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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Oct 06. 2020

 박하 향기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한

       - 허수경, '박하'

                                                                                                                                    

가을에는 허수경의 글을 읽어야만 할 것 같아 '박하'를 10년 만에 다시 읽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서.



마흔 중반의, 다니던 출판사가 망해 하루 아침에 실직자가 된 '나' 이연.

불행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친정에 다니러 간 아내와 두 아이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나뭇가지에 걸린 가족의 이름표만 덩그라니 남은 사내.

자책과 고독으로 괴로워하다

대학 선배를 찾아 떠난 독일 여행의 이야기 속에

'이무'라는 백 년 전 독일 고고학자의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는 

액자소설 형태의 무겁고 쓸쓸한 소설.




백 년 전 한국에서 입양된 이무의 이야기는

터키를 배경으로 하여 운명적인 여자 '하남'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아이와 아내를 동시에 잃는 비극으로 끝난다.




결국 이무의 현신이 주인공 이연이라는 설정인데

너무 방대한 스케일이 '나'의 아픔과

방황, 상처의 치유 과정에 공감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하남'이라는 전설의 도시를 찾아 헤매는 역사학자의 열정과

사랑의 상실

둘 다 너무 무거워 

어느 하나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이연과 이무를 보며 굴레를 벗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나약함을 되새기게 된 것 같아 읽고 나서 오래오래 씁쓸하다.



허수경 작가의 글은

아름답고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묘한 분위기가

매력적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상처를 스스로의 힘으로 치유해 가는 과정이 감동적이고

지친 삶에 새로운 용기를 갖게 해 주는 

씩씩한 이야기가 좋다.




하루하루 버겁게 인생이라는 산을 오르면서

슬프고 씁쓸한 이야기를 읽고 나면 며칠은

마음이 무겁고 다리에 힘이 풀린다.

 



말과 글이 넘쳐나는 세상에

직업작가의 글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 주는

책이었다, '박하'는.




하여 나는 오래 망설이며 읽기를 

끝마쳤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슬픔을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이미 슬픔의 이유가 온몸에 꽉 차 있는데도 말이다.


기억은 세월을 따라 얼마간 변형되었겠지, 변형되지 않았으면 임의로 변조되었거나, 그도 아니라면 나 역시 기억하고 싶은 것만 떠올리는 이기적인 슬픔의 소유자이거나.


인수씨는 어떤 시대에도 시대가 간섭하지 못하는, 인간이 스스로의 내면에 묻어둔 자신만의 울음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다.


인간들이 왜 자꾸 다음 생을 말하는지 알아요? 다음 생이라는 건 구체적인 생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추상적인 생이에요.


망할 놈의 절망! 네가 날 떠나지 않으면 내가 널 떠날 거야!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만져주는 모든 손은 짜다. 내가 그 손에 담긴 진심을 느끼더라도 말이다.

박하 향기가 네 상처와 슬픔을 지그시 누르고
너의 가슴에 스칠 때 얼마나 환하겠어,  우리의 아침은
 어디에선가 박하 향기가 나면 내가 다녀갔거니 해줘


                                                                                                                         <박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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