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차람 Nov 20. 2018

나도 열쇠를 집에 두고 나오는 일이 생겼다.

독일생활에서는 집열쇠를 들고 다니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

운동 겸 장을 보러 나가는데 발이 시려우니까 좀 튼튼한 운동화를 신어야겠다고 생각했다. 20분 넘게 걸어가서 장을 보고나니 힘들어서 버스를 탔는데, 가방 안을 살펴보니 열쇠가 안 보였다.  오늘 독일에서 한번도 안 신은 신발을 꺼내 신으면서 평소에 외출 패턴에 혼선이 생겼던 것이다. 원래 신발 다 신고 열쇠를 착! 들고 나오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신는 신발이라 정신이 팔렸던 것이다. 결국 열쇠를 깜빡하고 안 들고 나왔다. 


남편은 미리 이사갈 동네에 내려가 있기 때문에 곁에 없고 지금 업무중이라 방해만 되니 연락하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반이었고 날씨가 화창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0층의 현관은, 치과 벨을 눌러서 들어왔는데 우리 층의 중간 문도 잠겨 있었다. 그래서 아무 벨이나 눌렀다. 어떤 아줌마 목소리가 들렸다. "나 여기 사는 사람인데 이 문을 좀 열어줄 수 있니?" 굳게 잠긴 우리집 문에 당도하자, 아 내가 열쇠를 챙긴 적이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음, 일단 집 주변에서 열쇠집을 본 거 같아서 구글을 검색해봤다. 뭔가 하나 나와서 전화를 해보니 어떤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나 집에 열쇠를 두고 나왔어"

"너네 집 주소가 어떻게 되니?"

"음..."


당황하니까, 우리집 주소도 처음에 생각이 안났는데, 겨우 말했더니 못알아 먹는 거 아닌가!

"스펠링으로 말해봐"

V가 퐈우였는지, 스펠링 읽는 법도 생각이 나질 않아서 일단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이 지역 상점이면 바로 알아먹었을텐데, 여기를 모르는 거 같아서 제끼기로 했다. (근데 그걸 불렀으면 돈이 어마어마 나왔을 거 같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카드 비슷한 걸로 열 수 있다고 나와서 낑낑대며 해봤다. 마침 장을 보고 들어오는 이웃이 있었다. 이웃에게 여기 주소를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는 내가 도와달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나보다. 짐을 다 내려놓고 자기가 열어주겠다고. 그런데 그도 여러번 시도했으나 어려운 얼굴이었다. 


"여기 관리인 아저씨한테 물어볼게. 정말 여기까지 해준 것도 고마웠어"

"열쇠공 부르는 거 비싸니까, 아저씨가 안 된다고 하면 내가 다시 해볼게"


6층에 사는 관리인 아저씨한테 잘 아는 열쇠공이 있는지 물어보러 갔다.


"내가 해줄 수도 있는데, 문이 부서질 수도 있어서 좀 그래. 여기 근처에 열쇠공이 새로 생겼는데 연락처는 없고 주소만 있어. 근데 비쌀텐데, 어떻게 하나. 그리고 그가 문을 딸 수 있는지도 모르겠네. 그가 못한다고 하면 나에게 와."


"고마워."



평소 지나가던 길에 봤던 그 열쇠집이었다. 

열쇠공에게 얼만지 물어보고 가까운 거리라서 같이 걸어가자고 했다. 


아파트 건물 앞에 도착했더니 관리인 아저씨 왈


"너의 이웃이 벌써 문을 열었어! 계속 너를 찾고 있었어."


"어머 정말?!"


같이 갔던 열쇠공이, 


"그래? 그럼 난 돌아갈게. 괜찮아." 라고 말했다. 


우리 층에 갔더니 이웃이 "나 유투브 보고 열었어!! 열쇠공은 갔어?"하면서 엄청 좋아하고 있었다.


"어. 정말 고마워 ㅜ ㅜ"


휴~~ 집앞 빵집에서 케익을 사서 열쇠공에게도 주고 이웃분에게도 드렸다.

좀 느슨해지는 시기였는데, 정신 다시 차리게 되는 경험이었다.


문을 열어준 이웃은 최근에 우리 아파트로 이사 온 시리아 사람이었고, 쿨하게 돌아간 열쇠공은 터키인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