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2편-'민심'을 신경 쓰던 B가 괴롭힘을 멈춘 이유는?

상대가 반복적으로 선을 넘을 때, 정색하지 않으면 일이 커진다

그동안 B는 도대체 무슨 일을 했던 걸까?

내가 단체 대화방에 메시지만 올리면, 그는 타이밍에 맞게 악플 비슷한 걸 달곤 했다.


내가 특정 시간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아니었다. 


예를 들면 단체 대화방에 오후 1시마다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동적인 상황에서 비정기적으로 메시지를 올린다. 


그런데 B는 마치 실시간으로 대화방을 보는 것처럼, 나의 메시지가 나타나면 거의 동시에 등장했다.  


B도 유동적으로 일하고 있을 텐데, 내가 메시지를 올린 걸 어떻게 빠짐없이 눈치채고 득달같이 달려올 수 있었을까. 신기한 노릇이었다. 

가끔 올리는 메시지인데, B는 거의 칼탑을 했다. 안 좋은 내용으로

어느 날이었다. 

직장동료가 결혼을 하게 됐다. 


나는 임시적으로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사람들을 초대했다. 

그리고 직장동료의 축의금을 우리끼리 돈을 모아 팀 이름으로 낼지, 개인적으로 낼지 물었다.  


B는 뾰족하게 반응했다. 


'엥? 축의금을 왜 다 같이 내요?' 

'엥? 갑자기 무슨 소리하는 거예요?'

'엥? 난 따로 보낼 계획인데. 엥?'

B는 내가 단체 대화방을 만든 것 자체도 싫은 듯했다. 나의 언행과는 상관없이 그는 소소한 폭탄을 던졌다

B는 엥엥엥 거리면서 나를 면박주기 시작했다.

사실 B가 저렇게 나올까 봐 대화방에 초대하기 전에 살짝 망설였다.


그래도 나중에 B가 대화방에 자신만 초대되지 않았다는 걸 알면 소외감을 느낄까 싶어 초대한 거였다. 


역시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나는 어떻게든 대화를 잘 마치려고 했다. 


- 축의금을 따로 내도 상관없는데, 혹시나 해서 의견을 물어본 것뿐이야. 


- 네가 이미 축의금을 준비했다면 따로 내렴. 나는 상관없고, 다만 물어보는 차원에서 한 말이야. 

나는 B를 설득했다. 결혼식 축의금을 논의한 건 보편적인 일인데, B는 퉁명스러운 태도로 일관했다

내가 반드시 축의금을 다 같이 돈을 모아 내자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설령 축의금을 팀 이름으로 내자고 누군가가 말해도 무난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B는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마치 내가 해서는 안 될 말이라도 한 것처럼 따지고 있었다. 

B는 단체 대화방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감정적으로 대응했다

나는 B가 축의금을 따로 준비한 것도 몰랐다. 내가 알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B에게 축의금을 따로 내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축의금을 따로 내도 상관이 없다, 너는 따로 내라, 그냥 어떨까 해서 물어본 거다 이렇게 중립적으로 계속 말했다. 

B가 신경질을 낸 건 결혼식 축의금 때문이 아니었다. 결혼식 축의금 논의를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이 꺼냈다는 게 초점이었다

이미 나는 B를 포기했기 때문에 화도 안 났다. 

나는 감정적으로 툴툴거리는 B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그를 살살 달랠 생각이었다. 

나쁜 의도로 말한 게 아니니, 각자 자유롭게 축의금을 내자고 좋게 마무리지으려 했다. 

 

그런데 B가 내 바짓단을 붙잡고 놓지를 않았다.


내가 의도를 설명해도, B는 악착같이 대화방에 계속 추가 메시지를 보내며 끈끈이처럼 매달렸다. 

내가 좋게 말해도 B의 감정은 점점 고조되었다. 결혼식 축의금을 어떻게 할지 나는 그 말만 한 것뿐인데

왜 다 같이 축의금을 내는 걸 말하냐며. 

도대체 왜 그러냐며. 도대체 왜. 도대체 왜. 


자유롭게 축의금을 내면 된다고 말했는데도 B는 왜 그럴까.

단체 대화방에서 사람들이 말없이 그가 독주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 그런데 원래 회사에서 팀 이름으로 축의금을 낼 때도 있어. 

여론이 B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자, 그제야 그는 멈칫했다

보다 못한 누군가가 직장에서 다 같이 축의금 내기도 한다고 말한 뒤에야 B가 멈칫했다. 


평소 보란 듯이 공개적으로 날 무안 주던 B였다. 

이번엔 B가 공개적으로 무안을 당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제지하자 B는 더욱 감정이 상한 듯했다. 


B는 단체 대화방에서 나가버렸다. 

또 다른 누군가가 B를 대화방에 다시 초대했다. 

그는 다시 나가버렸다. 


그 뒤로 B는 예전만큼 섣부른 태도로 나를 대하지 못했다. 

나에게 호전적으로 나오는 태도가 잦아들었다. 드디어.  

그동안 누군가가 B를 정식으로 말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생각보다 쉽게 그는 수그러들었다. 그동안의 기세 등등함이 무안할 정도로

민심 아닌 민심은 B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 중 하나였다. 


그동안 B가 나를 어떤 식으로 대하든 직장동료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B가 어떻게 행동하든 직장동료들은 관심 밖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B가 원래 A한테만 저러니까 하면서 평이하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아니면 B가 A를 참 싫어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B는 특정인을 향한 자신의 공격성을 타인에게 지적받은 적이 없었다. 내가 알기로는. 그리고 나도 그를 지적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이런 의식으로부터 B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축의금 대화방에서 B는 간접적으로 지적을 받고 있었다. 


' B야, 축의금 다 같이 내자고 한 게 뭐 어쨌다는 거니. 너는 정말 왜 그러니.'


B의 포커싱은 나의 언행이 아니었다. 


그저 그는 '나'라는 존재를 미워했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모두 문제 삼으려고 했던 것뿐이었다. 

B는 정말 나를 미워했다. 그렇게 꾸준하게 나를 싫어할 줄이야

그러나 멋대로 행동한 B가 지금은 별 것도 아닌 걸로 난리 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가 큰 잘못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B였는데, 막상 공개적으로 자신이 잘못한 입장이 되니, 외려 신경질을 내며 삐져버렸다. 


그리고 B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던 민심이 B의 편이 아닌 것처럼 되었다. 그 순간만큼은. 

정도의 차이일 뿐 자신의 모습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 신경을 쓴다

B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했다. 


축의금 사건은 작은 일이었지만, 그 일로 인해 B는 자신이 갈구하는 인정과 관심의 영역이 흔들릴 수 있다고 믿게 됐다. 

B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들로부터 소외받는 것이다

B처럼 막무가내로 나오는 사람들을 억제시키는 방법은 바로 약점을 쥐고 뒤흔드는 것이다. 


B야, 계속 제멋대로 굴면 네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걸 뺏을 거야. 

누군가가 B에게 저렇게 말한다면, 그는 못된 행동을 당장에 그만둘 것이었다.


물론 내가 B의 약점을 쥐고 뒤흔든 건 아니었다. 

나는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그는 민심이 자신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것 같자 그제야 괴롭힘을 멈췄다. 

B는 예상 밖의 상황에 당황했고 자신이 코너에 몰린다는 생각이 들자 다급해졌다

미움 공무원 출신 B의 갑작스러운 퇴사였다. 


B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무례함을 반성한 게 아니라, 그냥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았기에 스스로 괴롭힘을 그만두었다.

그는 더 이상 예전처럼 단체 대화방에서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왜일까. 

B는 나와 개인적으로 마두칠 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가, 사람들하고만 있으면 이빨을 드러냈을까.

 

B가 사람들에게 보여주듯 나를 면박한 건,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자기편이라는 믿음이 있어서였다. 


그러나 B는 축의금 대화방 사건으로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B가 나를 노골적으로 공격하자 누군가가 그를 말렸다.

또 다른 누군가가 대화방에서 탈퇴한 B를 다시 불렀다. 

그런 상황은 B에게 메시지를 던졌다. 

사람들은 자꾸 선을 침범하는 무례함을 언제까지 참아주지는 않는다

사람은 상대가 아무리 싫더라도 되도록 '적절한 선'을 지켜야 한다. 


선을 지키지 않으면, 선을 지키지 않은 당사자에게도 유익이 없다.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자신의 편인 듯해도, 사람 속은 모르는 것이며, 여론은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거다. 

공개적으로 지적을 당하자, B는 이제야 사람들 눈치를 슬슬 보기 시작했다

B가 나에게 불만이 있어서 유독 뾰족하게 나왔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예전에 나는 B의 행실을 지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지적에 B가 반발심을 느꼈다. 


B는 그 자리에서 반발심을 티 내지 않았다. 

그는 안 좋은 감정을 참았다가, 좋은 타이밍에 드러낸 거였다.

좋은 타이밍이란, B가 사람들과 친해진 이후를 말한다. 


뭐,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날 미워하는 걸 이해한다. 그럴 수 있다. 

B는 나름대로 나를 미워하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B의 마음에 상처를 냈고, 그 이후 그는 나에게 마음을 닫았다

그러나 미움은 고삐 풀린 말과 같다. 


사람은 그 말에 타면서 자신이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멋대로 달리는 말 위에 탄 순간부터, 자신이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갑자기 낙마를 한다. 

미움이 B를 컨트롤했다. 미움이 시키는 대로 B는 착실히 나를 괴롭힐 뿐이었다

나를 비웃고 공격하며 사사로운 일을 구실 삼아 괴롭히던 B.


B의 입장에서 A를 괴롭히는 건 어느 순간부터 당연해졌었다. 


심지어 그에게 괴롭힘은 하나의 이벤트요, 일상의 일부로 자리 잡았었다. 

심심할 때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해 샌드백을 툭툭 쳐 보는 재미랄까. 


A를 향한 경멸을 표하는 것에 B는 중독되고 있었다. 

B는 내가 난처해하기를 바랐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시로 작은 잽을 날렸다

- 내가 A에게 못되게 구는 건 당연해. 


- A도 나한테 상처를 준 적이 있으니, 내가 A를 지속적으로 괴롭혀도 괜찮아. 


- A는 나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람이 아니니, 내가 기분 나쁠 때 내키는 대로 행동해도 상관없어. 


이게 B의 생각이었다. 

B는 아닌 척하면서 계속 수동 공격을 했다

B는 A 앞에서 남에게 'A는 특이하잖아.'라고 이죽거렸다. 


그가 A에 대한 미움을 드러내는 신호탄이었다. 

그 신호탄은 A 괴롭히기 프로젝트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A가 그 서막부터 참아주었기에 B는 더 멋대로 굴었다. 


A가 B를 통제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B를 통제하지 않았다. 


그래서 B는 실실거리며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A를 불쾌하게 할까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의 A 괴롭히기 프로젝트는 그렇게 A의 허용 아래 순항로를 탔다. 

B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공격해도 안전할 거라고 믿었다

B가 나를 미워한 계기는 본인의 기분이 상해서였겠지만, 그렇다고 지속적으로 틈틈이 나를 표적 삼아 괴롭힌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었다.


그의 노력이 가상해 보일 정도로, B는 나를 겨냥해 성심성의껏 악다구니를 썼다. 

결국 그는 미움에 사로잡혀 휘청거린 채 뾱뾱이 망치를 휘둘렀던 것이다. 


얼마 뒤에 그는 다른 팀으로 가버려 더 이상 마두칠 일은 없었다. 

다른 팀의 막내가 된 B는 새로운 일에 적응하고 있었다.

다른 팀으로 옮긴 뒤, B는 누군가를 노골적으로 괴롭힐 입장은 못 되었다. 나에 대한 미움을 접어두고 그는 새로운 일에 적응해야 했다

그리고 다른 팀으로 옮겨간 이후, 무슨 까닭인지 B는 고위 관계자인 D에게 찍혀 지방으로 전출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윗사람과의 관계에 공을 들이던 B였는데 뭔가 일이 제대로 안 풀린 듯했다. 


B는 의기양양하게 자신이 사람들을 휘어잡는 스타일이므로 귀여운 동생 취급하지 말라며 불평했었다. 


그러나 지금 B는 상대를 휘어잡기는커녕 상대에게 휘어 잡히다 못해 묵사발이 되고 있었다. 

그것도 B가 그토록 잘 보이고 싶었던 권력에게 말이다.  

B가 그토록 지키고 싶던 민심의 어딘가에 구멍이 난 모양이었다

그는 동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남는 중이었다. 


B는 고위 관계자에게 악플 비슷한 메시지를 보낼 수도 없었다. 


B는 주변 사람들을 움직여 고위 관계자를 이상한 사람 만들 수도 없었다. 


B는 내가 사회를 좀 아는데 당신이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고위 관계자에게 거들먹거릴 수도 없었다. 


B는 고위 관계자의 말 끝마다 트집을 잡은 뒤 악의를 담아 놀릴 수도 없었다. 

B는 사람들을 가렸다. 그는 자신이 잘 보여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순한 양처럼 행동했다. 그는 자신에게 불이익을 안 줄 것 같은 사람들에게는 막 나갔다 

즉 B는 나를 대하는 방식처럼 D를 자신의 가시로 툭툭 찌르고 도망갈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동료들에게 기대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칠 뿐이었다. 


B가 좋은 마음으로 대하든 나쁜 마음으로 대하든 D는 상관없을 것이다. 

D는 자신이 B를 싫어한다는 마음 자체에만 관심이 있을 것이다. 

B가 나를 대했던 것처럼. 

B는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향후 D에게 불이익을 받을까 봐 티도 못 내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내가 좋게 말할 때도 툴툴거리던 그였는데

다른 팀의 막내가 된 B는 새로운 일에 적응하고 있었다.


선배 격의 누군가가 카메라 앞에서 경직된 B를 다독였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아직 B가 긴장을 많이 한 상태입니다.'


B의 얼굴이 빨개졌다.

나를 비웃던 표정은 남아있지 않았다. 

신입 단계를 거치는 B에게 긴장감만이 감돌았다. 


나를 괴롭히듯 악착같이 일하면 될 텐데, B는 적응 중이라 마음처럼 되지는 않던지 경직된 표정을 풀지 못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1편-사람들이 정우성을 좋아할 때, B는 신경질을 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