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씻어서 밤에 미리 안쳐 놓고 자거라. 손 넣어서 손등 반 오게 밥물 맞추면 되니까. 손등 반이야. 물 많이 잡으면 질어서 못써.”
“그 정도는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어, 내가 애야?”
“네까짓 게 뭘 할 줄 알아? 아침밥 굶으면 하루 종일 기운 없으니 꼭 먹고 가. 반찬 다 먹으면 또 해줄 테니까.”
조금 전에 친정에서 돌아왔는데도 엄마는 전화기를 붙잡고 놓을 생각을 않는다.
“알았어요, 나 출근하려면 일찍 자야 해요. 짐 정리도 하나도 못 했단 말야.”
호기롭게 전화를 끊고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안쳤다.
결혼 휴가 후 첫 출근이라 쑥스럽기도 하고, 밀린 업무를 해야 할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 밤새 잠을 설쳤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아침마다 깨워 주시니 지각할 걱정은 없었는데 이제 스스로 일어나야 하니 자주 눈이 떠졌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아침상을 차렸다. 내 손으로 처음 차리는 식사였다. 냄비째 얻어온 국까지 식탁에 차려놓고 밥솥을 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밥을 기대했는데 웬걸 팅팅 불어난 쌀들뿐이었다. 다급한 나머지 새벽부터 엄마에게 전화했다.
“너 취사 버튼 안 누른 거 아냐?”
“그런 말 안 했잖아, 엄마가. 알려줬어야지.”
“어이구, 그 정도는 알아서 해야지. 쌀만 넣어 둔다고 밥이 되냐, 나이만 먹었지, 널 어쩌면 좋니? 아침도 못 먹고 어떻게 출근을 한다고 그래?”
전기밥솥에 취사 버튼이 있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바로 시작한 데다 한 번도 집을 떠나 본 적이 없어 늘 엄마가 해주는 밥을 얻어먹고 살았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상견례 자리에서 엄마가 한 말은 겸손의 말이 아닌 정확한 사실이었다. 정말 나는 라면 한 번 끓여본 적 없으면서 겁도 없이 결혼을 한 것이었다.
지금이야 즉석밥이 있지만 그런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엄마가 준 반찬은 잔뜩 있는데 밥이 없어 아침을 거른 채 출근을 했다. 주부 첫날은 그랬다. 밥조차 할 줄 모르던 ‘요알못’이 바로 나였다.
시어머니는 살림이 젬병인 며느리가 당신 아들을 굶기겠다 싶었는지 주말마다 오셔서 이것저것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하루는 오이소박이를 담자며 집 앞 시장에서 오이를 한 무더기 사 들고 오셨다. 오이를 잘라 열십자로 적당히 칼집을 내서 소금에 절여 두었다가 적당히 절여지면 씻어 양념한 소를 집어넣으면 끝이라는, 간단한 김치를 담아보자는 것이었다. 적당한 칼집, 적당한 절이기. 어머니의 ‘적당히’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무게와 부피를 지니는 것이었다. 내가 칼집을 낸 오이는 반으로 갈라져 버리거나, 너무 조금 벌어져 소를 넣기 힘들었다. 나는 손끝이 야무지지 못하고 주방에서는 특히 말귀를 잘 알아먹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양파껍질도 몇 겹씩 벗겨내고, 부추 한 단 씻는데도 한나절씩 걸리는 어설픈 나를 기막혀하시며 어머니는 어이가 없는지 웃고 마셨다.
엄마의 ‘알아서’와 시어머니의 ‘적당히’는 연륜이 쌓여야 깨우쳐지는 말이었다. 한 해 두 해 살림하다 보니 스스로 요령도 생기고, 융통성도 생겨 말 그대로 알아서, 적당히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 내 생일에 미역국은 자신이 끓여 준다며 딸은 나를 주방 근처에도 못 오게 하더니 계속 엄마를 불러 댄다.
“엄마, 물 얼마나 넣어?”
“미역 잠길 만큼 적당히”
“간장은 얼마나 넣어?”
“짜지 않게 적당히 넣어”
“아, 얼마를 넣으라는 거야?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먹어보면서 알아서 하는 거지, 일일이 다 물으면서 뭘 알아서 한대?”
딸이 못 미더워 주방으로 들어서며 ‘나도 우리 엄마와 시어머니와 똑같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 딸, 너도 시간이 지나면 하나하나 알게 되겠지. 너에게도 시간이 필요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