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한 영화를 보기 위해 오랜만에 영화관에 가기로 했다. 팬데믹 이후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꺼리다 보니 영화관은 3년 동안 고작 한 번 찾았을 뿐이다. 내가 보려는 영화는 촬영한 지 좀 됐으나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이제야 상영하게 된 터라 꽤 오래 기다렸던 영화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예매하려니 제작비도 적고 규모가 작은 배급사에서 배포하는 영화라 그런지 상영 회수가 고작 하루에 한두 번 밖에 되지 않았다. 1위를 달리는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부은 외국 영화가 상영관을 거의 다 선점하고 그 뒤를 이어 2, 3위의 영화가 차지하고 나니 경쟁에 뒤처진 영화는 상영관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기회는 1인자가 다 차지하고 약자는 자신의 역량을 보여줄 기회조차 가져볼 수 없는 구조였다.
상영관 독점 문제가 하루 이틀 된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영화관계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문제를 제기해 왔으나 그동안은 입소문 난 영화를 주로 보다 보니 체감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런데 막상 내가 보고 싶은 영화의 상영관이 몇 군데 없고, 상영관이 있어도 이른 시간대에만 배치되어 있다 보니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비로소 심각하게 다가왔다. 좋아하는 배우의 영화가 순위에서 밀려나 있다는 것도 아쉬웠지만 그보다도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영상물을 좋아하고 스토리를 사랑하는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좀 더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소자본의 독립 영화나 인기 없는 영화에도 똑같은 기회를 부여하지는 못하더라도 인기 있는 한 두 편의 영화가 체감상 7~80% 이상의 상영관을 독차지하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독점이 되는 상황에서 1, 2위가 아닌 영화들은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1등이 아니면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비단 영화판만은 아니다. 꼴찌가 없으면 1등도 있을 수 없다. 최고가 되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박수받을 수 있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가 아닐까 싶다. 인기 없는 영화라 조조 상영밖에 하지 못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이른 아침에 영화관을 찾는 발걸음이 무겁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루드비히 폰 미제스가 말한 것처럼 시장경제는 마치 투표시스템과 비슷한데 상영관이 이렇게 독점이 되는 경우 다수의 영화들은 표를 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자유방임 상태의 상영관 시장에서 시장경제원리가 잘 작동하지 못 한다고 볼 수 있다.