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생이별 롱디 - 작업노트

어느 것이 가깝고 멀리 있는 것인가. 내게 다가오는 것들은

by 차람

‘롱디’는 롱 디스턴스(Long-distance)의 줄임말로 장거리 연애를 뜻한다. 예전에는 장거리 연애가 많지도 않았고 주말 부부도 흔치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일 때문에, 공부 때문에 혹은 헬조선을 탈출하고자하는 사람들로 인해 국내외 롱디를 이어가는 커플들이 종종 보인다.


나 역시 남자친구가 먼저 독일에 간 케이스로, 원치 않았던 롱디를 시작하게 되었다. 하루하루 감정과 생각이 왔다갔다할 것 같은 '감정의 롤러 코스터'가 두려울 것 같아서, 페이스북 커뮤니티 ‘망원동 좋아요’에 롱디 경험자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이틀간 서른 명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장거리 특징, 기간, 장단점을 적었고 생면부지인 나에게 진심어린 조언과 응원을 빼놓지 않았다. 정말 고맙고 힘이 되었다. 나는 힘을 얻어서 현 상황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물리적 거리보다 심리적, 상대적 거리감에 대해 깊이 의식하기 시작했다. 롱디라는 연애 문제가 나 자기 자신과의 거리, 꿈과 현실과의 거리 등으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그림을 그려서 전시를 준비했다. 이 모든 것이 한달 프로젝트였으며, 드디어 다음주 전시오픈을 한다.


이차람 첫 개인전 <생이별 롱디>는 혼자서 기획하고 전시 동선도 짜고 홍보도 하고, 그림을 그려나가면서 1인 다역을 했다. 내가 어디까지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도 싶었고, 사실 처음하는 전시라서 누구에게 어떻게 부탁할지도 모르겠고, 지금도 계속 그림을 그리는 중이기에 누구에게 뭘 어떻게 맡길 생각도 안 났다. 처음에는 내가 극도로 예민했기에 누군가 도움을 준다고해도 마다했다. (무슨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도 몰랐기에!) 지금은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마음과 응원을 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오늘은 작업 노트를 조금 펼쳐볼까한다.



작업노트

: 어느 것이 가깝고 멀리 있는지,

롱디 중에 내게 다가오는 것들



1. 생이별, 롱디 <대화>

멘탈이 깨지지 않고 작업을 할 수 있던 것은, '망좋'(망원동 좋아요)의 응원 덕분이다. 그들의 답변들을 답변자 모두와 공유를 했다. 도움이 되었다는 답장도 몇 개 받았다. 독일에 있는 남친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다. 덕분에 그도 나도 서로의 일상에 집중하고 만날 날을 기다리며 애틋함과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그가 있는 곳과 학교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온전히 체험한 것이 아니기에 들어서 알고, 느낀 것을 나 나름대로 편집해 이미지화했다. 그래서 평화로운 곳, 학생에게 최적의 공부 요건을 만들어주는 곳,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헤르만 헤세의 나라로 표현했다. 한편으로 서울은 좀 삭막하고 어둡고 밤인데도 바쁘게 표현했다. 내가 그렇게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시차 때문에 서로 낮과 밤을 동시에 읽어야하는 상태이고 그 시공간을 관통하는 것은 비행기와 구름 뿐이다.


이차람, <대화>, 종이에 유화, 840*1120



2. 생이별, 나 자신


내년에 남친을 따라서 독일에 간다고 하자. 그 이유 하나로 내가 막 행복하고 내 인생에 신세계가 펼쳐지는 것일까? 가난한 유학생 생활이 뻔한데 무얼 먹어야 그런 환상을 키우고 유지할 수 있을까. 후훗. 막연히 독일가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좀 더 나은 환경이 주어질거라고 강한 믿음으로 기도해야할까. 한편으로는 지금 왜 못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못한다고 생각하는 내 자신'과 이별하기로 결심했다. 지금 여기서 못하면 거기서도 못 하며 한국에서 행복할 줄 모르면, 타지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내 눈빛이 좀 달라진 것 같다. 어딜가도 주변인이 아닌, 이방인이 아닌 내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거의 나와 이별하고, 새로운 나를 만나는 작업은 롱디라는 고독의 시간이 내게 준 황금 같은 깨달음이었다. 그림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작업중인 사진으로.


작업중. 과거의 나 자신과 생이별


3. <무의식과 의식의 연결성>

가끔은 말로 설명되지 않고, 어려운 것은 이미지로 쉽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무의식과 의식의 연결을 6컷으로 그려보았다. 내용은 매일 달빛을 보며 노래하고, 그러게 멀리 떨어져서 노래하는 것이 운명이라 생각하고 그 운명을 받아들이려 수련하던 파란 빛의 사람이 있었다. 어느 해질 녘, 별빛의 강한 매혹에 이끌린 파란 사람은 열정적으로 노래를 하다가 '내가 죽어도 좋으니 오늘은 별빛에게 한발이라도 더 다가가겠소.'라는 노래를 부르다 바다에 빠져 죽는다.

하지만 그것은 꿈이었다. 파란 사람의 무의식이 표출된 꿈이었다. 파란 사람은 꿈 속에서 자신을 죽인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억눌렸던 무의식이 해소되면서 자신이 '파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굴레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자신이 노란빛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언제 어디서든 별빛과 같은 노란 빛으로 존재하는 사람이 된다. 자신의 존재를 깨달은 사람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며, 내면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이 겉과 속을 둘러싼다.


그림을 말리는 특이한 방법이다.
광포한 바다를 표현하는 중이다.




4. 디오니소스적 긍정

북유럽 신화의 오딘과 그리스신화의 디오니소스는 어딘가 닮아 있다. 둘다 자기도취적이며 매력적이고 파워풀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런 요소들을 담아서 그리려고 스케치를 했다. 디오니소스적 긍정과 신화의 상상력을 믹스했다. 우물을 서양식 우물로 할지, 울나라 전통 우물로 할지 다양하게 스케치를 해보기도 하고.


나의 어시스트 고양이 후추. 후추는 내 옆에서 모기들을 잡아준다. 또 다른 고양이 두유는 죽은 모기를 먹는다.


갑자기 뜬금없이 신화이야기냐고 하겠지만, 롱디 앙케이트 결과 '롱디 5년 했어요' '롱디 끝나고 결혼했어요' 같은 경험담은 하나의 신화처럼 들렸다. '시작할거라면 그냥 하지 말아라' '우린 헤어졌다' 등의 경험담도 있었다. '다시 하라면 잘할 수 있다. 그땐 어렸다' 등등. 각자만의 신화를 만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의 결론, 롱디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 경험에는 버릴 것이 없다.


있는 것은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으며, 없어도 좋은 것이란 없다.

-니체, <이 사람을 보라> 에서



5. 기타

집에서 작업하면 물감과 세척제 냄새로 머리가 어지러웠고 작업실을 구할 시간도 없었고 (당장 그려야했기에!!) 해서 옥상에서도 그리고, 빌라 주차장 옆 빈 공간에서도 작업을 했습니다. 저 길냥이는 저의 작업실 메이트였네요. 틈나면 그리고 또 그리던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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