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되찾는 데 방해되는 것들
연말이나 계절이 바뀔 때쯤이면 상품 검색하듯이 카톡에서 아직 싱글인 남자 사람들을 찾아보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팅을 해달라고 조르던 때가 있었다. 겸손한 자세로 아무나 만나봤다가 몇 번을 '개망'한 소개팅의 추억을 쌓기도 했다. 백수만 아니면, 사람 구실만 하면 된다며 남편감을 발견(?)하고 '우결' 찍듯 몇 번의 어색한 데이트를 한 뒤 SNS에 행복해 보이는 사진을 올려본 적도 있다. 사진을 보면 내가 주인공인지, 데이트하며 먹은 음식이 주인공인지 분간도 되지 않았다. 친구들과 '너네 남친이 그러니 우리 남친도 그런다'라며 수다를 떨다 보면 그렇게 연애하는 것이 맞고, 뭔가 정상 궤도에 올라간 느낌이 들었다.
그냥 이렇게 사는 게 맞는구나 하는 착각. 뿌듯한 하루라고 생각하는 환상.
야밤에 온몸이 소스라칠 정도의 외로움이 나를 찾아와 인사할 때는, 아무나 빨리 마음을 줘버려서 결혼이나 해야겠다는 심정, 대충 서로 맞춰가면서 살면 되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결혼 못해서 환장한 여자 한 명을 마음속에서 떠나보내야 했다. 그 상황에서 누굴 만난다면, 또 다른 가면을 만들고 생활할 게 뻔했는데, 내 스스로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가 된다는 상상을 하면 끔찍했다.
그래서 결혼을 생각하면 답답했다.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자존감 얻기, 남들에게 인정받기, 부모님한테 보여주기 식, 누군가를 안심시키기 위한 '도구적인' 목적이 앞서기 때문이다. 좀 더 속물적으로 나갈 수도 있고... 결혼 적령기를 맞이한지라 '결혼'이란 단어를 머릿속에 지우고 누구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나만 생각하기. 나를 더 사랑하자는 마음에 집중했다. 피트니스센터를 등록하고 요가를 시작하고 미쳐 끝내지 못한 공부를 꺼내놓았다. 운동을 하니 체지방이 떨어져 나갔고, 내 머릿속의 쓰잘데 없는 생각들도 같이 떨어져 나갔다. 3개월 동안 꾸준히 하다 보니 몸무게 5킬로그램이 줄었는데, 생각이 많아서 살쪘던 뇌도 덩달아 날씬해진 듯 가뿐했다. 요가를 같이 한 덕분인가, 나의 거짓 자아, 거짓 희망들도 하나씩 제거해갔다. 특히 거짓 희망으로 자리 잡았던 결혼하고 싶은 마음, 착한 척하는 거짓 마음도 낭떠러지로 밀어냈다. 정말 잘한 일이다.
독하게 마음먹어서 이런 건 아니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간 것도 아니다. 클럽도 가고 술도 먹고 놀아도 봤는데 다 허망해서 할게 없어서 헬스장을 갔다. 맨날 카톡 하느라 손가락만 쓰는데 몸이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에 말이다.
운동을 하면서 거짓 마음이 사라졌는데 그 빈자리에 공허함이 스며들기도 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정신 차리고 결혼할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안전지대를 벗어나고 있다는 불안감과 두려움도 찾아왔다. 그래서 싱글일 때 해둘 일들, 아니 지금 이 현재를 누리면 좋을 것들에 대한 리스트를 짜기 시작했고, 주말마다 실행하기 시작했다.
바쁘게 사느라 만나길 미뤄놨던 친구들을 하나 둘 씩 만나면서, 스무 살 때 나의 별명 '공이'를 다시 찾았다. 그들이 내 별명을 불러주는 순간 그때의 기억이, 감각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조금 데면데면할 수 도 있지만, 만나면 분명히 반가울 학교 동기들한테도 한 명씩 연락해봤다. 너무 오랜만에 보면 어색한 대화만 겉돌 것 같아서, 나름 '만남의 코스'를 짜기도 했다. 일단 '공이 투어'라 명명했다.
하루는 일본에서 공부를 마치고 온 친구를 8년 만에 만나기로 했다. 세운상가에 있는 독립서점 '200/20'에 가서 정희진 작가의 페미니즘 관련 강연회를 듣고 밥을 먹은 뒤 홍대로 이동, '채널 1969'공간에 가서 오랜만에 김반장 공연을 볼 수 있게 동선을 짰다. 하루는 14년 만에 만나는 친구와 광장시장에서 빈티지 옷을 사고 낮술을 먹는 등 소소하지만 기억에 남을만한 계획을 짰다. 솔로이기에 적극적으로 만들었던 만남의 코스였다. 동성끼리 만나야 재밌있고 심도 있는 수다들이 이어졌다.
나중에는, 공이 투어의 스케일이 커졌다.
독일에 있는 친구 두 명을 만나기 위해 베를린으로 떠났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연재하기로 하고) 아무튼 내가 결혼이란 압박에 발목 잡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런 추억들을 만들 수도, 나를 찾는 일도 어려웠을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웃고 떠들다 각성도 하면서, 계속 나 스스로를 되찾아갔다.
나만 볼래, 일단은!
나는 오늘도 나를 더 사랑할래.
*결혼에 대해 부정하고 비혼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결혼이 아니라면 그 누구의 결혼도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혼해도 외로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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