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나를 먼저 되찾고 볼 일

잃어버린 본성을 찾아서

by 차람

자주 회사를 그만두다 보니,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게 된다. 새로 지원하는 회사에 맞게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다 보면 무슨 내가 드라마 구성작가도 아닌데 나 자신의 캐릭터를 새로 만들고 있었다. 나는 얼굴에 점만 찍으면 갑자기 다른 능력자가 되는 배우였다. 매년 이력서를 쓰다 보면 겉으로 보기엔 자아 성찰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 보이는 착시 현상이 있었다. 부족한 스펙을 채우기 위해 뭔가를 더 하게 되고 꿈 많은 도전가처럼 보이기도 했다.


성격의 장단점을 어떻게 커버할지 고민도 한다. '예민함은 강하다. 스티브 잡스도 그렇다. 고로 나는 성공한다.' 뭐 그런 믿음 투척. 남에게 보이기 위한 취미도 작성한다. 그저 소모를 위한 문화 소비일 뿐이었다.


그 결과, 내 본래 성격은 어딘가 깊은 마음속 상자 속에 넣어두게 되었고 급기야, 그 상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게 됐다.


그때 내가 그랬다. '팀장 코스프레' 같은 회사원 놀이를 하다 보니 나 자신은 어디에 갔는지.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어느 날, 노원역에서 인천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는데 다리도 무겁고 어찌나 멀고도 멀었는지 그저 답답했다. 중간쯤 갔을 때 휴대폰을 만지작하다가 페북 탐라에서 '한잔의 룰루랄라'가 올린 재즈 공연 리허설 동영상을 보게 됐다.


무슨 우주에서 날아온 신호였을까. 심장이 콩닥 콩닥 뛰었고, 결의에 찬 발걸음으로 지하철에서 내려 홍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 맞아, 나는 원래 이런 것을 좋아했어.'

신촌 근처에 사는 아는 애쉬(닉네임)에게 오랜만에 보자고 연락도 했다.


사실 평소에는 자유로운 그녀의 삶이 부럽기도 하고 꾸역꾸역 회사를 다니는 내 마음이 약해질까 봐 연락을 잘하지 않기도 했었다.


그날 공연을 보며 나는 마음이 뻥 뚫렸다.

서로 합의하에 무규칙이 허용되는 연주라서 그런 것일까?

공연이 끝난 후 처음 보는 밴드의 드러머에게

"이렇게 살면 한 달에 얼마 벌어요?"라는

아주 미친, 무례한 질문도 했다.



그날 나는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인정했다.




"나는 지쳐있다. 지금 이 일상을 견디지 못한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고 누가 떠밀지도 않았는데 누가 나를 괴롭히고 있는가. 나는 어딘가 아프다. 아픈 것을 감추기 위해 평일에는 회사 일을 열심히 했고, 주말에는 교회 활동을 했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잘살고 있는 척했다.

아파도 웃는 건 정말 정신병자 같은 삶이다. 나는 무언가 상당히 잘못됐다."


그날 만난 애쉬는 사실 내가 스무 살 때, 나의 룸메이트가 될 뻔했던 사람이다.

같이 홍대에서 집 얻어서 같이 살아보자고 했었는데 나 스스로가 그 자유를 감당 못할 것 같아 거절했었다. 하지만 언니는 그 당시 독립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에 귀 기울이며 살았다. 지금까지 프리랜서로 다양한 일을 하며 매우 잘, 살고 있다.


: 언니, 어쩜 그렇게 자유롭게 살 수 있어? 불안하지 않아?


애쉬 : 어휴~ 나는 회사 못 다녀~. 네가 참 대단하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어. 내 삶을 책임질 수 있다는... 근거는 없지만 그런 믿음이 있지. 너도 그렇지 않아?


: 나에 대한 믿음이라... 몰라. 나는 돈 떨어지면 너무 불안해. 그래도 직장인은 매월 월급이 들어오니까. 다시 돌아가게 돼.


애쉬 : 나도 돈 앞에서 한숨 나오지 뭐. 내가 직장인처럼 정기적인 소득이 딱, 정해지진 않았지만 필요한 만큼 일과 돈이 생겨. 하고 싶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야지~.


그렇게 말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세상에서 들러리가 된 기분이었다. 돈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 돈 때문에 나를 부정하고 살아온 것 같았다. 돈을 벌고 돈을 쓰는 이 무한반복의 삶이 아니어도 되는 것일까? 나는 돈한테 쿨할 줄 알았는데, 돈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누가 내 머릿속에 집어넣은 거지?


먼저, 나 자신을 되찾고 볼 일이었다. 그래서 바쁘다며 미뤄뒀던 일들을 찾아보고 옛 친구들에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대뜸, "야, 나 어떤 사람이었니? 우리 한번 만나"라고 말이다.


나 자신을 어떻게든 되찾아야겠다.



*애쉬는 심리학을 공부한 후 성우, 요가 선생, 아코디언 연주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10년이 넘도록 프리랜서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옷도 직접 디자인해 만들어 입고 수제 화장품도 만들고 ... 재주가 많아서가 아니라 시간이 많다며 겸손하게 대답하는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