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두 발을 정착하기 힘들다면, 바다를 유영해야지.
요즘 들어 인생을 '바다'에 비유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일주일에 3번을 연거푸 들었다. 미소서식지 '작은 강연'에서 만나 만화가 김보통은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마치 수족관에 살다가 바다를 만난 기분이라 말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파펑크 박훈규는 자신의 책에서 인생이란 망망대해를 여행을 통해 항해하는 법을 배웠다했는데, 지금도 자신 만의 길을 개척하고 멋지게 살고 있었다. 연남동 화실 선생님은 언제 엔진을 다 만들어서 바다로 갈 거냐며, 뗏목 하나라도 들고 먼저 바다로 나가라고 말했다.
배의 엔진을 부실하게 만들면 바다에서 난파되어 죽는 거 아닐까.
배 엔진만 만들다 인생 끝나버리는 거 아닐까.
어떻게 해야 바다로 나갈 수 있지?
그런 '바다'에 대한 생각에 잠기다 보니, 세 살 때의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다. 가족 여행으로 바다에 놀러 갔는데 맨발에 닿는 모래의 감촉이 하도 이상해서 땅에 발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바닷모래 알갱이 하나하나가 발바닥에 닿는 것이 싫어서 엄마한테 신발 달라고 때를 쓰는 아이. 샌들을 신어 보지만, 샌들 사이로 들어오는 모래까지 막을 수 없던 것에 허탈감을 느끼는 아이. 인생이 이런 불편한 것이라면 나는 바다까지도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표정의 아이가 내 앞에 있었다. 성장하기를 멈추기로 작정한 이 아이의 긴장감은 30년 후에도 그 자리에 계속 남아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마치 무릎까지 오는 부츠를 신고 모래사장을 맴도는 모습이었다. 이제 돈을 버니까 더 강력한 부츠를 사는 것이 쉬우므로.
바다로 나가면 어떤 심정일까,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은 많으나 뛰어들지는 못하고 책을 통해 얻은 간접 경험으로 만족해야 했다.
세살 때의 나를 만나 화해하고, 내면아이를 감싸안는데 대략 1년이 걸린 것 같다. 어떤 치료를 받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1년 정도 화실을 다녔던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림을 그리면서 순수함과 투명함의 맨얼굴이 나왔다. 그림에서는 가면을 숨길 수 없기도 했고, 무언가 그리기 위해서는 두려움과 맞서야 했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을 만나고 용기 있게 낯선 환경에 가며, 바보 같은 질문도 던졌다. 얼굴이 너무 빨개져서 술도 잘 안 마셨는데 남 신경 안쓰고 그냥 마셨다. 종종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야 내 맨얼굴을 꺼내는데, 일상들이 '여행'이 되었다. 내가 있는 곳이 '베를린'이고 '텔아비브'였다.
모래 밟았던 불쾌한 감정이 뭐가 대수롭냐고, 참 까칠하다고 할 수 도 있겠다. 하지만 내 생애 최초의 불쾌한 감정과 그것을 대처하는 나를 만나는 것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가치의 경험이었다. 마주했기 때문에 세살 때 만난 모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모래는 한 번 털면 되고, 씻으면 될 일.
오히려 몸에 오감을 깨워주고, 위트 있는 개성 강한 알갱이들이었다.
바다로 나가면 모래들을 밟히지도, 보이지도 않을 터. 바닷물에 흘러갈 것들이었다.
그러니, 한 발 한 발 나아가도 되는 것이었다. 더 계산하지 않고, 더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앞으로 바다는 내게 길을 보여줄 것이고 사람을 연결해 줄 것이며
미래가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도달할 세계라는 생각에서
한발 더 나가가면 이미 내가 그 세계에 있다는 믿음.
그것이 내 엔진이며, 이미 완성되었다는 생각.
마음을 열고 순수함과 투명함으로, 나아갈 것.
소심했고 예민했던 순간들보다
두 손에 얼굴을 포개어 기뻐하던 순간들을 떠올려야지.
행복한 시간을 늘려야지. 더 이상 불행에 나를 던지진 않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