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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20. 2021
나르시시스트의 인간관계는 불합리한 미로 게임과 같다
미로를 빠져나올 지도도, 규칙도 나르시시스트의 희생양은 모른다.
처음에는 나르시시스트도 매너를 지킨다.
이때 나르시시스트는 물샐틈없이 착하고 바른 사람인 것처럼 행동한다.
정의를 부르짖고 선악을 분별하는 사도의 이미지를 구축하려 애쓴다.
"저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당신의 상처와 아픔을 다 저한테 털어놓으세요. 전 포옹력 있는 멋진 사람이니까 좋은 해결책도 줄 수 있어요."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을 홍보한다.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나르시시스트는 서서히 정체를 드러낸다.
상대가 자신의 장단에 놀아날 말랑하고 따뜻한 인간인지 관찰하는 기간이 지나면 가면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의 맨 얼굴을 직관할 희생양은 바로 이런 유형의 사람이다.
첫째, 주변 사람들과 다투지 않고 되도록 우호적으로 지내는 사람
둘째, 사람들의 긍정적인 면만 주로 보고 섣불리 비판하지 않는 사람
셋째,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별로 없고 마음을 열어 대화하는 사람
넷째, 상대의 기분과 처지를 살펴 진심으로 공감하는 사람
다섯째, 희로애락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투명한 사람
한 마디로 해맑고 의심을 잘 안 하는 사람이다만약 당신이 나르시시스트가 원하는 기준에 부합하는 인물이라면?
나르시시스트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이후 상대는 나르시시스트가 준비한 게임에 돌입하게 된다.
물론 희생양은 본인이 게임에 참여한지 모른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낄 때는 이미 게임을 위해 준비된 미로 한 복판에 들어온 이후다.
희생양은 복잡한 거미줄 같은 그곳을 빠져나오는 게임에 참여해야 한다.
반드시 누군가가 이기거나 져야만 게임이 종료된다.
무승부는 없다.
왜냐면 게임이니까.
훗날 희생양이 가장 억울해하는 것은 당시 게임인 줄 모르고 게임했다는 사실이다.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누군가가 넌지시 진실을 말했다면 그토록 불합리한 판을 거부했을 것이다.
나르시시스트가 게임을 시작한다고 신호를 보내기는 한다.
그런데 신호를 보내는 방식이 교묘하고 은밀해서 바로 알아채는 사람이 거의 없다.
큰 피해를 받은 희생양이 스스로 깨닫게 될 때가 부지기수다.
마법진 비슷한 이 미로는 애초부터 지도가 없다. 미로의 설계자는 이곳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발설하지 않는다. 그걸 말하지 않는 것도 게임의 규칙이다게임의 규칙은 이미 나르시시스트가 정했다.
나르시시스트는 그 규칙을 희생양에게 절대 말하지 않는다.
상대가 규칙을 몰라야 오랜 시간 나르시시스트가 즐거워하며 게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걸 싫어한다.
희생양에게 모든 잘못을 덮어 씌우는 억지스러운 규칙이 드러나면 게임은 무효가 된다.
그러니 나르시시스트가 규칙을 누설하는 것은 극도로 조심하는 일이다.
상대가 규칙을 알게 되면 곧바로 게임을 그만두고, 나르시시스트의 곁을 떠날 테니까 말이다.
오랫동안 이런 게임을 해온 나르시시스트
게임 인지도 모르고 사람
그래서 규칙도 모르는 사람
둘 중 누가 더 승부에 유리할까?
나르시시스트가 만든 게임 규칙 중 일부를 살펴보자.
첫째, 나르시시스트만이 상대를 지적하는 권한을 갖는다.
둘째, 상대는 완전무결한 상태일 때만 나르시시스트를 비판할 권한을 갖는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완전무결한 상태는 오지 않는다.
셋째, 나르시시스트의 비판은 객관적이고 이성적이기에 논란의 여지가 없다.
넷째, 나르시시스트를 향한 상대의 비판은 오해에서 비롯된다.
나르시시스트의 결점은 다른 사람도 지닌 결점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런 결점을 지적하는 것은 올바른 행위가 아니다.
너무 불합리하다고?
맞다.
그런데 그게 게임의 본질이다.
나르시시스트가 설계한 이 게임은 내로남불의 결정판이다.
궤변의 향연이다.
거짓말을 덮기 위한 거짓말의 쌈 싸 먹기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지식을 미로 설계자가 모른다.
엄밀히 말하면, 모른 척한다.
그래야 재밌는 게임을 더 오래 할 수 있으니까.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 미로게임은 무의미하다. 게임은 처음부터 나르시시스트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는 게임의 창시자이기 때문이다만약, 희생양이 이 게임 규칙의 불균형과 사악함을 깨닫고 당장 그만두겠다고 말하며 화를 낸다면?
당연히 나르시시스트는 말릴 것이다. 그리고 온갖 변명을 다 할 것이다.
네가 기분 나빠하는 줄 몰랐어
그 상황에서 내가 그렇게까지 말한 건, 너를 위해서 한 말이었어
나는 나쁜 의도로 한 말은 아닌데, 만약 다르게 느꼈다면 어쨌든 사과할게
그런데 사실 이 말은 괄호가 필요하다.
나르시시스트의 머리에서 나오는 모든 생각은 되짚어 생각해봐야 할 때가 많다"네가 기분 나빠하는 줄 몰랐어."
(네가 나로 인해 힘든 건 알았는데, 나는 그런 게 좀 재밌었어.
네가 아파하는 걸 볼 때마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 상황에서 내가 그렇게까지 말한 건, 너를 위해서 한 말이었어."
(네가 자꾸만 주도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게 꼴 보기 싫었어.
나는 네가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그저 내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게 좋았거든)
"나는 나쁜 의도로 한 말은 아닌데, 만약 다르게 느꼈다면 어쨌든 사과할게."
(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네가 정색하고 나를 공격할 줄은 몰랐어.
너랑 게임할 때가 나는 재밌던데,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아 아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