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 이야기 Jan 29. 2019

목포 적산가옥 거리

목포 기차여행. 적산가옥. 목포역. 근대문화유산. 창성장




목포역 주변은

교통의 편리함과 관광지가 몰려있는 탓에

목포시민들 뿐 아니라 관광객들로

즐비한 구역이었다.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목포의 중심지였던 목포역 주변은

해방 이후에도 최소 50년간

목포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주말에도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쇠락한 공간이 돼버린 지 오래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곳을 지키고 있는

건물들이 있었다.




'동본원사'라는 건물로

1898년에 일본 불교사원 양식으로 세워진

건축물이다.

100년이 넘는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며

절, 소학교, 교회 건물로 사용됐고,

지금도 문화센터로 사용 중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몇 분만 더 걸어 들어가면,

또 다른 건물이 나온다.




이 건물은 일본 영사관이었던 건물이다.

1897년에 세워진 건물이다.

역시 100년이 넘게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뒤뜰에는



전쟁에 대비해 설치한

방공호가 그대로 보존돼 있고


옆으로는



문서고도 잘 보존돼 있다.


아래로 조금만 내려가면



우리가 교과서에서만 배웠던

동양척식 주식회사 건물 또한

원형을 그대로 잘 보존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다른 지역들에도 더러 존재하는

근대건축양식의 건물들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놀란 것은 목포 구 도심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건물들이다.



역세권 시가지임였음에도 불구하고

100년이 넘는 동안,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유가 뭘까?

왜, 어떻게 100년 동안

보존이 가능했을까?


 


이곳에

개발가치가 없어서?

투자자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것도 큰 이유일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이곳은 해방 이후에도 50년 넘게

역세권이었고, 목포의 중심이었다.

서울의 명동과 같은 곳이었다.



의문점은 간판에서 찾았다.

보존된 일본가옥 건물들은

대부분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었다.



노인정으로 사용되고



도매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허물어져가는 것들을

허물지 않고



녹슨 것들에 명패를 달아주며

함께 나이 들고 있었다.


 


부분만을 보수해서라도

지키고 있던 일제 가옥들은

단순한 낡은 건물

그 이상의 의미로 목포 구도심에

버티고 있었다.



이것이

투자가치로만 설명될 수 없는

목포 근대문화유산들의

보존 이유일 것이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목포 시민들에 의해 사용되어 온

이 건물들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볼 것이냐

일제의 잔재로 볼 것이냐는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청산되어야 할 것은

스러져 가는 근대건축 양식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리는

친일 의식이 내제된 채

현재도 계속 일본의 이익을 위해

국익을 팔아먹는걸로 해석될수 있는 행위를

계속하는 이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를테면

강제징용 판결에 개입해

일본편의 이익을 대변한

대한민국 전직 대법원장이나,

일본 초계기의 도발에

강력하게 항의한 대한민국 정부를 향해

"우리 정부도 반일 감정을 부추기면서

외교적 무능을 덮고 있는 것 아닌가

걱정도 든다"는

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 들이 진짜 위험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http://news.jtbc.joins.com/html/854/NB11762854.html


목포뿐 아니라

각 지제체 별로 구도심 살리기 프로젝트에

많은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10조 원 가까이

투입됐다고 한다.


하지만 관이 주도한 구도심 행정은

대부분 실패했다고 한다.


목포도 마찬가지였다.

토요일에 찾아간 목포 구도심 풍경이다.

최근의 보도로 관광객이 몰렸다지만

내가 간 날은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저녁이 될 때까지

목포 구도심과 연결된 항동시장에는

사람은 늘어나지 않았다.



이유야 어찌 됐든 지금에 와서는

국가적으로 소중한 자산이라

생각된다.



문화재의 원형을 유지한 채

도심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무원들의 행정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그것이 중심이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실패사례가 입증하고 있다.



지역의 콘텐츠 원형을 발견하고

창의적 스토리가 텔링 되는

자유롭게 살아있는 사고가

문화재와 도시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떠난 그곳에

떠난이들을 돌아오게 하려고

지자체가, 지역 시민단체가,

남아있는 지역민들이

여러 시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쇠락해 가는 도시의 가치를

알아본 이가 등장했다.

그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 보이는

문화재를 지켜내려고

주변인에게 이곳 땅들을

사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거절했다고 한다.

사람도 없고, 투자가치가 없는

땅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자신의 돈을 조카에게 증여해

건물을 매입하게 도와주고

자신의 보좌관을 비롯한

몇몇 주변인들의

노력으로 주변의 여러 필지를

구입했다고 한다.



창성장은 그렇게

탄생한 공간이고, 스토리가 있는

콘텐츠인 것이다.




게다가 그는 이곳에

자신의 사재를 털어

나전칠기 박물관을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그래서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니까 그는

이곳 부동산을 통해

현재의 이익뿐 아니라

미래의 이익도 장담할 수 없는 입장일 것이다.



따라 하기 힘든 열정이고, 헌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떠나간 사람들을 차치하고라도

남아있는 분들을 위해서도

도시개선사업이 필요해 보였다.



근대문화유산이 보존되는 선에서

주변에 편리하고, 안전하며 세련된

아파트와 주택들이

더 많이 지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골목이 살아나고



항구의 뱃고동 소리도

멋지게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



처음

투기 의혹을 제기한 언론사는

슬그머니, '이익충돌이 문제다'

우린 처음부터 '이익충돌이 문제'

라고 말하고 있다. 라며

비겁하고 치졸한 변명을 해댔다.


투기가 아니라는 게 밝혀졌으면

일단 공개적으로 사과부터 해야 한다.

언론사는 전파라는 수단을 통해

한 사람을 투기꾼으로 몰아세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론은 사과하지 않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그렇다.

잘못된 특권의식이다.


당사자에게는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오보를 나는 범죄라고 생각한다.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을 때 말이다.



이번 주말에는 기차를 타고

목포의 구도심을 가 보기 바란다.



KTX를 타면

서울에서는 2시간

광주에서는 30분이면 도착한다.



일제가

나주평야에서 수확된 쌀과 옷감을

기차를 통해 목포항으로

가지고 왔다고 한다.

 


때문에 나주와 목포 청년들은

기차를 타고 오가며 은밀하게

민족의식과 독립운동을

추진했다고 한다.



그 역사의 현장에

호남선 철로가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망 좋은 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