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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이야기 Aug 23. 2019

라면 형제

또 라면이야?

“뭐야 또 라면이냐?”

라면봉지를 뜯는 순간, 안에 있던 조미료와 함께 형의 퉁명한 말투도 튀어나왔다.

뒤돌아 형을 봤다. 식탁에 앉아있던 형은 손질하던 콩나물을 내려놓았다.

나는 손에 들린 라면 조미료와 형을 번갈아 보다 형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라면이 왜?”

“근사한 집 밥을 만들어 준다면서!”

형은 따지듯이 물었고, 나는 대답 대신 들고 있던 라면 조미료 찢어 냄비 안에 넣었다. 

그리고 미리 손질된 햄과 소시지, 만두와 어묵도 마저 넣었다. 

완성된 요리를 보여주는 것이 형의 항의성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이기 때문이다.

“나가자! 형이 경치 좋은 곳에서 굴비정식 사줄게”

형은 싱크대로 다가와 가스 불을 끄며 내 어깨를 잡아끌었다.

“어딜 나가? 찌개 다 끓었는데”

“찌게? 이거 라면이잖아. 넌 라면 지겹지도 않냐?”

충분히 지겨워 질만도 했다. 우리는 습관처럼 라면을 먹고살았기 때문이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형이 내 보호자를 자처했고, 나는 자석처럼 형을 따라다녔다. 

고등학교 때는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웠고, 대학을 가서도 우리는 라면으로 해장을 했다.

그렇게 라면은 우리에게 허기지고 쓰라림을 달래주는 또 한 명의 형제 같은 음식이었다.

그 이후 형은 된장찌개에도 라면을 넣어먹을 만큼 라면 인간이 되어있었다.

그랬던 형이 갑작스럽게 라면을 거부하는 모습이 계절이 바뀐 것만큼 이나 낯설었다.

더욱 황당한 건 내가 지금 끓인 건 라면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게 무슨 라면이야! 햄이랑 만두 들어간 거 봤잖아! 이거 부대찌개야”

하지만 형은 이미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며 쐐기를 박았다.

“라면도 곧 넣을 거잖아”

“그렇지! 그래야 부대찌개가 완성되니까”

“거봐. 결국 라면이잖아. 햄이 잔뜩 들어간 햄 라면”

“뭔 소리야! 이걸 누가 라면이라고 해”

명백한 억지였다. 라면이 들어간 부대찌개를, 햄이 들어간 라면으로 해석해버리면

계란이 들어간 떡볶이는 계란 볶음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어떤 말을 해도, 형은 다시 식탁으로 돌아올 것 같지 않았다.

저녁상을 걷어차지만 않았지, 다 된밥에 재를 뿌리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때 내가 해야 하는 행동은 짜증이 아니라 붙잡는 것이었다. 

그래야 욕이라도 제대로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욕도 하지 않을 것이다. 뿌려진 재를 걷어내고 다시 저녁을 먹일 것이다.

이대로 형을 보내기에는 내가 들인 시간과 정성을 들인 찌개가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럼 라면만 다시 건지면 되잖아.”

“라면 조미료가 이미 들어갔잖아. 그러니 저곳에 뭘 넣어도 결국 라면인 거야”

형은 라면을 거부하기 위해, 라면에 집착하고 있었다. 대화에서 라면을 건저 내야 했다.

나는 젓가락으로 냄비에 있는 라면을 걷어냈다. 

그렇게 라면이 사라지자, 부대찌개 본연의 재료가 보이기 시작했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맛봤다. 칼칼하고 짭조름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러나 역시 라면 조미료의 인공적인 맛의 효과였다. 이제 이 조미료 맛만 걷어내면 된다.

국물 맛을 바꾸기 위해, 국물을 절반 버렸다. 그리고 다시 물을 채워 넣었다.

야채 육수를 만들기 위해, 양배추와 버섯, 대파와 양파를 썰어 넣었다.

마지막으로 형이 손질해 놓은 콩나물 넣고, 칼칼한 맛을 위해 청양고추를 썰어 넣었다.

깔끔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베어 나왔다. 하지만 2% 부족한 맛이었다.

다시마와 건새우, 멸치를 통에 넣고 찌개에 다시 담았다. 그때 형의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네 지금 가겠습니다.”

“나가긴 어딜 나가! 라면이랑 라면 조미료 다 건져냈어! 진짜 부대찌개라니까”

“응 알았어. 저녁은 다음에 먹자. 비상이다.”

“야 어딜 가! 음식 차려놓고....... 한숫가락 갈이라도 뜨고 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형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뭐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요리 때문이 아니었다. 형이 남기고 신발 때문이었다.


방수, 방화가 되면서도 통풍이 잘되는 안전화였다. 내가 첫 월급으로 사준 신발이었다.

한국에서 팔지 않아, 해외 직구로 구입한 최고급 안전화였다.

하지만 형이 신고 나간 것은 내가 사준 새 신발이 아니라, 낡고 헤진 안전화였다. 

라벨이 뜯기지도 않은 내 선물은, 먹어보지도 못한 라면처럼 우두커니 서서 날 보고 있었다. 

나는 형의 새 신발을 들고 뒤 따라갔다. 하지만 형이 탄 승강기는 이미 내려가고 있었다.

승강기는 1층에 도착한 후 다시 10층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형의 안전화 라벨을 뜯자 신발 치수가 보였다. 260 나와 같은 사이즈였다. 

같은 치수 때문에 어릴 적에는 바꿔 신어서 싸운 적도 많았다.

10층에 도착한 승강기 문이 열렸다. 승강기 바닥이 문에서 5cm 정도 올라선 채 멈춰있었다.

종종 있는 일이었다. 30년이 다된 노후화된 아파트였기 때문이다.

승강기 안으로 들어가서 1층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이 닫히지 않았다.

문에 살짝 손을 대자, 드르륵 텅!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새 신발에서는 길들여지지 않은 가죽 냄새가 올라왔다. 한 번도 신지 않은 것이다.

아끼다 똥 된다는 내 충고만 똥이 된 것이다.

충고는 그 자체로 반발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동생의 충고를 들었을 때 깨달았다.

승강기가 7층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덜컹! 

승강기가 갑자기 멈춰 섰다. 순간 들고 있던 형의 안전화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머니를 뒤져 전화기를 찾았다. 없었다. 급하게 나오느라 챙기지 못한 것이다.

버튼 주변에 비상벨 버튼이 보였다. 버튼을 눌렀지만 아무런 신호도 없었다.

자세히 보니 버튼 자체가 잘 눌러지지 않았다. 버튼을 주먹으로 세게 졌다

승강기 전체가 흔들리며 울렸고, 동시에 형광등 불빛이 꺼져 버렸다.

세상이 멈춰서 버린 듯 고요했다. 바깥세상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주변은 더 고요해졌고, 나는 더 깊은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가 속한 터널은 지하를 타고 흘렀다. 그리고 열차가 나를 향해 세차게 달려오고 있었다.

빨리 이곳에서 탈출해야만 했다. 천정을 봤다. 아직 형광등의 잔상이 조금 남아있었다.

형광등을 옆으로 밀치자 승강기를 둘러싼 판이 드러났다. 판을 밀자 밀려났다.

승강기 안 손잡이를 발로 밟고 올라섰다. 승강기 와이어와 통로가 드러났다.

나는 조심스럽게 승강기 천정 위로 올라섰다. 승강기는 7층과 8층 중간에 걸려있었다.

그때 문이 승강기 문이 열렸다. 형이었다.

“야 이 미친놈아!!! 죽으려고 환장했냐!!! 승강기 움직이면 어쩔 뻔했어!”

형은 어느새 119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나는 그런 형에게 오히려 더 소리를 질렀다.

“기다릴 수가 없었어! 지하철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단 말 야!”

형은 나를 안아 주었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그렇게 있었다.

형은 큰 화재신고를 받고 소방서로 복귀했지만, 허위신고로 판명 나서 다시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고 했다. 우리는 일층으로 내려왔다.


형은 장비를 차에 싫기 위해, 차 트렁크를 열었다.

거기에는 낡은 장갑과, 컵라면들이 뒹굴고 있었다. 여전히 라면은 형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레스토랑으로 가는 길에 내가 근무하던 지하철 공사 사무실이 보였다.

내 동기가 마지막에 남긴 것도 그놈의 컵라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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