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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원전사고-인생이 망하지 않으려면 OO해야 한다

인생은 한 번에 무너지기보다 모래성처럼 서서히 무너진다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폭발의 결정적인 발화점은 원자로에 시행된 '안정성 테스트'였다.

테스트 중 원자로의 노심이 노출된 것이다.


순식간에 발전소는 화염에 휩싸였다.  

방사성 물질로 인해 불은 형광빛을 냈다.


당시 형광빛의 불이 가져올 참사를 사람들은 잘 몰랐다.

방사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에너지인지 인류가 체감하지 못할 때였다.

단시간에 다량으로 퍼진 방사선은 보이지 않는 괴물이다.

괴물은 인간의 DNA와 피부조직, 뼈와 골수, 장기 등을 영구적으로 손상시킨다.


원전 직원은 물론 불을 진화한 소방관과 시민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방사능 피폭을 당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점진적이고 가혹하게 인간을 죽음에 물들였다.

원전의 안전성 테스트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테스트의 핵심은 전쟁 등 비상사태로 원전이 정전되면 후속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정전이 되면 1분 후 비상발전기가 돌아간다.

그래서 멈춘 원전에 대체 전력이 공급된다.    


모든 것이 멈춘 1분 동안, 즉 비상발전기가 돌아가기 전까지, 전력이 끊긴 원전에 이상이 생기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니콜라이 포민 등 관료들과 원전의 최고 책임자 댜틀로프는 테스트의 실패를 만회해 체르노빌이 안전한다는 걸 서둘러 증명하려고 했다.


그들은 조급함 때문에 테스트의 정상적인 절차를 어겼다.

원전 직원들은 정전을 위해 제4 원자로 출력을 평소보다 천천히 낮추고 있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외부 공장이 야근 때문에 전력이 더 필요하다며 테스트 시간을 늦추라고 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요청으로 결국 테스트는 10시간 후로 미뤄졌다.

1시간도 아닌 10시간 후로.

계획대로라면 주간조 직원들이 담당할 테스트였다.


10시간이 지나고 테스트는 야간조 직원들 몫이 되었다.

테스트 장소에는 주간 근무로 피로해진 댜틀로프와 경력이 1년도 안 된 후임이 소속된 야간조가 있었다.


원전의 출력을 낮췄던 후임은 테스트를 진행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여기저기 취소선이 그어진 테스트 매뉴얼은 그에게 낯선 기호에 불과했다.


심지어 테스트가 한껏 미뤄져서 원자로는 10시간 동안 낮은 출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평소처럼 출력이 높다면 우라늄 분열로 만들어진 원소 '제논'은 빠르게 연소된다.

 

그러나 이번엔 특수하게 반나절 가까이 낮은 출력으로 원전이 가동됐다.

너무 낮은 출력에서 제논은 연소되지 않고 쌓인다.

 

따라서 체르노빌은 정상적인 가동이 힘들었다.


이런 화학적 변화를 원전 사람들은 인지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안정성 테스트의 성공에는 댜틀로프의 승진이 걸려 있었다.

그래서 다른 직원들이 위험하다고 경고해도 댜틀로프는 테스트를 감행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급기야 원자로의 출력은 멋대로 낮아졌다가 멋대로 높아지기 시작했다.


비상임을 직감한 야간조 선임은 비상 정지 버튼 AZ-5를 눌렀다.

그 선택은 올바른 판단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원자로 폭발을 앞당기는 방아쇠였다.


체르노빌의 RBMK 원자로는 이전에도 AZ-5를 눌렀을 때 멈추지 않고 오히려 일시적으로 출력이 높아지는 등 불안정했던 전력이 있었다.


그 사례를 국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국가는 AZ-5의 결함을 해결하지 않고 덮어버렸다.


국가가 원자력 산업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이미지를 원했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이던 제4 원자로.

불협화음의 최고조가 된 원자로는 폭발했다.

인생이 잘못되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물론 한 번의 큰 사건으로 의지와 상관없이 인생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인생은 작은 영역부터 서서히 무너질 때가 많다.


직업이든, 결혼이든, 친한 친구와의 동업이든 인생의 한 부분에 미세하게 균열이 생긴다.

 

그 균열을 바탕으로 조금 더 큰 균열이 발생하고 결국 나비효과처럼 인생의 전반적인 영역이 무너진다.


원전 폭발 전까지의 상황은 일상적인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든 게 조금씩 다 잘못되어 있었다.

갑작스럽게 미뤄진 테스트.


시간차로 경력이 적은 야간조 직원이 테스트에 투입된 상황.


승진을 위해 무리하게 테스트를 밀어붙인 윗선.  


원자로의 결함을 알면서도 해결하지 않은 국가의 안일함.   

이는 마치 마라톤 선수가 출발선에서 달리는 방향을 딱 1도만 틀어지게 잡는 것과 같다.


1도는 아주 미세한 각도이다.

1도이든 2도이든 육안으로 구별이 안 갈 정도로.


그러나 선수가 틀어진 1도를 간과한 채 달리기 시작하면 30도, 90도, 180도로 방향이 더 크게 틀어진다.


결국 선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죽도록 달리는데 원래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게 된다.

틀어진 1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선수는 출발 전에 곱씹었어야 했다.


목적지의 상실, 마라톤의 실패라는 상징을 그는 빗나간 1도에서 미리 읽었어야 했다.

나침반을 이용해서라도 올바른 방향을 잡고 출발해야 했다.


선수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아무도 나에게 방향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았어.'


'그때 마침 나침반을 집에 두고 와서 정방향을 몰랐어.'


'늘 훈련하던 대로 했을 뿐이야. 코치의 훈련 방식이 잘못됐어.'


선수의 주장은 사실에 기반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시점은 이미 실책 한 후이다.

목적지에서 이탈한 후 그런 주장을 한들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출발선 근처 사람들도, 코치의 훈련 방식도 선수에게 이롭게 작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선수 대신 달리지 않는다.

결국 레이스를 치르는 사람은 선수 자기 자신이다.


무엇보다 1도가 틀어진 상황에 대해 선수는 뚜렷한 문제의식이 없었다.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이유는 선수가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해서이다.

설령 이상함을 느꼈다 해도 결국 그는 기민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문제가 생겼다는 인지를 대충 넘겼든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든 그게 선수의 역량이고 자질이다.

 

결정적이고 중요한 순간에 사람의 본 실력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과연 선수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테스트를 미루기 전, 포민은 출력을 10시간씩 낮추면 원자로에 문제가 없냐고 댜틀로프에게 물었었다.

그는 아랫사람의 기계적인 수긍을 듣고 의문 없이 퇴장했다.


후임은 취소선이 잔뜩 그어진 테스트 매뉴얼을 이해하지 못했다.

괜찮다는 선임의 말에 그는 찜찜해하면서도 출력을 조정했다.  


댜틀로프는 테스트를 위해 다시 출력을 높이라고 지시했다.

당시 출력을 높일 게 아니라 불안정해진 원전 가동을 중단해야 마땅했다.

선임은 위험하다며 불복했다.

이미 컴퓨터에서 원전을 중단하라는 자동 메시지가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댜틀로프는 불복하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했다.

결국 그는 굴복했다.


규정상 천천히 출력을 올려야 하지만, 댜틀로프는 테스트를 어서 마치고 싶어 그를 재촉했다.

그래서 선임은 빠르게 출력을 높이고자 원자로를 제어하는 제어봉들까지 뺐다.  

이로써 원전이 폭발할 또 하나의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원전이 폭발하자 승진을 위해 의기투합했던 관료와 댜틀로프는 서로에게 책임을 미룬다. 


직원은 원전이 폭발해 노심이 없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댜틀로프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해결책을 내기는커녕 상황을 회피했다.


폭발 후 첫 비상 회의 때 포민은 원전을 안전하게 통제했다고 면피용 보고를 했다.

그러나 회의 참석자들 중 한 명이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당장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소개령을 내리자고 했다.


최고참은 이 의견을 묵살한다.

만약 국가가 그 의견을 수용했다면, 무고한 시민의 희생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책임을 묻는 재판에서 한 과학자는 양심적으로 학자적 의견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 과학자도 과거에 원전 비상 장치 버튼 AZ-5의 결함을 알았지만 묵인했었다.  


이들 중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책임에서 완벽하게 배제된 사람은 없다.


사람들의 잘못된 결정들이 켜켜이 쌓여 체르노빌은 무너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인생을 무너뜨리지 않을 수 있을까.

인생이 불행에게 점령당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는 내 인생을 비집고 들어오는 안 좋은 매개체를 주도적으로 거절해야 한다.


나의 인생 한 켠을 차지하려는 불순한 요소를 편집해야 한다.


글의 미학은 편집이다.

편집으로 작가가 말하는 핵심을 부각해 책의 질을 높인다.


인생의 미학도 편집이다.

인생에 자리잡지 말아야 할 것을 과감히 놓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래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사수할 수 있다.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낼 필요가 없다.

모두와 친하게 지내려다 성격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과 악연이 된다.

 

그는 언젠가 본색을 드러내 자신에게 희생하고 맞춰달라는 어이없는 요구를 할 수 있다.

친구 된 입장에서 불합리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해 정서적으로 착취당할 수 있다.  


지나치게 친절한 사람에게 다짜고짜 마음을 열고 나에 대한 비밀스러운 정보를 말하지 말자.

친절을 도구 삼아 목적을 달성한 후 그는 변심해 비밀을 함부로 퍼트릴 수 있다.

의도적으로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하는 사람과는 멀리해야 한다.

나를 향한 수동적인 공격일 수 있다.


상대가 웃으면서 친절한 말투로 기분 나쁠 만한 말을 할 때 넘기지 마라.

웃음 자체가 자신을 본심을 숨기기 위함일 수 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허허 같이 웃으며 상한 감정을 누르면, 어느새 상대의 자존감 후려치기 놀이에 이용당하는 자신을 발견할지 모른다.


소소한 농담이기에 작은 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작은 일의 누적으로 나중에 당사자가 크게 아플 수 있다.  

회사 동료가 반복적으로 나를 무시할 때 받아주지 마라.

어떤 입장에 있든지 하대 받는 상황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

 

상대의 선 넘김을 수락하면 결과적으로 그의 행동반경을 넓혀주는 꼴이 된다.

그럼 그에게 본격적으로 괴롭힘을 당해 뜻하지 않게 퇴사를 꿈꿀 수 있다.


친구의 부탁을 과도하게 들어주다 금전적이로든 정신적으로든 큰 손해를 볼지 모른다.

부탁의 내용을 잘 살피고 내가 감당할 선에서만 들어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무리한 부탁을 하는 사람은 손절해야 한다.


친구가 동업을 제안해도 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 말고 신중하게 고민하자.

훗날 친구도 잃고 돈도 잃고 인류애마저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쁜 인성의 소유자가 적극적인 나온다고 무작정 사귀지 말아야 한다.


인성은 마음의 습관이다.

상대가 처음에 잘 대해줘도 결국 밑천을 드러낼 것이다.

그럼 예기치 않게 데이트 폭력의 체험자가 될 수 있다.  


나이가 찼다고 결점이 자꾸 걸리는 상대와 결혼을 강행하지 말아야 한다.


결혼하기 전, 상대의 단점이 내가 참을 만한 것인지 검토하자.

대게 단점을 바뀌지 않는다.

단점이 노력으로 고쳐진다면 더 이상 단점이 아니다.

 

그러므로 상대의 단점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종류라고 판단한다면 평생 같이 살자는 약속은 보류해야 한다.

나중에 그 단점 때문에 한 지붕 아래 살면서도 얼굴조차 보고 싶지 않을 수 있다.

취업이 빨리 되는 영역에 임시방편으로 발을 들이지 말고, 장기적으로 내가 어떤 분야에서 성장하고 싶은지 신중하게 탐색해야 한다.


취업에도 시기가 있다.

그러므로 인생의 시간을 신중하게 분배해야 한다.

나의 장점이 돋보이지 않는 분야에서 장기간 일하지 말자.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 원론적으로 역량에는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분야로 가면 맨땅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살면서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사사롭게 여기고 대충 넘기지 말아야 한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때를 놓치지 말고 그때그때마다 기민하게 해석해봐야 한다.


그리고 시의적절하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비상 정지 버튼 AZ-5에 결함이 있다는 보고서도.

형광빛이 도는 불길도.

컴퓨터에서 출력된 원전 가동을 중단하라는 자동 메시지도.

이례적으로 댜틀로프에게 불복한 선임도.

당장 소개령을 내리자는 누군가의 직언도.


다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의 작은 시그널이었다.


재앙의 전조 증상을 알지 못해 원전은 폭발했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원전 관계자들은 알지 못했다.


원전 폭발이 어떤 후유증을 남기는지 그때의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오히려 불길에 휩싸인 원전을 보며 한 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아름답군." 

인생의 불행은 무지에서 시작된다.

무지의 원인은 생각의 부재이다.

 

사안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의식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방치된 문제는 스스로 곪아가다 결정적인 시점에 터진다.


불행의 씨앗을 제거하지 않으면 불행은 성장한다.

결국 불행은 인생 속에 우거진 나무로 자라 파멸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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