다.


"쟤 이상해."라는 말 뜻에, "쟤는 이상하지만 나는 안 이상해."라고 암묵적인 의미가 깔려 있는 것과 같다.


내 앞에서 B는 마땅히 적을 무찔러야 하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적에게 반기를 드는 자신이 꽤 멋있다고 평가했다.  

상대가 꽃을 들고 있어도, 상대를 적으로 해석하면 꽃은 총으로 보인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B를 친구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B는 날 친구로 보지 않았다.


옆에서 친구인 '척' 했을 뿐 속마음은 달랐던 것이다.


온라인에서 사이버불링을 하던 B는 이제 오프라인에서 들어오는 공격에 고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B의 행동은 이니셜로나마 공개적으로 온라인에 박제되었다.


그게 B의 최후다.


B는 자신이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런 B를 정의롭지 못한 사람, 타인을 무책임하게 낙인찍던 백정으로 여겼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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