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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이야기 Oct 19. 2015

방문객들

양림동 우월순 기념관

방문객


이 길을 통해

광주의 난민이 내게로 왔다.

옛날 광주 읍성에서 쫓겨 한센인 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세워진

양림동으로 피신해 살았다.


난 그들을 반겨주었다.

처음 나의 방문객은 미국인 의사 윌슨(Robert M. Wilson: 우 월순) 이었다.

그는  내게  피신해온 한센인을 돌봐주고,

치료해 주었다.

그리고 내 친구가 된 기독교 병원 건물도 세웠다.

결국 친구는 광주 최초의 현대식 병원이 되었다.

이후 윌슨은 전남 여수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또다시 애향원을 세워

버려진 사람들을  구제했다고 한다.


이후 난 대대로 기독교병원장들의

숙소가 돼 주었다.


 윌슨이 떠난 후

수상한 방문객들이 또다시 나를 찾아왔다.


윌슨이 있을 때, 영어를 배우기 위해

찾아왔었던 일본인들이다.


그들은 나를 통째로 차지해 버렸고,

시간이 흘러,  해방된 후에는 미 군정 지사가

나를 이용하기도 했다.

게다가 해방 후에는 북한군 사령관까지

내게 머물며, 기거하였다.


그 후로도 나는 이후 충 현  유아원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아이들을 보듬어 주었으며,

지금 현재도 학생들의 배움의 장소가

되고 있다.   


 

그렇게 난 어갔다.

녹슨채 방치되지 않은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앞의로도 나는

방문객을 맞이할 것이다.

마지막 쓰러질 때 까지 말이다.



비바람을 맞은 이들에게

난로가 되어주고    

내려가지 못한 자들에게

계단이 되어주며,

흔들리는 자들에게 손잡이가

되어줄것이다.


                    


내게는 아직

다락에 스며든 빛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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